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방학에는 방학이 짧아서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아이한테 얘기했다. (7월 20일 글 참조)
아이는 빨리 다음 주 수요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수요일 오전부터 Free Time이라고 했더니 그 시간만 손꼽아 기다린다. 엄마는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서 장바구니에 식재를 추가하며 방학 때 혹시 뭐 먹고 싶은 게 있는지 아이한테 물어봤다.
갑자기 먹는 거에 진심인 아이의 눈이 반짝인다. 뭔가 기다렸다는 듯 질문에 대한 답이 쏟아져 나온다. 평소에 엄마가 밥을 굶긴 적이 있었나? 먹고 싶은 음식이 술술 나온다.(엄마는 네가 원해서 계란찜을 자주 해 준 죄밖에 없다)
엄마는 이번 방학 때 삼시세끼 돌밥 모드 장착해서 매 끼니마다 정성을 다해 차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있다. 한데 아이가 말한 음식들 중에서 꼭 밖에서 먹어야만 하는 게 있다.이 더운 날 엄마를 위해서 그런 메뉴를 생각해 내다니 역시 엄마를 생각해 주는 건 너뿐이다. 너무 고맙다. 당장 딸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질문 하나로 인하여 우리는 뜻하지 않게 이번 여름 방학에 먹방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나 역시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엉덩이가 들썩인다. 그래 뭐부터 도전해 볼까?
1. 뷔페 - 애슐리 (당연히 집에서 불가능하다)
- 아이와 일 년에 두어 번 피노키오 만물상 구경을 갔었다. 얼마 전 오랜만에 구경을 갔는데 그 자리에 애슐리가 생겼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없어져서 아쉬워했다. 대신 아이는 다음에 여기 와서 먹고 싶다고 했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는지 방학 때 뷔페에 가고 싶다고 한다. 하긴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결혼식이나 돌잔치가 거의 없다. 오히려 조의금 낼 일이 더 많다.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을 기회가 별로 없다. 코로나 이전에는 육아 동지가 오면 애를 데리고 손님과 함께 평일에 애슐리에 갔었다. 자주 가던 곳이 코로나로 문을 닫아서 아쉬웠는데 다른 곳에 프리미엄 매장이 생긴 것이다. 그렇지만 주말에 세 식 구가 가면 가격이 꽤 비싸다. 예전에 평일 런치 9,900원, 지금은 19,900원으로 두 배가 되었다. 초등학생도 12,900원이다. 둘이 가면 32,800원이다. 싼 가격은 아니지만 방학이니까 평일 런치로 한 번쯤은 괜찮겠지? 대신 그날 저녁은 엄마는 패스하고 넌 김과 쌀밥으로 때우기로 하고 약속하고 딱 한 번은 엄마가 같이 가줄게.
2. 떡볶이(집에서 가능하긴 하지만 고객 만족이 어렵다)
- 마포의 SS시장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남편은 떡볶이 마니아다. 어릴 적 먹었던 추억의 떡볶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남편과 함께 알지도 못하는 그 맛을 찾아 여러 군데 떡볶이집 투어를 다녔다. 여전히 지금도 간간히 찾아다니지만 아직 완벽하게 찾지 못했다. 찾을 때까지 전국 떡볶이 맛집 투어는 계속될 예정이다. 마트에서 파는 시판 떡볶이는 그 맛이 아니란다. 뭔가 특별한 맛이란다. 내가 보기엔 분명 그 맛은 고향의 맛 다시다라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인정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그 떡볶이 맛집의 핵심 인물로 아이가 맛 평가단의 최고 위원이 되었다. 아빠와 함께 쿵짝모드로 이번 방학 때도 떡볶이 맛집을 찾아 나서고 싶다 한다. 그냥 편하게 배달시켜 줄까? 아님 엄마가 (직접 다시다 듬뿍 넣어서) 만들어 줄게 - 혹시 모르니 얼마 전 브런치 동기 작가님이 추천해 주신 미미떡볶이를 주문해 봐야겠다.
3. 스타벅스 샌드위치와 주스(집에서 얼추 흉내 가능하지만 집은 카페 분위기가 안 난다)
- 아이와 함께 여유로운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점심 먹고 카페를 갈 때가 있다. 요즘 핫플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가 칠팔천 원이고 아이가 먹을만한 음료나 주스가격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남편까지 같이 가면 밥값을 능가하는 지출에 부담이 돼서 오히려 스타벅스에 간다. 되도록 쿠폰을 이용하고 아이에게는 요거트나 주스를 주문해 준다. 가까운 곳에 스타벅스 대형매장이 2군데나 생겼다. 가끔씩큰맘 먹고 케이크이나 샌드위치를 주문해서 먹은 적이 있었다. 아이는 이번 방학 때 여유롭게 스타벅스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책을 읽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 다른 이유도 아니고 책을 읽고 싶다는데 당연히 가야지. 더군다나 우리는 방학 때 계획이 없잖아. 방학 내내 평일 오전 한가할 예정이니 맛있는 샌드위치와 함께 같이 여유를 부려보자. 카페 좋아하는 엄마가 기꺼이 함께 해줄게(사실은 엄마가 더 가고 싶을 수도)
4. 시흥하늘 휴게소의 갈릭버터토스트(집에서 가능하지만 비슷한 곳을 찾기로 했다)
- 봉담에 친한 남편의 후배가 살고 있어서 가끔씩 놀러 갔었다. 곧 후배부부가 출산 예정이라 당분간 가지 못한다. 언젠가 집에 오는 길에 시흥하늘 휴게소에 들렀다. 아이는 거기서 간식으로 토스트를 먹었다. 거기서 먹었던 맛을 잊지 못하는 모양이다. 매번 그 휴게소 토스트를 찾는다. 갈릭버터로 구운 식빵 사이에 햄과 치즈, 계란의 미친 조합으로 이루어진 달콤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그 맛에 빠지면 당연히 헤어 나올 수 없다. 더군다나 야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순도 100%인 토스트인데 어찌 그 맛을 잊을 수가 있으랴? 아이의 입은 정직하다. 입천장이 데이는 것도 모른 채 허겁지겁 먹는 네 모습을 엄마도 잊지 못한다. (이거 역시 엄마가 사준 게 아니다. 이것도 아빠가 사준 것이다. 역시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 휴게소에 갈 일이 없어서 먹을 일이 없는데도 계속 먹고 싶단다. 엄마가 집에서 해줄 수는 있는데 재료값이 더 많이 나올 것 같다. 비슷한 곳이 있는지 검색을 해봤다. 토스트로 유명한 OO드롭이 있다. 새로운 곳도 가보면 좋지. 어디 한번 도오전!
<집에서 직접 만든 떡볶이, 예전에 갔던 스타벅스 브런치와 시흥하늘휴게소 토스트>
그 뒤로 가격이 꽤 나가는 한우와 스테이크, 육회와 초밥, 탕수육 기타 등등 다른 메뉴들을 쉴 새 없이 계속 이야기했지만 못 들은 척했다. 괜히 물어봤다가 감당이 안될 정도다. 모든 것을 다 Ok 해줄 수는 없다. 너무 많으면 계획한 것도 지키지 못할뿐더러 무엇보다 식비가 예산 초과다. 신발 신으면 기본 10만 원이라는말이 있듯이 가볍게 나갔다가 어쩌면 탈탈 털릴지도 모른다. 한두 번 당한 게 아니다. 그 이상은 우리 욕심부리지말자. 네가 먹는 거에 진심인 건 당연히 알고 있지만방학 끽해봐야 16일인데 너무 오버하지 말자. 집밥 먹으면서 수위조절 하자. 엄마도 (돌밥 모드) 최대한 노력해 볼 테니 우리 방학기간 제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 플~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