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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행복, 클로버.

아무튼간에 행복하시길.

by 희소

성수역에 갔다. 날이 조금 풀리자 더욱 붐비는 사람들, 그 사이로 네 잎 클로버를 파는 아저씨가 보인다. 내가 잠시 시선을 둔 그 찰나의 순간에도 몇몇 무리의 사람들이 그 좌판을 서성이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행운, 얇은 한 겹의 코팅지 사이에는 행운을 기원하는 힘이 고요히 압착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그 힘을 절실하게 원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원하다 못해 모든 것을 갈아넣기도 한다. 갈아 넣는 수준을 넘어서 본인을 태워 재를 넣는 심정으로 열망하곤 한다. 그 간절함에 보답하듯 행운의 여신이 깃들어준다면 다행이겠지만, 행운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네 잎 클로버를 찾는 심정과 같이, 조우하기가 썩 쉽지만은 않다.


0.02%, 5000개의 토끼풀 중 하나의 꼴. 게다가 오천 개의 클로버가 있다고 해서 하나의 네 잎 클로버가 어떤 시스템처럼 확정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운이 좋다면, 1~2분도 안 돼서 찾아내는 ‘행운’을 목도하겠지만. 그런 행운이 매 순간 매 번 찾아오기를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다.


우리는 그런 희소성과 특별함을 알기 때문에 유달리도 네 잎클로버에 의미를 부여하고, 구매해서, 선물한다. 받는 이에게는 찾는 수고로움과 가치, 선물해 준 사람의 마음까지도 역시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네 잎 클로버 좌판이 번화가에 위치하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수 있고, 그런 수요가 있기 때문에 그 존재까지 유지되곤 한다.


하지만, 이 글을 쓰기에 앞서 클로버에 대해 조금 알아보았는데 그 결과, 허무하게도 클로버의 꽃말은 잎사귀의 개수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한다. 모든 클로버의 꽃말은 ‘약속, 행운, 평화’. 또한 애초에 잎말이 아니라 꽃말이기 때문에 잎사귀가 3개든 4개든 5개든 꽃말은 동일하다고… 듣고 생각해 보니 당연한 말이었지만, ‘네 잎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한다’라는 어떤 표어가 주는 웅장함에 함몰되어 스스로 생각을 멈춘 내가 잠시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행운을 찾기 위해 무수히 많은 행복을 짓밟고 있다.’ 네 잎클로버를 찾기 위해 세 잎클로버를 경시하지 말라는 취지의 짤막한 글이다.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글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유의 글 또한 클로버의 허위광고에 당한 피해자가 아닐까 하고 괜스레 씁쓸해지곤 한다.


최초에 이 글을 쓸 때에는, 나 또한 위의 글과 유사하게 행복에 대해 설파하고자 백지를 마주했다. 하지만 글을 쓰며 찾는 와중에 그것들이 허위로 퍼진 내용이었다는 걸 알아버렸다. 아무렴 어떠한가, 내가 클로버의 본래 꽃말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들이 상징하는 약속, 행운, 평화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무수히 많은 클로버들은 약속처럼 처음부터 그 흙밭에 존재했고, 누군가에게는 행운을 기원하는 힘이 되어주었으며, 또한 씨앗으로 시작해 그 땅에 청록색을 흩뿌렸다는, 그것이 다치지도 않고 며칠 몇 주를 넘어 무사히 용케도 내 눈에 가닿았다는 사실은 평화를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각자의 약속처럼, 행복을 지켜주는 클로버의 평화 자체야말로 행운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고자 애써 목에 핏대를 높여가며 그들의 평화를 부수고 싶지 않다. 그들이 몰라도 상관없다. 그들의 행복과 행운은 각자의 마음에서 추억의 형태로 초록빛을 발하며 위치할 테니. 혹은 그들도 언젠가 클로버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오늘 경험한 것처럼 부드러운 평화를 또다시 가슴속에 품길 바란다.


정보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식물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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