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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Jul 27. 2023

피아노를 진정 즐기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설마 그 길을 가는 건 아니겠지?

아이가 초등입학과 동시에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처음에 상담을 간 피아노학원은 태권도학원과 같이 나란히 같은 층에 있는 학원이었다. (엄마는 그 점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엄마도 숨 좀 쉬어야지^^) 상담 갔을 때 피아노 원장님께서 초등학생 딸 둘을 키우고 계신 분이셨다. 엄마의 마음까지 헤아려주는 분이었다. 교육관도 비슷하고 여러모로 맘에 들어서 바로 등록을 했다. 학교가 끝나면 피아노 학원 원장님께서 픽업을 도와주셨고 태권도 차를 타고 집으로 왔었다. 몇 달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학원 원장이 바뀌었다.


학벌을 내세우며 E 대학원을 졸업한 젊은 여자분이 원장이라고 연락을 해왔다. 또한 같이 예중, 예고를 졸업한 친구를 부원장으로 고용해서 최고의 강사진이 운영할 계획이라며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믿고 보내달라는 당찬 포부를 내세웠다. 그 상황에서 무엇보다 아이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아이는 일단 학원을 옮기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같이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고 그 사이 태권도에 대한 애정이 생겨서 2군데를 계속 다닌다고 했었다.

그때는 집에 피아노가 없어서 애가 피아노를 잘 치는지 제대로 잘 배우고 있은 지 확인할 방도는 없었다. 월말에는 항상 연주 동영상을 꼬박꼬박 촬영해서 보내주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어떤지 모르기도 하고 큰 기대를 하면 실망을 하게 될 수도 있어서) 그냥 잘하고 있는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다. 그리고 몇 달 후 학원 측에서 아이에게 콩쿠르에 나갈 것을 권유했었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아이도 나간다고 했고  엄마인 나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참가비와 콩쿠르 레슨비로 15만 원을 추가로 입금시켰다.


피아노 시작한 지 몇 달이 안되어 바이엘을 연주하는 아이였다. 건반을 마주한 지 7개월 차, 아이에게 본인의 수준보다 훨씬 어려운 곡이 콩쿠르곡으로 정해졌다. 그 곡을 소화해 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제법 잘 따라가는 모습을 보고 엄마로서 아이가 혹시 재능이 있는 건 아닌가? 잠시 착각을 하기도 했다. 콩쿠르를 두 달 남겨두고는 평일 2시간 이상 연습을 했고 막달에는 토요일 추가 3시간 특훈에 들어갔다. 초등1학년 학생이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천재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연습할 수 있는 아이가 얼마나 되려나? 의심스러웠지만 이미 참가 신청을 완료한 시점에서 차마 그만둘 수가 없었다.


아이는 피아노를 시작한 지 정확히 9개월을 꽉 채운 후 콩쿠르 무대에 섰다. 아이를 사이에 두고 앞 뒤에 참여한 아이들의 실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남편과 함께 그 현장에서 천재들은 역시나 다르다며 재능 있는 아이들은 따로 있는 것 같다고 동시에 얘기했고 우리 애는 그런 천재가 아님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상했듯이 그 애들이 준대상과 대상을 받았고 우리 아이는 특상을 받았다. 그리고 같이 대회에 참여한 그 학원 아이들은 (특상 다음의)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받았다.


콩쿠르가 끝나자마자 그다음 주 월요일, 학원에서는 다시 콩쿠르에 나갈 준비를 바로 시작했다. 학원 운영진이 기대했던 만큼 아이들이 잘 따라와 주지 않아서 실망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도 쉴 틈 없이 더 어려운 곡으로 준비를 시켜서 깜짝 놀랐다.

(참가한 아이가 대상을 받으면 그 학원 앞으로 최우수지도자상이 수여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물론 콩쿠르 대회 도전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빡센 훈련과 연습 덕분에 아이 피아노 실력이 좋아지는 건 사실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게 누구의 욕심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결국 얼마 후 우리는 아이와 고민 끝에 그 학원을 그만뒀다. 그 이후 동네에 집에서 소수로 개인 레슨을 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찾아갔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더니 여기서는 체르니 30번부터 소나티네를 시작한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힘들고 어려울 수고 있다고 천천히 해도 된다고 괜찮다고 하셨다.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괜스레 미안해졌다. 아이는 새로운 곳에서 소나티네 대신 반주법을 배우면서 콩쿠르의 압박에서 벗어났다. 그 선생님 덕분에 한동안 스트레스 없이 잘 배웠는데 그 선생님의 자녀가 입시를 마친 후 이사를 가셨다. 어쩔 수 없이 다른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다행히 지금 다니고 있는 학원은 아이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고 콩쿠르를 강요하지 않는 학원이다. 같은 자리에서 선생님이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곳이라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아이는 체르니 100번 끝날 때쯤 다시 소나티네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집에는 아파트의 특성을 고려하여 중고전자피아노를 들여놨다. 지금은 아이는 본인이 원할 때 언제든 연주를 한다.


아이는 초3이라 몸이 성장이 있는 만큼 손가락도 길어졌는지 콩쿠르 때 연습했던 곡들을 집에서 가끔씩 연주한다. 그 소리를 들어보면 그 시절보다 한층 소리가 여유롭다. 그저 단순히 외워서 치는 게 아니라 이제야 곡의 흐름을 알고 이해하며 연주하는 게 눈에 보인다. 새로운 곡은 악보를 보면서 도움 없이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본인이 꽂히는 곡이 생기면 될 때까지 연습을 한다. 본인 스스로 피아노를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지금은 피아노는 휴식이고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한가로운 오전 시간에 피아노를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계획 없는 여름방학이어서 그런지 아이가 피아노를 제대로 즐기고 있다. 한 때 콩쿠르에 대한 압박, 엄마의 착각 속에서 지나친 기대로 어린 나이에 그 무게를 견뎌냈던 아이의 어깨가 지금은 한결 가벼워 보인다.


 요즘 배우고 있는 곡을 몰입해서 안 되는 부분을 미친 듯이 연주하고 잠시 쉰다. 이번에는 쉬운 곡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고 녹음을 한다. 본인이 연주한 음악에 맞춰서 리코더를 불면서 합주를 한다. 방학숙제로 리코더 10분 연습하기가 있다면서 숙제를 열심히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그저 기특할 뿐이다.

역시 모든 일은 그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즐기면서 하는 게 참으로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아이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깨닫는 중이다.



앞으로가 진짜다. 30년 전 엄마는 체르니 40번과 50번 사이에서 한계를 느끼며 괴로워했었다. 결국 그 이상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져서 어느 순간 즐기지 못하고 피아노를 완전히 놓아버렸다. 그 뒤로 손가락이 굳어서 피아노를 잊고 살았는데 아이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어렴풋이 그때 생각이 난다.

(아이가 연주하다가 하나라도 틀리면 괜히 지적하고 싶을 정도로 아직 듣는 귀는 살아있는 게 단점이다)


너는 엄마처럼 스스로 포기하고 놓지 않길 바라며 음악(피아노)이라는 친구가 평생 함께 하길 바랄 뿐이다.





덧붙임) 전공할 거 아니라고 당근에서 값싼 전자 중고피아노 들였다가 수리비만 몇십만 원 나왔습니다. 전공할 거 아니라고 그냥 고쳐서 쓰고 있습니다. 중고 피아노 잘 알아보시고 구매하세요. 설마 이러다가 진짜 전공한다고 할까봐 사알짝 겁이 나네요.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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