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님 여의옵고

by 이상역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는 조선 시대 단종의 유배지이자 사약을 받고 죽은 곳이다. 단종에게 사약을 가져간 왕방연은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가에서 단종을 향한 비통한 마음을 시로 남겼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의 않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영월 청령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청령포로 건너가기 위해 표를 끊었다. 청령포는 배로 건너야만 관람할 수가 있다.


배를 타러 내려가기 전에 주차장에서 청령포를 바라보니 서강이 삼면을 휘돌아 굽이치며 돌아가는 형세다. 청령포를 둘러싼 소나무가 우거진 푸른 숲이 시야로 들어온다.


청령포 뒤로는 높은 산이 굽이굽이 겹쳐져 청령포는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외딴섬이다. 서강을 건너가려고 하자 사람들이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코로나로 여행이 어렵다고 하지만 청령포로 건너가는 사람과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이 끝없이 이어진다. 비록 배를 타는 가는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강물이 꽤 깊은 것 같다.


가족과 배에 오르자 선장이 엔진의 추진력을 높인다. 청령호는 50명 정도 타는데 배 한 척에 의지해 오고 가는 길손을 맞이한다.


서강을 건너가 청령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청령포에 다다르자 울창한 송림이 마중을 나왔다. 소나무에는 나무마다 이름을 대신해서 번호를 표시해 놓았다.


청령포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북적인다. 가족과 단종이 머물렀던 단종 어소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하고 사진기로 다녀간다는 흔적을 남겼다.


세조는 왕에 오르자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청령포로 유배 보냈다. 유배지로 온 단종은 노산대에 올라가 한양을 바라보거나 망향탑에 돌을 하나둘씩 쌓아가며 왕후를 그리워했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머물거나 놀았던 자리를 관광지로 조성해 놓았다. 단종 어소, 관음송, 망향탑, 노산대, 금표비 등 단종과 인연이 닿은 물건에는 이름표를 붙여 놓았다.


조선 시대 왕방연의 마음만은 못하지만, 청령포를 돌아보는데 애잔함과 애절함이 솟아난다. 깊은 계곡과 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권력의 무상함과 애달픔이 실려있다.


세종은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과 과학기기를 만들어 조선을 바로 세운 임금이다. 그런데 유독 자식의 운은 좋지를 않았다. 세종 다음의 문종은 왕후조차 맞이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문종에 이어 나이 어린 단종이 임금에 올랐지만, 임금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조선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역사는 역사적 사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재현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은 왕위를 물려주는 시대는 아니지만 조선 시대와는 다른 형태로 권좌를 이어간다.


단종이 올라가 황후를 그리워한 노송만이 역사의 슬픔을 간직한 채 자리를 지킨다. 그에게 단종의 소식을 묻자 대답이 없다. 그저 스치는 바람에 황후의 안부와 소식을 단종에게 전할 뿐이다.


청령포 관람을 마치고 청령호를 타고 나오자 마치 조선 시대에서 현대로 돌아온 느낌이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청령포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그들은 청령포에서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안타까워했을까. 지금에 와서 어린 나이에 죽은 단종을 그리워할 수도 없고, 왕권을 잡고 권력을 휘두른 세조를 미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그들 모두의 후손이자 그들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임금으로 자리 잡은 사람이 아니던가. 단종이 왕위를 빼앗긴 것도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고, 세조가 임금을 찬탈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선택이었다.


역사에서 어느 임금이 잘나고 못나고는 의미 없다. 조선 시대 한양을 벗어나 영월의 청령포까지 쫓겨난 단종의 신세 또한 가슴이 아프고 구슬프다.


아마도 단종은 자신을 향한 한없는 나약함에 빠져 청령포에서 가슴을 움켜쥐고 통곡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을까.


서강을 건너 주차장에 오르자 고운 님을 여읜 것처럼 마음이 처량하다. 서강만을 오롯이 오가는 청령호 신세처럼 청령포는 답답하고 산으로 둘러싸고 있어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고독한 곳이다.


천만리 머나먼 한양에서 단종을 보고자 청령포를 찾아갔지만, 마음은 허전하고 허탈하다.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통하지 않지만 단종이 세조처럼 권력을 찬탈하고 세조를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를 보내고 사약을 내렸다면 후세들은 단종을 어떻게 평가할까.


어제의 영광은 오늘의 선명한 역사로 남고, 어제의 치욕은 오늘의 전설이 되어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역사다. 전쟁과 역사의 속내는 똑같다. 전쟁이나 역사에서 승리한 자는 햇빛을 받아 역사의 정설로 남지만, 패배자는 달빛을 받아 신화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오늘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신화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단지 역사의 근거를 이루는 바탕을 영원히 잃어버려 찾을 수 없을 뿐이다.


전쟁이나 역사의 승리자는 패배자의 모든 것을 불태웠다. 더불어 패배자와 관련한 사람을 죽이거나 귀양을 보냈다. 그로 인해 패배자의 자취는 글로 남길 수가 없어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전설로 남을 수밖에 없다.


청령포에 고운 님을 두고 와서 그런지 서강에 비친 얼굴에는 서글픔과 애달픔이 묻어 있다. 슬픈 곡조를 가슴에 안은 서강은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도도하게 물결치며 어딘가를 향해 흘러간다.


지금도 서강은 단종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애처로운 눈물이 뒤섞어 흘러가고 있을지 모른다. 청령포의 고운 님과 이별하는 것이 못내 서러운지 저무는 해가 붉은 눈물을 토해내는 슬픔을 뒤로하고 한양을 향해 차의 페달을 힘껏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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