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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늘HaruHaneul Dec 11. 2024

수요일의 이야기/계절이 보내는 신호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저장해야 하나?

잔설이 오랜만의 맑은 햇살에 위태롭다. 기록적인 폭설도 이상기후의 변덕에 숏츠처럼 빠른 속도로 오고 간다. 감각의 길이가 극도로 짧아지고 제한된다. 감탄이 끝날새도 없이 다른 풍경이 연출된다. 기다림이 기본값이던 옛사람에게 이런 속도는 언제나 크게 다가온다. 다행이라 여긴 건 매일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의 안전한 길을 확보했다는 안도감뿐이다.


디지털 기기에 노출을 최소한으로 하고 있다. 시력의 문제가 가장 크다. 그럼에도 난 노트북에 글을 쓰고 허공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 누적 또한 전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며 자판을 누른다. 노트에 남기던 기록들이 서서히 공중으로 흩어지고 있다.


종종 들르는 신도시 대형마트의 건물옆에는 거대한 크기의 데이터 센터가 있다. 그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는 작은 초록동산이 있었다. 가끔씩 가다 보니 변화가 눈에 크게 보인다. 점점 사라져 가는 녹지와 바짝 붙어서 들어서는 건물들 그리고 그 사이 데이터 센터.


온라인에 써놓으면 내 물리적 경계를 벗어나니 내 삶이 간소해진다는 무지한 착각을 하던 중에 보란 듯이 눈앞에 나타난 건물이다. 각각의 데이터가 이런 곳으로 모이고 저장되고 빅데이터를 제공하고 그러느라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고 그렇다는 이야기다. 온도와 습도를 맞춰줘야 하는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보관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컴퓨터는 성인이 되고 나서 나온 새로운 세계다. 이곳의 언어는 모두 낯설다. 그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 20대와 함께 최고령으로 같이 자리에 앉아 자격증까지 취득하는 만용을 부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나에게는 비포장이다. 미지의 세계다.


다른 나라 언어를 배워 본 사람은 이해하리라. 읽고 쓸 줄 안다고 그 나라 문화까지 익혀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읽을 줄 알아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국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디지털 세상의 속도는 비포장에 최고속력이다. 멀미는 기본이고 속도가 빨라 내릴 수도 없다.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익숙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내가 손으로 익혀 온 나의 시간들만큼이다. 경험이 만들어 내는 속도에 익숙하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도전을 하며 앞으로 가는 대신 시력을 지불했다.


그럼에도 다음 세대가 쓰는 언어니 잘 하진 못해도 그 작동원리와 눈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해는 필요했고 그렇게 나는 디지털 신생아를 지나 할 말을 조금씩 하는 꼬마가 되어가고 있다.


아직 판단도 서투르고 몰라서 헤매는 일도 많지만 이제는 조금씩 앞으로 가며 그 공간을 이해하는 중이다. 이 이미지는 얼마나 많은 공간과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지, 이 문서의 보관은 지금 당장 필요한지 아닌지를 옛 방식으로 자꾸 생각하게 된다.  


사고를 바꾸며 지금 보관하지 않아도 다시 찾을 수 있고 실제로 원하는 만큼의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컴퓨터가 얼마나 버거워하는지도 알게 됐다. 그러니 습작을 보관하는 일은 기억 속으로 보내고 무조건 지우고 다시 해야 한다. 물류비용에 대한 이해를 하는 사람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데이터 센터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용을 치르는 일과 환경을 거스르는 일에 신경이 쓰임은 당연한 일이다. 자고 일어나면 기술이 급성장하고 그 속도에 압도되어 공포를 느낀다. 미래 언젠가는 마구 쏟아내는 이 많은 데이터들이 모두 힘을 합쳐 어떤 형태의 일을 벌일지 모른다.


쌓이는 데이터와 좋아요, 지우지 않은 이메일과  저장된 문서들, 그리고 마구 담아놓은 이미지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만들어 내는 데이터의 양. 그리고 그걸 무한반복하며 저장하느라 늘어나는 아름답지 못한 건물들. 대신 반납한 녹지. 그 끝이 어딜지 모르겠다.


해마다 갱신되는 사전의 삭제단어가 모두 나무의 이름과 꽃의 이름, 동물의 이름 등 자연물의 이름이고 새로 기재되는 단어는 '복붙'같은 신조어이다. 나중에 남아있게 되는 어휘는 아마도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자연을 반납하고 대신 기술발전이 사전의 페이지를 늘려가고 있다.


계절이 지나는 사이 마술을 부리듯 다녀가는 자연이 건네는 신호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미뤄둔 이메일을 삭제하고 쓰레기통을 비운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에 살며 허공에 늘어놓은 자료들을 삭제하고 지우며 생각해 본다. 감동도 오지랖도 줄이며 스스로 대화를 시도해 본다.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저장해야 하는지….








https://youtu.be/_dl16a3jPm4?si=S5vB9P3SZDT4aQ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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