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유의 공간이다. 그간 서재 없이 생활해오다가 딸이 출가하자 드디어 아파트에 서재 겸 침실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그런데 출가한 딸이 종종 자기 집이 아닌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갈 때면 내 서재를 내주어야 한다. 딸이 맞벌이를 하는데 사위가 지방에 근무하고 있어 주말에나 올라온다.
딸이 출가할 때만 해도 내 서재겸 방이 생기게 되어 내심 기뻐했다. 어쩔 수 없이 딸이 집에 오는 날이면 노트북과 필기구 등을 챙겨 들고 거실로 쫓겨난다.
이튿날 아침 딸이 직장에 출근하면 다시 노트북과 필기구를 챙겨 서재로 가서 딸이 퇴근할 무렵이면 다시 노트북과 필기구를 싸 들고 나와야 한다.
그렇다고 옛 어른처럼 그 집안 귀신이 될 때까지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출가한 딸이 내 집에 온다고 하는데 마다할 부모가 과연 있을까.
자식은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던가. 그저 딸에게는 시간을 가리지 말고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말한다.
비록 서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신세지만, 생활에 불편함은 없다. 서재를 옮겨 다닌다고 생각이 달라지거나 글쓰기 행위가 달라지지도 않는다.
단지 불편한 점은 거실에 앉아 일을 보면 무릎이 저릴 뿐이다. 그런 몸의 수고는 당연히 해야 할 움직임이라고 생각하며 참고 지낸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출가한 딸의 얼굴을 자주 보고 출퇴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크나큰 복이자 행복이 아니던가.
아내는 내가 직장에 다닐 때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저녁애 이것저것 챙겨주더니 집에서 쉬게 되자 뒷전이 되었다. 이제는 딸이 퇴근해서 우리 집에 올 때면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주기 바쁘다.
그 덕분에 나도 종종 맛있는 저녁을 얻어먹는다. 딸은 저녁을 먹으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집안에 활력이 살아난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과의 차이는 말을 재잘거리는 능력이 아닐까. 젊음 사람은 쉴 새 없이 말을 해도 듣기에 부담이 가지 않는데, 나이 든 사람은 한마디 툭하고 말을 던지면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하기가 어려워 듣기에도 거북하고 당황스럽다.
딸은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정신이 없을 정도로 말을 쏟아낸다.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이나 다른 선생님이나 학부모와 있었던 이런저런 사연을 끝없이 재잘거린다.
딸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노라면 살아가는 맛과 집안에 생기가 넘쳐흐른다. 그런 맛에 딸에게 자주 집에 놀러 오라고 하는 것 같다.
아침에 학교로 출근할 때면 우리는 늘 기다리고 있으니 부담 갖지 말고 언제든지 오라고 말한다. 우리 집에는 딸에게 눈치를 줄 사람도 없고, 눈치를 볼 일도 없다.
신혼집에서 홀로 식사하지 말고 밥맛이 없거나 혼자 지내기 뭐 하면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자고 가라고 한다. 출가한 딸과 인생의 한 시절을 동행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딸은 아직 아이가 없어 퇴근 후 홀로 있게 되자 자주 찾아온다. 우리 집과 딸네 집은 전철역 두 정거장 거리다. 두 집 간의 거리가 멀지 않아 나도 자주 찾아가고 딸도 자주 찾아온다.
내가 딸네 집에 주로 가는 이유는 아내가 맛있는 음식을 해서 챙겨주면 산책 삼아 걸어서 갖다 주고 온다. 가족도 자주 만나야 정이 깃들고 맛있는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어야 인심도 생기고 관계도 살가워진다.
오늘도 딸이 출근하자마자 내 방으로 옮겨와 노트북을 열고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중이다. 글은 자식을 상대로 쓰는 것이 제일이다. 딸에게는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서일까 이야기에 막힘이 없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 것은 무한대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서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아가는 신세지만 그나마 이렇게라도 딸을 보며 사는 것이 행복한 동행이 아닐까.
올해는 다른 해보다 느긋하고 한가하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다행이다. 공로연수를 가지 않고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코로나로 긴급한 사안이 수시로 발생해서 비상대기를 자주 했을지도 모른다.
아침에 딸 방으로 서재를 옮겨와 무언가를 끄적이면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생각하고, 산문집을 읽으면서 작가의 글을 통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중이다.
아무쪼록 딸이 내 서재에 와서 머무르는 동안 즐겁고 편안하게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편히 돌아가기를 바란다. 더불어 학교생활은 즐겁고 학생들을 잘 가르치며 좋은 교감을 나누며 한 해를 지냈으면 한다.
오늘도 어느덧 내 서재에서 하루의 삶을 마무리하고 노트북과 필기구 등을 챙겨 들고 다시 거실로 옮겨 가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