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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늘HaruHaneul Nov 13. 2024

수요일의 이야기/길에서 만난 풍경

이런 만남 저런 만남이 스치고 지난다

집 밖의 약속이 많아지면 피로가 극에 달한다. 매번 이리저리 핑계를 만들어도 꼭 나가야 할 일은 생기게 마련이다. 낙엽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땅 위에서 뱅뱅 돌며 이리저리 흩어지던 날. 나를 밖으로 불러내려는 친구들의 성화에 옷깃을 여미며 집을 나섰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가을도 끝자락이다. 화려하고 풍성하기는 제일인데도 이 계절은 왠지 쓸쓸하다. 알록달록한 단풍이 같은 공원을 다르게 보이게 하고 그 사이 숨어있던 사철 푸른 나무들을 돋보이게 한다. 플라타너스 흰 몸통에 알록달록 나무껍질이 벗겨지고 커다란 잎은 겨울을 맞느라 한 잎 두 잎 머리를 스치고 지난다. 분주히 한 곳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사이 나도 무리에 섞여 지하철로 향한다. 쏟아지는 햇살만 봐서는 도무지 찬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민 옷깃을 풀어도 될 정도로 실내는 따뜻하다. 약간 덥다는 느낌이다.


개찰구 옆 빵집의 냄새를 가까스로 외면하고 승강장으로 내려간다. 승강장에 사람이 많다는 건 열차가 금방 들어온다는 이야기다. 운이 좋다. 안전문에 있는 시를 채 다 읽기도 전에 기차가 들어온다. 적당한 사람들이 차있는 지하철로 들어선다.


한 무리의 여인들이 모임을 마치고 가는 길인가 보다. 한껏 모양을 낸 나이 든 그녀들이 매 역마다 작별인사를 한다. 다음을 기약하지만 웃지는 않는다. 그녀들의 굳어버린 얼굴을 보며 차창에 비친 내 표정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 차례대로 열차를 빠져나가고 자리가 듬성듬성 보인다. 내 앞은 아니다. 앞에 앉은 여인이 내게 손짓을 하며 건너편 자리에 앉으라 신호를 보낸다. 감사의 인사를 했지만 금방 내릴 거라며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렇게 목적지에 닿고 내렸다.


친구들과 정말 오랜만에 조우를 하고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그리고 헤어졌다. 듣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사람과 할 말이 많은 사람과 할 말이 없는 사람, 나이가 들며 모이는 모임에 공통의 소재는 점점 줄어든다. 각자의 사는 모양새가 바뀌고 위치가 바뀌고 생각이 바뀌는 중이다.


누군가는 뒤늦게 낳은 아직 학교에 다니는 늦둥이가 있고 누군가는 딸의 혼사로 분주하다. 누군가는 은퇴 후 소원이던 자영업을 시작하고 남편과 하루종일 고군분투하는 경험을 쏟아 놓는다. 카페는 돈 내고 들어가 손님일 때 낭만적이라며 운영은 매번 고생이라지만 표정은 밝다. 누군가는 재취업에 성공담을 늘어놓으며 평생 일을 해야 한다 하고 누군가는 그 사이 너무 부자가 되어 자산을 은근히 이야기한다. 그런 자랑 아닌 자랑이 한 번 훑고 간 뒤에는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간 얼마나 힘들었으며 무슨 일들로 맘이 안 좋았는지 지금은 무엇이 힘든지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가족들이 사선을 넘고 삶의 굴곡진 모퉁이를 돌아서며 웃다가 울다가... 깔깔대며 시작한 수다가 마음바닥을 드러내며 끝이 난다.


각자의 맞닿는 꼭짓점이 없이 풀어놓은 이야기보따리가 소진될 무렵 자신들이 기대하는 무언가가 되지 않은 친구를 걱정하는 안타까운 표정들이 갑자기 맞아떨어진다. 그런 삶이 괜찮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그 기대가 미치지 못함에 모두 한마음이 됐다. 그렇게 수다가 오고 가며 앉아있는 기운조차 앗아갈 때쯤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왔다. 점심을 먹었지만 맛이 기억이 나지 않고 돌아오는 길에 느끼는 한가로움이 오히려 반가워지는 기분이다. 기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사람은 도시의 소음과 분주함이 피로를 가중시킨다.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바쁘다. 어서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한꺼번에 밀어닥친 정보들이 뒤죽박죽 머릿속이 시끄럽다. 즐거웠다며 후기가 문자로 쏟아지는 와중에 눈뜨기도 버거워 그렇게 집으로 향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삶의 당연한 일들이 소음으로 느껴지던 순간이... 수선이 가라앉을 때쯤 지하철 객실에서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나를 발견했다. 넋이 나간 표정이다. 한 손으로 잡으면 그만일 손잡이를 두 손으로 매달려 잡고 있을 즈음 누군가 툭툭 팔을 건드린다. 길고 긴 청년이 나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앞에 난 자리를 양보한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 나에게 자신이 허리가 아파서 서있어야 한다고 나를 빈자리로 살짝 민다. 이제는 대놓고 자리를 양보받는 나이가 된 것도 그러고 싶지 않아 부지런히 젊은 척을 하는 일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주저할 형편도 아닌지라 쑥스러움을 외면하고 양보를 받고 앉아서 몇 정거장을 더왔다. 무겁게 내리 앉으면서도 아들 또래의 이 청년은 왜 허리가 안 좋을까, 너무 키가 커서일까 아님 나를 위한 선한 거짓말일까...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어쨌든 선선한 청년의 눈빛과 따뜻한 마음을 가슴에 담고 볕 좋은 가을날 하늘을 올려다보며 떨어지는 단풍잎을 얼굴에 맞으며 그렇게 집으로 온다. 가을을 가로질러 옛 기억으로 오늘로 다녀왔다. 오늘밤은 기척 없이 잠이 들리라….












https://youtu.be/xXBNlApwh0c?si=8QqokyTL_GyD3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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