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핀 발레 꽃

by 이상역

사람의 몸을 움직여서 이야기를 표현하는 무용극이 발레다. 지금껏 발레는 TV를 통해 눈으로 잠깐 바라본 것 외에는 발레리나가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추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사실 발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다. 막내딸이 발레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데 학원에서 ‘발레로 떠나는 아름다운 여행’이란 주제로 발표회를 가졌다.


목련의 나뭇가지 끝에는 희망의 꽃을 피우기 위해 꽃눈이 한창 준비 중이다. 산과 들녘에 봄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나는 봄날의 화려한 꽃 대신 아이들이 몸짓으로 피운 발레 꽃을 마음껏 구경했다.


그야말로 발레 꽃이 만발한 소망의 봄을 만끽하며 아름다운 춤사위를 감상했다. 귀엽고 앙증맞은 아이들이 날개 달린 옷을 입고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추는 발레 춤은 생명의 꽃이 활짝 피어나 희망을 노래하는 봄꽃처럼 다가왔다.


시민회관 대극장에는 아름다운 봄꽃이 무더기로 피어나 발레의 향기로 가득했다. 아이들이 추는 발레는 색과 빛과 소리와 날개 달린 옷이 서로 어울려 동화 속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발레 춤의 제목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보랏빛 향기’, ‘큐 피트’, ‘뻐꾹 왈츠’, ‘아기 백조’, ‘파키타’ 등 아이들의 연령대별로 멋진 춤사위를 연출했다.


고전음악의 장쾌함에 빛의 마술사가 색색의 색깔로 무대를 비추고, 초록․분홍․빨강․백색의 날개가 달린 발레 옷을 입고 펼치는 무대는 동화의 나라처럼 아름다웠다. 우리 세대보다 딸들의 세대는 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하고 풍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술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자라면서 예술을 접촉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춤을 추는 아이들이 은근히 부러웠다.


나는 지금껏 무대에 올라가 발레 춤을 춘 적이 없다. 딸아이는 자신이 직접 무대에 올라가 발레리나를 그리며 봄의 왈츠를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추고 있다. 경쾌하고 고요한 음악 소리에 맞추어 발을 종종거리며 리듬을 타는 아이들의 움직임은 봄날에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나래를 펼치는 소리 없는 아우성 같았다.


이른 봄날 저녁에 꽃이 아닌 발레리나들이 추는 발레 춤은 내 상상의 감정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환상으로 다가왔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에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자 가슴이 훤해졌다.


발레 춤을 추는 아이 중에는 이사도라 덩컨이나 최승희와 같은 무용가를 꿈꾸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예술의 장르는 다양하다. 그중에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 행위가 가장 어렵다.


특히 무용은 '나'라는 몸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이겨 내야만 훌륭한 무용가로 성장할 수 있다. 어쩌면 무용은 종교라는 믿음처럼 자신의 내적인 영혼과 몸을 일치시키는 깨달음이 있어야만 길이 열릴 것이다.


발레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사람의 몸으로 표현하는 행위예술이다.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온몸으로 표현해야 한다. 아이들은 무대에 오르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했을 것이다.


나는 딸아이처럼 청중이 있는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춰본 적이 없다. 유년 시절 초가집 마루에 새끼줄을 매어 담요나 얇은 이불을 걸쳐 놓고 무대를 만들어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동요와 춤을 춘 학예회 발표가 전부다.


친구들과 찬 이슬을 맞아가며 감자와 고구마로 허기를 달래고 호롱불보다 밝은 달빛의 엄호를 받으며 친구와 손을 잡고 동요를 불렀다.


시민회관 무대에 올라가 발레를 추며 장중한 고전음악에 색색의 조명과 천사가 입는 날개가 달린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아이들은 행복한 세대다. 나와 같이 아이들의 부모들도 참석해서 객석은 만원이다.


우리 다음 세대들은 축복 속에 태어난 세대다. 어려서부터 예술을 체험하면서 자라는 축복이야말로 다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자산이다. 아이들이 무대에서 실수하거나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춤은 뒷전인 채 고개를 돌려 춤의 흐름을 놓치고 있지만,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예술을 배우려는 아이들의 숭고한 소망이다.


컴컴한 무대 뒤에서 아름다운 빛을 받으며 발을 곧추세우고 종종걸음으로 입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문화를 태동시키는 역동적인 힘처럼 느껴졌다. 자리의 위치와 춤의 동작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웃음보다는 발레 춤의 어려움과 예술을 일구고 캐는 나비의 몸부림처럼 다가왔다.


자신의 아이가 무대에 오를 때마다 아이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무대 앞까지 다가가는 부모들을 바라보며 가족에 대한 사랑과 문화를 사랑하는 열기를 뜨겁게 느꼈다. 오늘은 두 시간 동안 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아이들의 발레 춤을 보며 아름다운 봄 여행을 했다.


아이들의 옷차림에는 봄날의 꽃 잔치를 예고하는 꿈이 배태되어 있었고, 축하의 꽃다발을 들고 아이들과 함께 카메라로 찰칵하며 순간을 담는 그림에는 내일의 미래를 약속하는 희망이 엿보였다.


오늘은 자신의 아이를 통해 인생의 미래를 엿보듯이 아이들의 발레 춤을 통해 문화가 꿈틀대며 살아있다는 희망을 맛본 소중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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