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하늘HaruHaneul Aug 07. 2024

수요일의 이야기/느리고 사소한 순간의 힘

화분의 물을 주다가

화분에 물을 주며 시간을 생각한다. 느리고 사소한 이 시간들. 물 주기는 빨리 할 수가 없다. 뿌리가 물을 빨아들이는 동안 잎을 살피며 흙을 들여다보며 어느 한 곳으로 물이 빨리 사라지지 않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빨리 사라지는 물길은 흡수되지 못하고 화분 밖으로 자리잡지 못한 흙과 함께 급히 빠져나온다. 물을 흡수해야 할 뿌리 주변의 흙이 뭉치고 나뉘며 그 결과 수분이 흡수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방금 한 물 주기의 행위가 의미 없어지는 순간이다. 그러하다 보니 마음이 급하더라도 시간을 내어 천천히 해야 할 일중 하나다. 천천히 아주 조금씩 물을 주며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인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당연히 꼭 그렇게 해야 함을 실패를 통해 배웠다. 천천히 물을 주고 빈 공간을 메우고 화분 속을 이해하는 일. 참 중요한 일이다.


듬뿍 빨리 물을 주고 돌아서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고 비실거리며 우뚝 서지 못하는 축 처진 잎들을 보다가 다시 물을 듬뿍 또 준다. 며칠이 지나면 더욱더 힘이 없어진다. 흙 속의 뿌리가 썩어 들어가며 죽어가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들을 놓쳐버린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식물을 기르며 시간과 삶을 배운다. 수선스럽지 않고 느리고 사소한 시간들이 만들어 내는 시간의 힘을 배운다. 빨리 해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사소한 것들의 큰 힘에 대해 중요해 보이지 않는 순간이 만들어 내는 위대함에 대해 들여다보며 인생을 배운다.


본질을 간과하고 제 때를 놓쳐 정작 중요한 뿌리를 잃는 일은 인생이 휘청거리는 결과를 만들어냄을 이야기한다. 뿌리가 썩으면 다시 회복할 기회는 0에 수렴한다. 그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신경 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딱딱한 흙과 뒤엉킨 뿌리에 다가서는 일. 천천히 조심스럽게 시간을 두고 삶을 가꾸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만들어 놓고 화분 탓을 식물 탓을 물탓을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돌아봐야 하는 건 나의 물 주기 습관이다.


알토란 같은 꾸준한 하루가 만들어내는 인생의 의미를 해가 지려는 시간에 깨닫게 된다. 늦지 않았음을 감사하게 된다. 중요하다 여겼던 모든 것들이 길에서 휘청거리는 풍선처럼 우뚝 서있다가 바람 빠지듯이 사라지는 인생. 정작 중요한 건 그 풍선의 크기도 색깔도 아닌 바람이 들어있지 않은 작고 단단한 삶이라는 알았다.


조용히 오고 가는 시간들. 자신과 만나고 해야 할 일들을 반복하다가 만나게 되는 결과물. 그 결과물이 삶이라는 걸 뒤늦게 배웠다.


쌓아가는 시간과 그 시간들이 생산해 내는 결과물과 무시하는 푼돈이 시간과 만나며 이루어내는 복리의 삶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살아보면 안다. 하루가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재미없고 사소한 일들을 반복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공을 들여 화분에 물을 준다. 천천히 오랫동안 물을 준다. 찬물에 잎을 띄운 물사발처럼 그렇게 천천히 물을 준다. 삶도 그렇게 살아간다.






https://youtu.be/U_uxKqTpyc4?si=lCdXeAyrIJI8XDRE

이전 06화 수요일의 이야기/그림자를 들여다 보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