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산다는 것

by 이상역

부부가 건강하게 백년해로 하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나이 들어 어느 한쪽의 배우자가 떠나면 남은 배우자는 외롭고 쓸쓸해진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누군가 곁에 있어야 의지가 되고 든든하다.


충주 신니면에는 장인어른이 산다. 집이 낡아 수리도 해야 하지만 장모님이 계시지 않아 그 집에 가면 쓸쓸함과 고독함만 피어난다.


충주에는 장인어른 생신이나 장모님 기제나 명절에 종종 찾아간다. 충주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마을을 한 바퀴 휘휘 둘러보는 일이다.


사람은 묵은 인연을 빠르게 잊는 것 같다. 부부의 빈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인연을 맺으면 빈자리를 지켰던 과거의 사람은 잊고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부부의 빈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서면 얼마 간 서먹하던 감정도 자주 만나면서 누그러지고 입에서 튀어나올 것 같지 않던 말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사람에게 인연이란 무엇일까. 인연 따라 살고 인연 따라 잊으면 그만일까. 몇 해 전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장인어른은 청주에서 오신 아주머니와 살고 계신다.


그 아주머니를 첫 대면했을 때는 어색하고 서먹서먹했다. 그러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점점 관계가 가까워지고 장모님 수준의 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내와 처남들은 아주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자신을 낳아준 분이 어머니인데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 같다.


나는 아주머니를 차마 장모님이라고 부르지는 못했다. 낯을 가리는 성격인지 장모님이란 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현실관계를 인정할 수 없어 부르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


그간 삶을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부부가 함께 살다가 한 분이 돌아가시면 남은 분이 홀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더구나 여자가 아닌 남자가 혼자 남게 되면 삶이 심각하게 기울어진다.


가끔 TV에서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모시고 사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 사람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넓은 마음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처남들은 단정은 할 수 없지만 홀로 사시는 장인어른을 자신의 집으로 모셔가서 살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 대부분 가정에서 부딪히는 현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그간 장인어른과 사시던 아주머니가 청주로 돌아가셨다. 몇 년을 사는 조건부로 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명절에 충주에 가보니 아주머니가 청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주머니가 장인어른 곁에 계셔서 끼니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전에 장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처남댁이 돌아가며 장인어른의 먹거리를 챙겨드렸다. 그러다 아주머니가 들어오면서 장인어른의 끼니를 챙겨드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부부가 오래도록 곁에 머물며 도란도란 사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나이가 들면 몸이 아픈 것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누구와도 말을 나누지 못하는 고독함이다. 고독은 젊은 시절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커진다.


언젠가 부산 이모님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다. 이모님은 저녁을 먹으면서 연신 이모부 욕을 하고 계셨다. 내가 “이모! 이모부가 욕하는 것 들어요?”라고 하자, 이모는 “이모부가 귀를 약간 먹어 괜찮다.”라고 하셨다.


저녁을 먹고 이모에게 “이모부 욕을 하면서 왜 함께 살아요?”라고 묻자, 이모는 “잠잘 때 아랫목에 이모부가 누워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라는 말을 하셨다. 이모부가 아랫목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집안 분위기에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사실 이모는 이모부 욕을 대놓고 하셨지만,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미워도 먹을 것을 챙겨주고 서로 의지하고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한 것이다.


부부란 배우자가 아무리 미워도 미워할 수 없고, 싫어도 싫어할 수 없는 존재다. 이는 나이를 먹어 사랑이 깊어진 것이 아니라 정이 깊어진 결과다.


장인어른이 홀로 충주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걱정이다. 그동안 장인어른 곁에서 끼니를 챙겨주던 아주머니도 떠나고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 살아가는 것도 어려워졌다.


홀로 살아갈 때 가장 큰 장애는 고독과 끼니다. 사람은 하루에 몇 번의 끼니를 챙겨 먹어야 생명을 유지한다. 특히 남자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끼니를 해결하다가 갑자기 혼자가 되면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장인어른이 끼니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 걱정이 덜하지만, 아주머니에게 의존해 와서 걱정이다.


앞으로 누군가가 장인어른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충주에 아는 사람도 없고 이전처럼 처남댁이 번갈아 가면서 반찬을 해서 충주에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서로 살아가는 형편이 달라졌고 이제껏 장인어른 끼니를 걱정하지 않고 살다가 다시 그런 수고를 하라고 하면 누가 나설 것인가.


부부가 백년해로하며 오래도록 함께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어 삶이 다하면 남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여자는 끼니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와서 홀로 남아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다. 하지만 남자가 홀로 남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신세를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이참에 나중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간단한 요리라도 배워두어야겠다. 사람의 앞날은 장담할 수 없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미래의 불확실을 확실하게 하는 것은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다. 이제라도 장래를 대비해서 틈틈이 요리를 배워야 할 것 같다. 홀로 생존하는 법을 익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백년해로의 또 다른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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