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로 구입한 패드에 넷플릭스 AI가 추천해 준 베이킹 시리즈를 정주행 하면서도 손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뭐라도 만들어야지 직성이 풀리는 아이의
오늘의 픽은 잉어빵 접기.
이런 건 또 어찌 이리 잘 만드는 거야?
그래, 요새 우리가 잉어빵을 많이 안 사먹었.. 지??
자다가도 팥이라면 벌떡 일어나서 게걸스럽게 먹자판을 벌일 수 있는 엄마.
그야말로 팥에 환장하는 엄마를 닮지 않아
팥도 싫어하고 팥이 들어간 잉어빵 역시싫어하는 아이. 워낙 먹성이 좋아 혹시나 싶어
(실은 엄마가 먹고 싶어서) 간식상에 일부러 몇 번 살포시 올려두었지만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뒤로 항상 혼자 독차지했던 내 사랑 잉어빵.
해마다 어김없이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아파트 정문건너편버스정류장 근처에 잉어빵가게가문을연다.
그즈음에는 외출하고 돌아올 때면 일부러 정문 쪽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는 버스를 탄다.
외출할 일이 없으면운동 삼아 동네 한 바퀴 돌다가 정문 앞으로 지나가는 동선을 만든다.
아파트 후문 쪽 정류장 바로 뒷 동인 우리 집에서 한참(?)을 걸어가야만 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그 앞을 하염없이 서성인다.
(스세권보다 붕세권인 우리 아파트가 참 좋다. 지금은 잉세권이라 해야 하나? 언젠가 갑자기 붕어빵에서 잉어빵으로 바뀌긴 했지만 그 중심에 있는 팥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다)
그 해에도 아직 찬바람이 불기 전이었지만
일찍이 문을 연 잉어빵 가게는 유혹의 손길을 건네왔다.
고양이가 생선을 그냥 지나치는건 살아온 덕목을 거스르는 일 ㅎㅎ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매번 그앞으로 아주 서서히 재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입안에는 이미 침샘 폭발 일보직전. 혹시나 먹다가 입천장이 다 뒤집어질까 봐 하는 걱정 따위는 아이돈케케케케케어! 오로지 신호등이 바뀌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질 뿐. 그 사이 대기 줄이 길어지면 어쩌지?
오늘따라 신호가 드럽게 안 바뀌네. 녹색불로 바뀌는 찰나 몸이 후다닥 날아오른다.
"어머 이건 모야?"
두둥!
슈크림 잉어빵? 혜성처럼 등장한 이 아이가 정체가 궁금하다.
팥은 2천 원에 5개인데 슈크림이 들어가면 4개란다. 팥은 싫어하지만 슈크림은 왠지 잘 먹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살짝 고민 끝에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반반을 선택했다.
돌아오는 횡단보도를 건너 주위를 살짝 살핀 후 호호~불며 당연히 팥잉어빵을 하나 꺼낸다. 꼬리? 머리? 혼자 심오한 고민에 빠진다. 올해 첫 만남이니 그래. 그동안 한참이나 그 모습을 마주하고 싶었으니 오늘은 꼬리부터다.
긴 여름을 지내고 가을의 문턱을 지나서 겨우 만난 바사삭한 꼬리 속 팥의 양은 한 치의 변함이 없다.
"하~!"
근 반년의 기다림이 무색할 정도로 연기와 함께 모든 게 사그라지는 맛을 느끼기도 전에 한 마리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나저나 새로운 녀석의 정체가 궁금하다. 집에 오자마자 손에 든 종이봉투를 흔들며 "슈크림 잉어빵이 나왔데!" 소리치니 아이는 놀란 토끼눈으로 달려온다. 낚아채듯 손에 쥔 봉투를 앉자마자 붕 찢어 던진다. 속살이 하얗게 보일 것 같은 녀석을 탐색도 하기 전에 덥석 베어 문다. 그리고선 엄지를 치켜든다. 엄마 한 번 맛보라고 권하지도 않은 채 순식간에 한 마리가 없어지고 나머지 한 마리 역시 꾸울꺽 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 녀석 덕분에 우리는 그 해부터 사이좋게 잉어빵을 2마리씩 나눠먹으며 커피와 우유를 함께 즐기는 시간이 많아졌다.2,000원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었다. 잉어빵을 먹는 횟수만큼 우리의 뱃살은 두둑해졌고 추억은 날로 깊이를 더해갔다.
이런 날이 올 줄 모르고.
지난가을어느 날,
예상치 못한 한파주의보가 닥쳐왔다.
설마 하는 마음에 그냥 나갔던 날.
하루종일 손과 발을 오드드 떨며 추위 앞에서 맥없이 당하기만 한 날.
늦은 오후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기다리는 잉어빵가게.
오마이 구세주!
올해도 역시나 일찍 문을 열었구나.
지체 없이 그 앞을 마주한 찰나의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진한 글씨의 가격표
'2,000원에 3개'
지난 시즌과 다른 가격을 보고 적잖은 당황감에 남모르게 얼굴이붉어졌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 앞에서 되돌아갈 수는 없었지만 4,000원어치를 사는 건 괜스레 사치라고 느껴졌다.
그래ㅜㅜ
월급만 빼고 다 오른 상황에서 원재료값 상승에 밀가루 가격은 몇 배가 올랐다는데 너라고 예외는 아니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동안 잉어빵에서 제외시켰던 남편을 소환해서 공평하게 한 개씩 먹어야 할까?
그래 놓고 혹시나 안 먹는다고 말해주길 기다려볼까? 에이~그렇다고 하나만 먹는 건 잉어빵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잉어빵의 최소한의 자존심은 의리상 지켜줘야 하는데 말이야.
그 뒤로 잉어빵을 살 때마다 고뇌에 빠졌다.
팥을 2개 살 것인가? 슈크림을 2개 살 것인가? 아니면 사치를 부려야 할 것인가?
그래, 고민하지 말고 2,700원어치로 사는 게 현명한 일이겠지만
3,000원을 내고 300원을 거슬러 받는 건 주인아저씨를 여간 귀찮게 하는 일이 아닌가 싶어서 그것도 한두 번 하다 말았다.
고민하기 싫어서 며칠 전에는 아이 피아노 학원 찬스가 있는 날이라 몰래 혼자 완전 범죄를 성사시켰다.
3개 정도는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룰루랄라~라떼 대신 아메리카노의 위로를 받으면 되니까!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고민을 해결해 준다고 다음 시즌에는 2,000원에 2개가 되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벌써 타 동네에서 슈크림 1개를 천 원에 팔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긴 했다)
"엄마! 다 만들었어!
엄마가 좋아하는 팥잉어빵을 훨씬 더 만들었어, 어때? 맘에 들어?"
"아이고! 너무 고맙다. 근데 왜 이리 싸게 팔아? 너무 싸게 팔아서 남는 것도 없겠다!
"요즘 잉어빵 비싸다고 많이 안 사 먹었잖아, 나라도 싸게 팔아야지"
(혼자 뜨끔해하며)
"으응, 맛있게 먹을게! 꿀꺽! 아이고 맛있다앙"
엄지를 치켜들며 위아래로 흔들어댄다.
팥에는 진심인 엄마가 이런 못난 고민을 하며 지내는 것도 모른 채,
본인은 슈크림이 더 좋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팥을 훨씬 더 많이 만들었다는 마음씨 고운 딸에게 며칠 전 피아노 학원 간 사이 혼자 사 먹었다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할게. 그래서 오늘은 너 피아노 학원 가는 시간에 쌩 아메리카노만 마셨어)
다음 시즌에는 녀석들의 몸값이 또 어찌 될까?
제발 더 이상은 오르지 않길 바라며
일단은 남은 이번시즌잉어빵 가게가 곧 문 닫기 전에 고민하지 말고 맘껏 잉어빵 사치를 부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