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하늘HaruHaneul Nov 27. 2024

수요일의 이야기/버려야 할 것들

물건만이 아니더라

정리가 일상인 삶이다. 스스로에 대한 배려고 남아있는 날들을 선명하게 하려는 의도다. 정신없이 어질러 놓은 채로 세상을 저버리고 싶지 않은 욕심이다. 버리기 어려워 망설여질 때마다 이유를 생각하고 마음을 달래는 일이 허다하다.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구입할 때 치렀던 비용과 어렵사리 마련한 그 마음이 소유한 물건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런 마음을 알게 된 다음부터 '구입'에 대한 자세를 바꿨다. '필요'를 되묻고 그렇게 '불필요함'이 삶에서 하나 둘 삭제되었다.


산다는 건 꼭 필요한 것들만 남아서 같이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생겨난다.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소용이 없어진 걸까?


문득 그 목록이 타인과 같을 수는 없으며 지극히 사적이라는 생각에 '버림'이 더 신중해졌다. 버림보다는 정리가 맞을 것이다. 나의 세계로 들어와 정 붙인 것들에 대한 애정은 그것과 함께 한 시간이다. 때로는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은' 무언가가 내게 의미가 있고 소용이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지난 시간의 궤적이 만들어 낸 그 포물선을 모두가 같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사소하게 담겨있는 때 묻은 추억을 떠올리며 건강하게 자란 자식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소중히 간직해야 할 무형의 것들을 추려내는 중이다.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다. 나만 아는 우리만 아는 추억의 부분이니 말이다. 같은 값을 치르고 산 같은 물건이 아니라 함께 한 시간에 같이 엮어 낸 마음의 동아줄 같은 추억이 묻은 물건은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사소해도 소중한 것이 있고 귀해도 의미 없는 것이 있다. 지극히 사적인 '귀함'을 챙기며 정리를 한다. 그 사소함이 물건을 지나 마음으로 연결된다. 나이가 드니 가족이 더 많이 보인다. 철이 드는 중인가 보다. 너무 늦었나 하는 후회는 안 하기로 했다. 나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므로 할 수 있는 지금에 집중하기로 한다.


앞만 보고 전력질주하던 시간들에 돌아보지 못했던 가족들과의 시간을 채우느라 오늘이 분주하다. 우선순위에 가족이 1번으로 바뀌었다. 이제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다행이다.


한 길만 파는 동안 시야는 그만큼 깊고 좁아진다. 동시에 넓고 여유도 있고 한없이 유연하면 금상첨화다. 균형을 맞춘 이상적인 삶은 그리 흔하지 않다.


공통의 교육과정을 벗어나면서부터는 일체의 교양은 스스로 체득하거나 공부하지 않으면 정체되거나 퇴화된다. 많은 학위를 겸비한 학문의 깊이가 인격까지 같이 성장시키지는 않는다. 대신에 자신의 분야에 깊이 몰두하는 대가로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길을 벗어나면 다른 분야에선 문외한이 되고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스스로 해야 할 공부가 많아짐은 당연한 귀결이다.



모두 길에서 경험할 수는 없으니 쌓아놓은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에 해야 할 일들과 우선순위에 집중해야 한다. 물건의 정리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이 분명해지는 것처럼 마음의 정리도 해야 하는 시간이 온다. 이걸 배워야 아느냐고 반문하면 할 말이 없다. 살아온 삶에서 저절로 깨닫는 삶은 성숙한 삶이다. 모두가 그렇게 당연히 성숙해지지는 않는다.


전문적 지식과 삶의 지혜가 간극이 크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어릴 때 보던 어른은 모두 지위와 직업에 인격도 포함한다 믿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선망하는 '이런 직업'과 그렇지 않은 '저런 직업'이 존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음에 '자각'이라는 것이 필요하고 '인식'이라는 것이 절실한 이유다.


물건을 정리하며 소중한 추억들과 함께 한 기억들을 챙긴다. 그리고 공중에 날아오르는 마음을 끌어다 앉히고 여전히 서툰 아이 같은 내면을 돌아본다. 존중받았던 만큼 자라지 못했던 삶이 큰 길가에 나선 아이처럼 흔들린다. 나이가 들어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려 무진 애를 쓴다. 지난 시간이 가져다준 오만과 위선을 떨치고 그저 한 사람으로 무르익으려 마음을 들여다본다.


버려야 할 것은 낡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속에 꼭 부둥켜안은 지난 시간인지도 모른다. 기억은 기억인 채로 남겨놓고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 내려앉아 발 밑을 살펴야 한다. 이제는 살림도 마음도 정갈하게 정리하여 남은 삶을 명징하게 살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는 동안에 내 몸이 성한 시간에 말이다.







https://youtu.be/Y7UTWYO25Y4?si=YFbFlPkwSe8et-dC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