절묘한 음악에 맞춰 얼굴이 변한다. 아주 짧은 순간에 여러 번 변하며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다른 곳에 주의를 빼앗길 사이가 없다. 어릴 때 봤던 영화가 선명하게 남아있는 부분은 아주 작은 순간이다. 변검. 얼굴의 색과 표정이 순간에 바뀌는 연기를 한 장국영의 슬픈 눈과 그의 영화가 종종 떠오른다. 청춘스타의 믿기 힘든 마지막이 오버랩되며 영화를 볼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삶이 복기된다.
가면을 쓰고 사는 삶. 하나의 가면이 아니라 역할과 장소에 따른 끊임없는 가면의 역할. 매끄러워야 한다는 강박이 가져온 건지 아니면 모두들 그렇게 살아가는 건지 마술처럼 완벽했던 그 장면은 두고두고 반복되어 삶에 다녀간다.
부모의 자녀로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 학교에서는 학생으로 그 역할을 부여받고 성장한다. 사회에서는 사회적 위치와 지위가 또 다른 열굴을 요구하고 책임은 그 요구에 부응하며 얼굴을 바꾸는 사이 사회를 지탱해 간다. 사회적 역할이 마무리될 때마다 한켜 한켜 얼굴을 벗어내고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을 보듬고 애썼노라 달래는 시간이 온다. 그 시간에 당황해서는 안될 일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신만의 시간이니 말이다.
두꺼운 분장 속에 슬픈 눈을 감추고 연기를 넘어서 처철하게 얼굴을 바꿔야만 살 수 있었던 시간들이 강물처럼 흘러간다. 그 강물 위로 비로소 자신이 떠오른다. 강물의 흐름에 맞춰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주문을 한다. 이제는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힘을 빼고 하늘을 보며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서 잠시 망중한을 즐겨도 좋을 일이다.
그럼에도 일과 자신과 사회가 씌워준 가면이 혼연일체가 되어 여전히 연기하듯 삶을 위태롭게 사는 노년도 있다. 자신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로 나이가 들어버린 것이다. 나에게로 가는 길은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 없이 삶을 맞았지만 남은 생과 죽음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죽음으로 가는 길은 나에게로 가는 길이다. 슬픈 일도 절망의 구간도 아니다.
중년이 지나고 사회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는 순간 마음만큼은 자유인이 된다. 그러해야 함을 벗어나 나다워져도 좋은 자유의 시간이다. 눈감기 전까지 내겐 자유가 필요했노라 말하기 전에 때가되어 다가온 시간을 만끽해야 한다. 그것이 남의 것과 동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자신의 것을 찾아 그 길을 가면 된다. 부족함이 있으면 채우고 미련이 남으면 그 미련을 떨치려 그 방향으로 나서면 될 일이다.
나이 든 사람의 푸념과 한탄이 종종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자신이 쓰고 있던 가면을 미처 벗어내지 못하고 동기화가 되어 꼼짝하지 못하는 사람부터 저절로 굴러가는 관성에서 탈출하지 못해 그냥 자신을 맡겨두는 일까지 형태는 다양하다. 잘 굴러간다면 잘 살아온 인생일 거다. 그럼에도 본인이 원하는 것은 마음 한편에 남아있을 터이니 그 굴러가는 일상에서 탈출을 해야 한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삶이 굴레가 아니길 바라며 신경세포의 길이를 늘이고 확장하는 방편으로 관성을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멈추고 자신을 챙겨야 한다.
새로움에 도전하고 낯섦을 받아들이며 질문을 하고 호기심을 가져야 하는 나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접어들어야 하고 젊은 날처럼 길을 잃어야 한다.(물론 다시 찾아올 인지능력의 범위 안에서 말이다) 새로운 세상에 내던져진 초기화된 자신을 다시 자신의 의지대로 세우고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에 다가서는 모험을 해야 한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삶에 불안은 친구가 된다. 내맡긴 삶의 방향은 내가 조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높고 험한 산에 오르고 목숨을 내거는 일만이 도전은 아니다. 일상의 도전은 지극히 사소하며 숨 쉬듯 편안한 일들이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금자탑을 쌓고 반짝거리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짧아진 호흡으로 달아오르던 화를 가라앉히고 경제력을 얻는 대가로 반납했던 자율성을 회복하는 일이 우선이다. 긴 호흡을 연습하고 생계가 해결되면 하고 싶었던 일을 깊은 동굴 속 보석처럼 찾아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을 위해 하고 싶었던 한 가지는 있을 것이다. 긴 호흡이 마련되고 마음의 불안이 가라앉으면 즐거워도 좋을 시간이다. 그래도 좋음을 알아차리는 일이 중요한 시간이다. 글을 쓴다고 하면 책을 내라고 한다. 달팽이처럼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살 수 있을까? 취미가 직업이 되면 전략이 필요해진다. 전략이 끼어드는 순간 즐거움은 멀어진다. 그러므로 즐거움을 위한 혹은 좋아서 하는 일은 힘 빼고 느슨하게 하면 된다. 전략도 전술도 모든 앞서가는 방법들도 이젠 안녕이다.
세상 작별할 때까지 도움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체력만이 유일하게 탐나는 마지막 소망이다. 열심히 근육을 챙기고 긴 호흡을 연습한다. 수시로 흙탕물처럼 흐려지는 마음을 다스려 맑게 하는 연습을 한다. 거친 바람과 소나기를 피해야 한다. 피해도 덮치는 날에는 물이 맑아지도록 기다려야 한다. 강풍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분연히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청명한 하늘이 다가옴을 아는 나이니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며 내가 원하는 얼굴을 그려야 한다.
https://youtu.be/RawE7mwXTa4?si=-5AbRYruFt98pSn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