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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늘HaruHaneul Jul 17. 2024

수요일의 이야기/3번일까? 0번일까?

팀전에 임하는 마음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그녀는 아이가 셋이고 다섯 식구다. 가족들 이름대신 숫자를 붙여서 이야기한다. 1번이 나가고 2번이 어쩌고 3번은 저쩌고... 하는 식이다. 숫자에서 은근 서열이 느껴지기도 하고 권력구조가 보이는 듯도 하다. 그리고 헷갈릴 만도 하다.


전화를 끊고 돌아서다 문득 나는 몇 번일까 생각했다. 우리 집의 관계는 어떤 상태일까? 달랑 세 식구에 웬 번혼가 싶겠지만 궁금한 마음이 들어 써보기로 한다.


0, 1, 2? 아님 1, 2, 3? 팀전을 치르는 중이다. 나는 3번일까? 0번일까? 


많지도 않은 팀원들 중 나는 팀장일까? 나머지 인원이 팀원으로 인식되는 걸 보면 나는 팀장일지도 모른다. 별 권한이 없어 보이는 팀장. 아니 이 팀은 모두 자신이 팀장이라 여기며 사는 중 인지도 모른다. 명목상의 팀장은 확실해 보이니 그를 가장이라 부른다. 그리고 최측근인 나와 최고 권력자인 아이가 있는 팀이다. 많지도 않은 숫자로 팀원 운운하는 내가 기가 찰지도 모르겠다. 


소수의 팀도 팀이고 다수의 팀도 팀이다. 크기의 문제일 뿐 '가족'이라는 팀은 그렇게 구성된다. 각각의 구성원들은 원구성이 다른 팀에서 차출되어 새로운 팀을 구성한다. 인간사회는 그렇게 증식하고 새롭게 만난 구성원들이 또다시 증식을 도모한다. 늘 그 도모가 성공하는 것도 아니며 증식이 계속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만만한 일은 없다.


습도가 높은 장마철 아침 동이 튼 이른 새벽 팀원들은 각자 출근을 준비한다. 그림자처럼 출근을 돕는 내가 있다. 물 먹은 수요일의 몸뚱이와 영혼을 일으키고 별 내용은 없지만 작은 대화를 시도하고 웃음으로 일어날 수 있다면 오늘의 잔적은 성공이다. 0번이 되는 순간이다. 1번과 2번이 왠지 모르게 신이 나서 나갔으니 말이다. 그 이유가 내가 아님에도 매일 치르는 고요한 출근전쟁이다. 감정의 진동을 느끼고 파동이 안정되게 하는 일이 최고의 임무가 되는 하루의 시작. 역할을 찾아 그 임무를 해낸다. 


장거리 달리기의 마지막 트랙을 도느라 지친 한 사람의 페이스 메이커가 돼야 하고 이제 갓 시작한 신입의 보이지 않는 올타임 페리테일이 되어야 하는 막중한 업무다. 피로와 지침이 온 어깨에 가득할 때면 그 무게를 알아주고 위로를 나누는 팀장이 되어야 한다. 물폭탄 사이 팀원들이 전투를 하러 나간다. 


눅눅함이 기본값이 되는 여름날의 시작을 마음만이라도 뽀송하게 등을 두드려줘야 한다. 집안의 실세는 아침부터 빈 사무실에 출근해 팀장의 대화상대가 돼주고 그렇게 사회생활 만렙의 빙그레가 되어간다. 


팀원들이 복귀하기까지 남은 하루를 챙기고 마무리를 준비한다. 더운 날엔 더위를 식혀 줄 음식을 마련하고 스트레스 가득으로 하루를 마감할 땐 매운 음식도 필요하다. 내일을 위한 마음을 재정비할 전투식량인 거다.


그렇게 순차적인 복귀가 끝이 나면 길고 긴 하루가 끝이 난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삶의 귀퉁이를 붙잡고 하루를 버티고 견뎌낸다. 서로 역할을 제대로 하며 자신의 몫을 해내지 않으면 지는 싸움이다. 지는 것보다 문제는 사망이다. 죽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하루를 보낸다.


한 달을 보낸다. 일 년을 살아내고 일생을 조율한다. 점점 더 요령이 늘어간다. 아니 전략과 전술이 늘어난다는 것이 좋겠다. 팀을 이룬다는 것, 팀원을 들여다보는 일, 갈등의 고리를 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실타래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이 막중한 임무.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문제다. 결국엔 해낸다. 3번 포지션에 0번의 역할이다. 


삶은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사투를 벌이는 일이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무릎이 꺾이는 좌절을 온 힘을 다해 끌어올리며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에 의지해 어딘가를 향해 부지런히 나아가는 한결같음이 만들어 내는 하모니. 그 하모니가 불협화음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온전한 삶은 팀원이 트리오가 되어 부르는 노래. 듣기 좋은 노래가 되기까지 듣기 싫은 그 불협화음을 조절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나왔는지 이럴 땐 사라져 가는 기억이 고마울 뿐이다. 


비 오는 수요일 아침이 힘든 건 출근하는 두 사람을 기분 좋게 보내야 하는 중책을 맡은 만년졸병 3번에게도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0번인 줄 알고 사는 영원한 3번의 이른 아침 상념이 전투를 불러왔다. 


 




https://youtu.be/2v18oySsS58?si=_U9Eonv2AyGdO61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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