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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코알라 Nov 10. 2022

아이와 함께하는 마흔의 성장

with 초등학교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아이만큼이나 고팠던 나,

일상을 계속 잃어가던 그 때, 15년간 잘 다니던 직장을 내려놓는 결정을 하고




15년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건 금새 커가고 있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나 역시 아이만큼이나 고팠기 때문이었다. 3년이라는 육아휴직도 다 써버리고, 이젠 아이와 나의 버티기만이 남아있던 그 때 일상의 아무런 변수가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 버티기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유치원 졸업 공연을 한창 준비하던 그 때, 일상의 큰 변화를 가져온 코로나가 한창 시작되어 전국은 마스크안에 갇혀버렸다. 막바지 연습까지 진행되었던 아이의 졸업식 공연도 결국 취소되었고, 아이는 그렇게 일상을 잃어가고 있었다. 한명씩 유치원에 가서 졸업장을 받아오는 유례없는 졸업식을 마치고 코로나는 점점 심해져 결국 초등학교 입학식은 없.었.다.


입학식도 없었고. 교실 안에 아이들도 없었다.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어 아이들은 모니터 화면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야 했고, 나의 아이는 1학년 1반 교실이 아닌 돌봄교실로 등교를 시작했다. 그렇게 돌봄교실 덕분에 1학년은 버티기를 마칠 수 있었지만 2학년이 되고 돌봄교실 추첨에서 떨어졌다. 그 날 퇴사를 결심했고 한때는 평생직장이라고 여겼던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내려놓는 결정을 하는데는 사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일상을 잃어가면서도 아이는 쑥쑥 커가고 있었고 이제는 아이 옆에서 오롯이 엄마로 보내는 일상을 함께하고 싶었다. 더 이상 아이를 기다리게 하는 엄마가 아닌,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로 살아가기로 했다.



코로나로 전면 원격수업이 진행되던 그때, 나의 퇴사 후 딸과 함께 맞이한 소중한 일상



어느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국어시간에 입모양을 보고 말하는 단어를 맞춰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친구들한테 입모양을 보여줄 수가 없어서 속상했어'

응? 순간 무슨 얘기인가했다. 얘기인즉슨 돌봄교실에서 원격수업을 받는 아이는 마스크를 벗을 수가 없으니 집에서 수업을 듣는 아이들처럼 입모양을 보여줄수가 없었던 것이다.


머리가 띵해졌다. 아이는 그동안 원격수업을 받으면서도 친구들의 얼굴을 보기만하고, 마스크를 벗지 못하기에 얼굴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거지?하는 생각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나의 퇴사 후, 집에서 원격수업을 하게 된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에도 몇번씩 생각했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안그래도 잃어가는 일상이 많은 아이에게, 엄마가 함께하며 지켜줄 수 있는 소중한 일상이 생겼다.


여느아이처럼 내복바지를 입고 듣는 아이의 원격수업, 너무나도 소중한 일상



대면수업이 시작되며 학교에 가는 일상을 찾은 아이

교육대학원 입시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나, 기초학력강사로 학교 경험을 쌓아가며



아이는 조금씩 그렇게 일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2학기가 되고는 다행히 대면수업으로 전환되며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또래와 함께하는 소중한 일상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 가는 일상이 찾아오자, 몸이 근질근질(?)해지는 나를 느꼈다. 15년간 일해 온 워킹맘의 지독한 근성이 남아있는 탓일까, 워낙 계획적이고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데에 익숙한 나의 생체리듬 때문일까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생기자 마음 속 깊은 곳에만 켜켜이 쌓여있었던 하고 싶었던 일들이 하나 둘 수면위로 떠올라 나를 설레이게 했다. 좋아하는 책도 마음껏 읽고, 쓰고 싶었던 글도 마음껏 쓰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목표가 생겼다. 머리가 더 굳기 전에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교원자격증'을 취득해 놓으면 나중에 아이가 조금 더 컸을 때 아이와의 일상도 함께하면서 일을 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아이와의 교감과 공감을 지속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끌려 도전을 시작했다.


그렇게 교육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며, 책상에 앉아서 이론 공부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으려면 학교에서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사실 더 솔직한 접근은 경쟁율이 높은 교육대학원 입시에서 대부분은 교육경험을 가지고 있는 현직교사들과 경쟁해야 하기에 나도 경쟁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먼저 였다.)


교원자격증이 없는 내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고 내가 찾은 일은'온배움튜터'와 '기초학력협력강사'였다.

기초학력협력강사는 코로나19장기화에 따른 학습결손 및 기초학력 부족에 대한 우려와 수업 내 학습부진 예방을 통한 기초학력을 보장하고자 교육청에서 주관하여 학교마다 채용하는 강사였고 교원자격증 소지자와 교육대학원 재학생, 교사임용 대기자, 방과후학교 강사 유경험자 등에 해당되어야 우선순위가 된다. 이 중에서 내가 해당되는 항목은 없었지만 학부에서 아동복지를 전공하며 취득했던 보육교사 자격증이 있었기에 기타 학교장이 정하는 사항에 해당하는 자!라는 항목을  깨알같이 읽어내고 신청했다.


그렇게 초등학교에 가서 면접을 보고, 경험은 없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나의 포부를 당당히 보여주며 첫 해는 '온배움튜터'로, 다음해에는 '기초학력협력강사'로 근무하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학교 경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기초학력협력강사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이 포스팅 이후 많은 문의를 받았다. 대부분은 아이엄마로 경력이 단절된 이전 교사나 강사이력이 있는 분들, 또는 교육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분들이었는데 나에게 소중한 경험이 된 '기초학력협력강사'에 대한 문의를 주셔서 응답해드리고 있다.

<기초학력협력강사는 거주지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모집공고를 확인하실 수 있으며 보통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과 9월 전후로 주로 모집을 하고 있다. 기초학력협력강사의 역할은 정규수업 시간에 담임교사와 협력수업 또는 보조수업 진행, 협력수업에 필요한 교사와의 협의회 진행, 활동일지 작성이 주 업무이다>



40대가 되어 다시 시작한 공부는 어렵지만 재밌다. 무엇보다도 어른에게도 중요한 성취감을 얻는 시간이 된다.



아이들과 교실에서 함께한 시간을 통해 내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았던 시간,

ADHD 아동, 학습부진아동 등 학교 부적응 아동이 많았던 1학년 *반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충분한 공감과 수용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을 함께하며




첫해에는 온배움튜터로 근무하여 1학년 *반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했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기 전 1학년*반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수업운영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였는데 *반에는 ADHD로 약물을 복용중인 아동을 비롯하여 장애아동, 주의산만 아동, 학습부진 아동 등 개별지도가 필요한 아이들이 많이 있었고 담임선생님은 지금껏 혼자 반을 이끌어오시느라 많이 지치실법도 한데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충만하신 분이셨다.


담임선생님과의 협의를 통해 개별지도가 특별히 필요한 아이들의 특성을 먼저 익힐 수 있었고 선생님이 전체수업을 진행하실 때 전체 수업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지도 및 학습부진아동에 대한 개별 지도를 하기로 했다.


교실에 들어서자,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몇 아이들이 보였고 이내 선생님께서 얘기해주신 아이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직도 처음 교실에서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수업이 시작됨과 동시에 교실을 배회하며 돌아다니다가 사물함 위에 올라가는 아이, 복도로 나가버리는 아이의 모습에서 내가 해야할 역할을 인지할 수 있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는 활동조차 어려워하는 아이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걸까. 먼저 아이의 어려움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게 교실에서의 아이들과의 만남이 시간을 더해가고 있었고 난 개별지도가 필요한 아이들과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을 지속했고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아이는 약물의 도움을 받으면 어느정도 진정이 되는 ADHD의 전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아이는 스스로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지하기에는 몸도 마음도 어렸다. 특히 두 아이가 그러했는데 그 아이들과는 복도에서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실에서 돌아다니며 큰 소리를 내는 행동이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이라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아이의 생각을 물었고 아이가 답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줬다. 또 그런 행동을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울 때는 선생님한테 도움을 요청해달라고 했으며 언제든 도와 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신뢰감을 주었다. 아이는 조금씩 수업시간에 앉아있는 시간을 늘려갔다. 그런과정에서 다시금 막무가내로 교실을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어느날은 도움을 먼저 요청하기도 하며 스스로 달라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교사가 학생에게 줄 수 있는 것, 어른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충분한 공감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여주는 수용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다시금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한글을 몰라 받아쓰기 시간이 되면 울음부터 터트리던 친구에게는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아이들의 발달과업인 자아존중감을 향상시켜주는 것이 필요했다. 글자를 모른다는 이유로 스스로에 대해 낮은 자아존중감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국어시간 뿐만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수업 시간에도 참여하기를 어려워했으며 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가 가진 학교부적응의 모습은 학업부진만이 아니었다. 자신감이 없는 아이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더욱이 먼저 친구에게 다가가는일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아이가 쉬는 시간에도 유독 집중력을 가지고 꾸준히 하는 것은 인형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아이의 강점을 찾아내고 알아차리는 것, 그 것을 발견하여 격려해주는 것은 교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난 아이에게서 발견한 강점을 꾸준히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그 강점으로 또래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친구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이에게는 그렇게 친구가 생겼고, 표정이 밝아졌다. 여전히 한글은 익히지 못했지만 받아쓰기 시간이 되어도 더 이상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수업시간이나 쉬는시간이나 언제나 담임선생님 주변을 맴돌며 선생님에게 과도한 애착을 보이던 아이, 집에서 늦둥이로 태어나 맞벌이 부모님 아래에서 불안정한 애착형성인해 분리불안을 겪는 아이였다.

아이는 수업시간에도 수시로 일어나 담임선생님 주변을 맴돌기도했고, 친구들에게도 같이 놀고 싶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며 군중 속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공감과 수용을 충분히 해주시는 담임선생님을 만난 것이 아이에게는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아이는 담임선생님을 통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다시한번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기에 만나는 교사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서 느껴볼 수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교사관을 다져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아직도 생생한 1학년*반 친구들을 만났던 마지막 날,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이 내게 건네 준 편지는 그동안 교실에서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모든

시간을 눈부시게 해주고.



마지막으로 근무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전날 담임선생님과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줄 편지를 쓰며 괜시리 울컥했었는데 다음날 그 편지를 손에 들고 교실에 갔고, 그런 내게 담임선생님과 아이들도 편지를 건네 주었다. 수북한 아이들의 편지 뭉치는 그동안 교실에서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모든 시간을 눈부시게 해주시에 충분했다.


아이들 한명한명을 떠올리며 편지를 쓰면서도 이렇게 바로 답장을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서로의 마음이 통하여 더욱 아름다웠던 마지막 인사였다. 특히나 나와 유난히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ADHD아이와 학습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은 아이, 수업시간에 너무나도 많이 돌아다녀서 나와 복도에 있었던 시간이 많았던 아이가 편지를 통해 항상 먼저 다가와줘서 고맙다는 말과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라는 마음을 꾹꾹 담아 전해주어 이 소중한 편지를 집에 와서도 읽고 또 읽으며 얼마나 아이들과의 만남을 감사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근무 계약종료에 따라 아이들의 방학보다 한달 먼저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이후 아이들이 방학하는 날 연주발표회를 한다며 초대를 해주어 가기로 약속을 하고 그렇게 다시 1학년 *반 교실을 찾았다.

한달만에 교실에 들어서는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또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카메라에 담아주신 담임선생님의 소중한 마음으로 이렇게 사진으로 남겨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의 기록



기초학력협력강사의 주 역할은 학습부진 아동의 기초학력을 지도하는 일이지만,

내가 경험한 것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공감과 수용으로 함께했던 시간

그래서 가르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시간



이렇게 첫 해 온배움튜터로 근무했던 시간이 소중하게 남아 다음해에도 기초학력협력강사에 지원하여 근무하며 2,3학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나의 아이와 같은 학년의 아이들과 함께하며 나의 아이를 통해 다른 아이를 이해해 볼수도 있었고, 다른 아이들을 통해 나의 아이를 이해해 볼수도 있어 엄마이자 예비교사로서 더 없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더불어 내가 새롭게 도전을 시작한 교사라는 직업에 스스로 부합하는지를 확인하고 느껴볼 수 있어 미래를 더욱 단단히 계획해 볼 수 있었다.



소중했던 학교에서의 경험,

경쟁율이 높은 교육대학원 입시에서 나만의 경쟁력을 만들어준 합격의 요인이 되고



또한 이러한 학교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며 학업계획서와 연구계획을 작성할 때도 충분히 녹여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대학원 면접장에서 학생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가진 경험을 토대로 교사관과 앞으로의 수학계획에 대한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어 합격의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내가 시험을 치른 교육대학원은 서류전형에서 300명 가까이 지원을 했고 1차 서류전형을 거쳐 100명대의 서류 통과자가 면접을 치뤄 최종 6명만이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가 있었다.


실제 입학하고 나니 동기 5명 중 4명은 이미 타교과 교원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었고 다른 한명 역시 상담사 수련을 받고 있는 병원학교 경력자로 탄탄한 자질을 갖춘 동기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나의 학교 경험이 동기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나만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로 생각되었다. 더불어 자라나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필요한 성취감을 다시금 맛볼 수 있었던 시간을 통해 한걸음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공무원에서 기초학력강사가 된 엄마,

이제는 40대 늦깍이 대학원생이 되어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나의 일상은 아이로 시작해 아이로 마무리되는 듯 하다. 아이로 인해 오래 다녔던 직장을 내려놓았지만 아이로 인해 새로운 목표가 생겼고 소중한 경험들이 더해지고 있다.

40대 늦깍이 대학원생이 되어 20~30대 친구들과 함께하는 팀과제도, 수십년만에 보는 학교 중간고사도, 어렵지만 즐겁고 낯설지만 신선한 경험들이다.

그리고 도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나의 아이는 나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

오늘도 생각한다. 아이와 어른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그 긍정의 상호작용에 대하여.


#기초학력협력강사

#초등학교강사

#온배움뷰터

#공무원퇴사

#40대

#교육대학원

#육아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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