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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늘HaruHaneul Dec 04. 2024

수요일의 이야기/붕어빵이 되기 전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틀을 생각해 본다

연말을 느끼는 순간은 계절의 변화도 있지만 그 스산함 사이를 메우는 전망과 예측들이다. 한 해가 눈 깜짝할 사이 지나니 그런 미리 보기의 결과에 대해서는 연말에 눈에 불을 켜고 관심을 보일 때와는 다른 자세를 갖는다. 그저 지키지 않는 겨울방학 계획처럼 전망과 예측을 이야기하고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는 돈으로 환산된다. 행동하지 않는 기대는 결국 낭비다.


해마다 연말이면 새로운 단어가 등재되고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올해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는 ''뇌 부패(brain rot;소셜미디어의 과잉소비로 인한 여가시간에 대한 우려와 인식의 퇴화를 의미)'을 올 해의 단어로 선정했고 케임브리지 사전은 '매니페스트(manifest;원하는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상상하는 것)'를 선정했다.


19세기 중반 이미 썩어가는 감자(영국의 문화적 배경) 말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뇌도 걱정하라는 철학자의 앞서간 우려에도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인터넷의 발달로 악화됐다. 그럼에도 경각심은 타인의 문제로 존재하고 실제적인 행동이나 교정은 이뤄지지 않는다.


1990년대의 단어가 'Web'이 된 이래로 그 거미줄 같은 세상의 가까워짐과 동시성이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세기에 태어나 19세기 학자들의 영향을 받고 자라난 우리 세대는 이 두 세계의 간극을 명확히 느끼는 세대다. 물리적으로도 원활한 소통이 어려운 거미줄 밖의 세대지만 그럼에도 그 이전의 시간들이 갖고 있던 중요한 근본에 익숙함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스럽다. 더불어 그 거미줄 속에 태어나 헤어 나오지 못한 채로 익숙해져 버린 젊은 세대들이 안타까운 이유이기도 하다.


생각해야 하고 깨달아야 하고 느껴야 하며 고통이 환희가 되는 긴 고난을 감내해야 하고 이 모든 것들이 느린 시간 속에 숙성되어야 함을 서서히 체득했던 일은 이제 와서 보면 인류의 역사에선 행운의 한 시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부족함이 격려와 응원이 되어 이뤘던 지적 호기심과 기꺼이 감내했던 어려운 사회상황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절대적인 원동력이었고 결핍의 소산이었다. 그렇게 살아나 존재하고 있음이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녀와 같이 존재하는 이 모진 시간의 책임은 젊은 세대의 고통이 기성세대가 어루만져주고 본을 보이지 못해 만들어진 가슴 아픈 결과물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진짜와 가짜가 모호해지고 옳고 그름이 흐트러졌으며 보이는 것과 존재 사이의 혼동이 극에 달해 판단을 보류하다 포기하기에 이른 듯이 보인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완벽한 틀에 자신을 가두고 지어낸 영역에 자신을 던지며 스스로를 확인하려는 안타까운 세대이기도 하다. 그 틀을 벗어나 온전히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함이 불안해 선택하는 그 붕어빵 같은 삶.


이제는 인식의 틀을 깨고 나와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본 적 없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남이  필요한 시간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작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같은 직업의 복제와 같은 모습의 외형을 가진 클론들이 모여있는 모습. 아직은 그 모습이 어색하다 느끼는 그 판단에 안도를 한다. 모두가 비슷해지고 완벽하게 똑같아지는 건 비정상임을 꿈에서 깨어나듯 불현듯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옥스퍼드 사전에서 주목한 뇌의 썩음 대신 캠브리지 사전의 매니페스트를 마음에 담아본다. 완벽하려는 마음과 너무 잘하려 주저하는 마음대신 주어진 것 들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스스로 분명히 원하는 방향을 가지고 나아가 그곳에 다다를 수 있는 다음 해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https://youtu.be/kqPwR39VMh0?si=x7TAm78D9Tbx0mx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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