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가 주말에 강원도 용평으로 스키를 타러 가자고 한다. 동료의 제의를 받고 잠시 망설였다.
지금까지 스키를 타본 적도 없고 어린 시절 시골에서 빈 포대로 눈썰매를 탄 것이 전부인 내가 스키를 탈 수 있을까.
혹여 스키를 타다가 몸이나 다치지 않을까 걱정도 앞섰다. 그동안 스키장이나 골프장에 가는 것을 의식적으로 자제해 왔다. 삶의 형편도 그렇고 그런 곳 가는 것을 꺼려왔다.
직장 동료는 할인권이 있으니 비용은 걱정하지 말란다. 차로 서울에서 용평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차는 사람의 삶에 공간의 혁명을 가져왔다.
사람이 도보로 일주일 가는 거리를 차로 몇 시간이면 간다. 비행기와 자동차는 인간의 삶에 편리와 빠름으로 공간의 개념을 무너트렸다. 미래에는 과연 어떤 발명품이 사람의 생활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궁금하다.
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외곽순환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중부고속도로와 접하는 만남의 광장에 도착했다. 만남의 광장에서 직장 동료를 만나 팔당대교와 양평을 거쳐 홍천을 지나 용평까지 가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동료들은 스키장에 가서 식사할 곳이 없으니 미리 점심을 먹고 가자며 길가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동료들과 식사를 마치고 식당 주인의 소개로 식당 옆에 자리한 스키용품점에 가서 스키 장비 등을 빌려 차에 싣고 용평으로 향했다.
스키장이 자리한 커다란 고개를 넘어가자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고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 용평의 스키장 맞은편에는 콘도가 산자락에 우뚝 솟아 있었다.
스키장에 도착하자 동료들은 콘도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면 시간이 지체된다며 차에서 옷을 갈아입고 바로 스키장으로 향했다. 처음 스키를 신어보니 몸이 둔해지고 몸의 중심을 가누는 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동료 중에 스키를 잘 타는 사람에게 스키에 대한 기초적인 강습을 받고 아이들과 리프트를 타고 초보자용 스키를 타러 올라갔다.
초보자 코스로 가는 리프트를 타고 정상에 도착하자 먼저 올라온 아주머니와 아이가 넘어져 있었다. 그들과 리프트가 뒤엉키면서 나와 동료가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리프트가 엉키지 않아 넘어지지를 않았다. 스키 초보라는 것을 아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스키에 대한 무서움을 겁주려는 것인지 신고식을 호되게 했다.
어린 시절 겨울에 눈이 오면 비닐 포대에 마른 짚을 넣어 끈으로 포대 입구를 묶고 앞산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 언덕의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면 상당한 비탈이었지만 브레이크는 발로 조절할 수 있어 겁이 나지를 않았다.
초보용 스키장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초보자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아득해 보였다. 드디어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데 스키에 체중이 실리면서 속도가 왜 그리 빠른지 비닐 포대를 이용할 때처럼 발로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었다.
남들이 스키를 타고 가는 것은 느리게 보이는데 내가 타는 스키는 빠르게만 느껴졌다. 스키의 속도를 발로 조절할 수 없어 몇 번이나 뒤로 넘어졌다.
스키를 신으면 몸이 뒤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스키를 신은 채 뒤로만 넘어졌다.
두 아이는 그런대로 스키를 타고 내달리며 내려갔다. 나는 스키 타는 것이 겁이 나고 직진으로 내려가는 것도 두려웠다. 내가 스키를 타는 모습은 마치 노인이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가는 것과 흡사했다.
스키장을 직선으로 내려가는 것은 너무 빨라 다른 사람과 충돌을 피하면서 스키장을 대각선으로 타고 내려갔다. 그렇게 스키를 대각선으로 타고 가장자리에 이르면 스키 폴 대를 짚고 방향을 틀고 다시 대각선 가장자리를 향해 내려가는 방식으로 스키를 탔다.
하지만 스키장에서 대각선으로 스키를 타고 가는데도 속도가 마음대로 조절이 되지 않았다.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과 충돌을 피하려다 번번이 넘어졌다. 처음에는 서너 번 넘어지고 풀대에 의지해 간신히 스키를 타고 내려왔다.
나는 스키를 타는 것이 아니라 폴 대를 지팡이 삼아 짚고 타는 꼴이었다.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 스키장을 내려오자 팔과 다리의 힘이 쭉 빠지면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어린 시절 눈썰매와 얼음 썰매는 잘도 타고 놀았는데, 이제는 몸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앞서면서 몸만 잔뜩 사리게 되었다.
스키를 타고 앞을 바라보고 방향을 잡고 내려와야 하는데 바로 눈앞에 지나가는 사람과 스키가 어떻게 내려가는지에 관심이 더 갔다.
그러자 스키를 타는 것보다 폴대로 몸을 움직이는데 더 많은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지팡이에 의지해 세 번을 타고나자 몸에서 힘이 쏙 빠져버렸다.
시골에서 눈썰매는 종일 타고 놀아도 힘이 들지 않았다. 마른나무를 주어다 불을 지펴놓고 밤이 이슥하도록 썰매를 타고 놀았다.
홀로 초보자용 스키장에서 세 번을 타고나자 몸에 힘이 빠지면서 다리가 후들거려 휴식을 취했다. 내가 쉬고 있는 동안 큰아이는 초급코스를 마치고 동료와 중급코스에 가서 스키를 즐겼고, 막내 아이는 혼자서 초보자 코스에서 타고 놀았다.
나는 몸에 힘이 빠져 간이음식점에서 간식을 사 먹으며 몸을 보충했다. 그리고 다시 초보자용 코스로 가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스키를 타는데 발로 스키를 정지하는 것과 방향을 바꾸는 것을 해보았다.
그러나 매번 뒤로 넘어지기만 했지 제대로 타지를 못했다. 그렇게 초보자 코스에서 스키를 몇 번 타고나자 스키장 측에서 리프트 타고 올라가는 것을 막았다.
아이들을 만나 스키를 벗으면서 스키장을 올려다보자 어린 시절 눈 언덕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 스키라도 있었으면 지금쯤 선수가 되어 최상급 코스를 타고 있지 않았을까.
스키를 벗고 가족과 콘도에 들어와서 집에서 가져온 저녁을 먹자 밥맛이 꿀맛이었다. 스키를 타는 것이 힘이 들었는지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자 포만감이 밀려왔다.
저녁을 먹고 가족과 콘도의 복도에 나와 스키장을 바라보았다. 스키장의 슬로프에서 쏟아지는 조명 속에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불빛을 그대로 반사하는 슬로프와 하얀 눈이 별처럼 쏟아지는 풍경이 낭만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아이들과 생애 처음으로 스키를 타보았다. 비록 폴대를 지팡이 삼아 힘들게 탔지만 몸의 고단함과 함께 꿈결처럼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