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한 달 전 신문, 발끝, 그리고 당신과 나
그녀는 버려진 종이 서적들을 주워다 읽기 시작했다. 습관이 되어버린 행동의 처음은 대낮에 버려진 일간지였다. 마침 무료했던 탓일까. 그녀는 개의치 않고 공중위생을 더럽히며 시장 구석에서 나부끼는 종이 뭉치 중 하나를 잡아 들었다. 무려 한 달 전에 나온 신문. 그런 걸 주웠다고 소감을 말할 만한 일은 생기지 않겠지만 그녀는 내심 왠지 모를 연민이 싹트는 걸 느꼈다.
동질감일까.
한 달 전 신문처럼 무시당하던 그녀의 젊음은 무용가가 되길 꿈꿔왔다. 팔을 우아하게 펴고 발끝을 쫑긋 세워 자신을 억압하는 세상을 찌르고 싶었다. 그녀의 속상함을 세상도 함께 느꼈으면 했다. 물론 자신의 발끝에 관심이 몰리는 걸 바라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단지 기회의 부재를 문제 삼고 싶었다. 누가 말했던가. 요즘 시대는 누구나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야 한다고. 예술은 삶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그래, 그자가 당장 발끝을 세워 춤을 춰 의식주가 해결되는 마법을 알고 있다면 집으로 초대해 얼마 남지 않은 티백을 꺼내 차를 대접할 수도 있다.
자 어찌 되었든, 그녀의 손에 쥐어진 더러운 신문이 다시 생명력을 가지게 된 순간이었다. 무엇이든 제 기능을 하는 순간엔 외관상의 깨끗함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목적만이 존재할 뿐. 그녀의 충혈된 눈이 글자를 하나하나 읊었다.
한 달 전 경제,
한 달 전 정치,
한 달 전 살인,
한 달 전 가십,
한 달 전 미래,
오래 걸리지 않아 그녀의 눈이 지면의 마지막 단어까지 도달했다. 그렇게 한 달 전 기사들을 모두 읽고 건진 문장 하나. '소외된 것들을 사랑하세요.' 핵심도 아니었던 문장에 그녀는 마법에 걸린 듯 기분이 나아졌다. 그녀는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엄숙히 신문을 재활용 통에 넣고 집으로 돌아와 물을 끓였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티백을 꺼내 자신에게 차를 한 잔 대접한다. 소외된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순간만큼은 그녀의 발끝엔 분노가 서려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