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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Sep 13. 2023

행복했던 그녀와의 평일 데이트

다음에도 함께 해 줄거지?

연애 시절, 남편은 경기도 화성 근처에서 숙소생활을 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때 나는 주민등록상 서울시민이었다. 평일에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 주말에만 만났다. 평일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가끔씩은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만나서 편하게 밥 먹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 맘때 회사 여자 선배들이 언뜻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사람이랑 결혼하면 주말부부하는 거냐고 물어봤다. 주말부부는 삼대가 덕을 쌓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복이라고, 그 복을 네가 꼭 누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현재 결혼 13년 차다. 내 후손들을 위해서 나라도 지금부터 부지런히 덕을 쌓아야겠다)


역시나 그 복은 나에게 오지 않았다. 결혼 전 남편은 본인 집에서 출퇴근 가능한 현장으로 회사를 옮겼다. 그리고 신혼집은 본인집 위층이었다. 결혼해서 남편의 본가 위층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전에 그 말을 했던 선배들은 다시 생각해 보라고 격하게 내 결혼을 반대했다. 갑자기 미친 거 아니면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거냐고, 아님 돈이 엄청 많은 사람이냐고 그런 거 아니면 당장 헤어지라고 뜯어말렸다. 이미 스드메와 신행지를 알아보는 나에게 그런 말들이 들어올 틈은 1도 없었다. 한참 후 선배들의 그 고귀한 충언을 귓등으로 들었던 결과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는 것을 이제는 말해 뭐 하나. 이제는 더 이상 입만 아플 뿐이다. 어찌 되었든 몇 년 전 다행히 그곳을 빠져나와 세 식구가 지지고 볶고 어르고 달래가면서 어찌저찌 잘 살아가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감사한 일은 아직도 남편은 그 회사에 잘 다니고 있고 관리하는 현장이 지방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8월 말, 딸아이 여름방학을 무사히 마치고 평일의 행복을 누리던 시절 반가운 남편의 회식 소식에 자연스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평일에 남편이 있으면 저녁밥상이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아이와 둘이 있으면 간단히 해결해도 되지만 남편이 있으면 밥상이 달라진다. 찌개나 탕, 고기와 쌈 종류의 음식을 추가로 아니 메인 요리를 따로 준비한다. 그냥 한 끼 대충 때워도 되긴 하지만 그럴 때는 내 맘이 편치가 않다. 배달 음식도 치킨 종류가 아니면 가격대비 대부분 실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급하게라도 뭘 준비하는 게 경제적이다. 그렇다고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다. 이제는 주부 9단의 경력을 살려 내가 하면 다 맛없으니 기왕 먹는 거 맛있게 먹기로 작정하고 다*소스를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아이가 운동(치어리딩)을 다니는 중이다. 8월에 의외로 행사가 많아서 8월 말에 겨우 늦은 방학으로 일주일 휴강에 들어갔다. 피아노 학원도 안 가는 날이다. 아이도 학교만 다녀오면 스케줄이 없는 날, 남편까지 회식이라니! 쾌지나 칭칭 나네! 얼씨구! 조오타!

1년에 몇 번 없는 이런 날 집구석에서 겨우 계란찜에 밥 비벼 먹는 건 예의가 아니다. 이 영광을 친히 받들기 위해 곧바로 딸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남편과도 거의 하지 못했던 귀한 학기 중 평일 데이트. 게다가 집에서 (밥을)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아이와 지난여름방학 먹방 계획 4가지 중 시흥하늘 휴게소 갈릭버터토스트를 먹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방학은 지났지만 그 약속은 지키고 싶었다. 그렇다고 시흥하늘 휴게소까지는 갈 수가 없었다. 최대한 그와 비슷한 에그드랍으로 장소를 정했다. 벨라시타 지하에 가서 드디어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에그토스트를 먹었다. 하필 그 옆에 아딸 떡볶이도 있었다. 본의 아니게 범벅떡볶이도 추가했다. 토스트와 떡볶이가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았다. 괜히 옆에 있는 게 아니었다.

(남편이 여기에 함께 했으면 이건 간식이지 밥이 안된다며 분명 국밥이나 탕 하나 추가했을 것이다)

같이 토스트와 떡볶이를 먹으며 양쪽에 어떤 손님들이 오는지, 어디가 더 장사가 잘 되는지, 사람들이 토스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하면서 우리가 먹은 토스트 맛 평가와 함께 도란도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떡볶이가 살짝 매웠는지 물을 찾는 아이에게  정수기를 찾아 물을 갖다 줬다. 이런 날은  몸을 일으키는 일이 전혀 귀찮지 않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몸을 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가 솟구쳤다. 이제 다음 코스로 가보자!


먹고 나서 소화를 시킬 켬 교보문고에 가기 위해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 순간, 우리는 동시에 눈앞에 펼쳐진 하늘을 보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붉은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을 본 적이 있는가? 인간의 영역으로는 히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이 주는 선물까지 받게 되었다. 마음과 더불어 눈까지 호강하는 저녁노을 안 봤으면 어쩔 뻔했니?!


더군다나 해외여행 가본 지도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은 요즈음 꼭 유럽에 와 있는 갬성까지 밀려드는 이 길을 평일 이 시간에 걸어본 적이 있었나? 돌이켜본다. 한걸음 한걸음이 소중하고 소중한 시간만큼 우리들의 추억이 한 뼘씩 더해진다.


매일 저녁마다 (1차전 : 재빨리 언능 저녁밥 해치우고 설거지하고 뒷정리하고, 2차전 : 애 씻기고 잠깐 공부 봐주고 늦지 않게 재우고, 3차전 혼자 딴짓(?)- 핸드폰과 유튜브 보기) 치르는 전쟁에서 벗어나 평일 이 시간을 여기서 보내다니 정녕 현실인가? 꿈인가? 잠시 헷갈리기도 했다. 하늘을 보니 더 헷갈렸다. 기꺼이 빠져들 수만 있다면 영영 깨지 않은 꿈이길 바랄 뿐이다.


남들은 그동안 애 하나라고 수월하게 살아왔다고 무심코 얘기한다. 하지만 긴 옥탑방 살이와 육아의 터널이 적어도 내게는 쉽지 않았다. 그 안에서 그토록 바라왔던 건 다름 아님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로망이었다.


때로는 혼밥 하는 걸 꿈꾼 적도 있다. 혼자 카페에 가서 긴 시간 동안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올까?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이 없이 혼자 쇼핑을 하고 혼자 자전거를 타고 혼자 등산하는 날이 올까? 싶었는데 결국 아이가 초3이 된 지금 그 모든 걸 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아이러니하게 지금은 그 모든 걸 혼자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지금은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이 있지만 언젠가는 철저하게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워진다.

(외국 간 베프도 언제 올지 모르고 엉엉)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항상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남편과 이제는 엄마보다 더 현명한 결정을 잘 내리는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심이 마구마구 생긴다. 물론 주말은 되도록 식구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다양한 경험과 추억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셋이서 함께하는 시간은 주말이면 충분한 거쥬?ㅎㅎ)


그 안에서 단지, 평일에도 (저녁밥 안 하는) 이런 여유와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내는 게 가끔씩 아쉬울 뿐이다. (물론 밥 하는 기쁨과 행복은 매일 넘치도록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평소 일과 영업으로 바쁜 사람이다. 아이는 아직까지 엄마와 함께 곧잘 다니지만 곧 사춘기를 거쳐 본인 방에서 나오지 않은 중고딩 시기를 보낼 것이다.

아이가 더 자랄수록 우리 부부가 더 늙어 갈수록 식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 시간만큼 함께하는 시간 그 이상으로 넘쳐났으면 좋겠다.

때로는 둘이서, 때로는 다 같이 함께 했던 시간의 힘을 믿고 싶다. 그 시간들로 마음속에 굳건한 버팀목을 켜켜이 쌓아가면서 앞으로 각자의 인생도 따로 또 같이 꿋꿋이 살아갔으면 한다.





덧붙임) 추석 전 다음 주중에 지방 현장에 일이 생겨서 출장 소식을 전해주는 낄끼빠빠 남편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날이 빨리 오길 바라며 아이와 단둘이 평일 데이트 계획을 또 세워본다.

그 힘으로 길고 긴 추석연휴 다 함께 딱 붙어서 버텨내겠지? 흐미~인간적으로 추석 연휴 6일과 곧바로 그 담주 한글날 연휴까지 생각하니 (끼니 걱정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사진출처 : 그날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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