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흙덩이가 된 기분
책을 펼치니 활자들이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런 인상은 밤새 부대낀 이불이 외출에서 돌아온 나를 구겨진 채로 맞이할 때와 비슷하다. 제법 쌉쌀하고 가여운······.
오늘만큼은 이불을 매트리스 위에 곧게 펴두고 나는 바닥에서 자려한다. 날 보살펴준 답례로 한 번쯤은 주름살 없이 재워보련다.
익숙지 않은 바닥에 누운 하루는 고단하다. 어깨와 등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땅에 노크를 한다. 하지만 자신으로부터 불과 손바닥 몇 뼘치 떨어진 곳에서 지냈다 해서 나를 손님으로 맞을 생각은 없는 듯하다. 오히려 내 몸을 다시금 길들이려 한다.
천장을 바라보며 여태껏 지구의 속살을 얼마 들춰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번쩍 떠오른다. 삶의 터전도 알지 못하면서 인생(人生)을 깨우쳤느니 대단한 발견을 했느니 하던 자축의 업적들이 단숨에 나가떨어진다. 나는 생각하는 흙덩이가 된 기분을 만끽하며 나가떨어진 업적들 사이에 잠자코 누운 채 있는다. 위대한 포즈를 취하며.
내가 묻힐 곳은 지금 누운 지점에서 멀지 않으니 흙이 되면 지구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어요.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이불을 오래 덮고 자는 호사를 누려야겠습니다.
오늘은 이불에게 모처럼 휴가를 준 날이라 말이죠.
내일부턴 다시 땅과 몇 뼘 떨어져 있을 예정입니다.
한 줌 태양 빛에 인도되는 생명체로 살아가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