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를 대한해협으로

by 이상역

비행기 기내에 불이 들어와서 펜을 들었다. 삶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차를 하나라도 줄여 보고자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정의 나락을 비망록에 하나하나 적는 중이다.


여행이 삶의 일탈이라면 일상은 삶은 반복된 얽매임이다.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직장과 집을 오고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지금 머릿속에는 9박 10일간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감정의 실타래가 비상하고 있다. 뽀얀 먼지처럼 비상하는 감정의 나락을 가라앉히기 위해 손가락의 힘을 빌려 털어내는 중이다.


대기의 기류 편차가 심해서 그런지 비행기 엔진 소리가 올라갔다 낮아지면서 기체가 잠시 흔들린다. 그런 와중에도 승무원은 승객들에게 점심을 먹기 전에 물수건을 제공해서 손을 닦으라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발품을 팔아본 거리는 얼마 되지 않고 거의 비행기나 버스를 타고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여행 기간에 체중이 좀 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비행기가 태평양의 괌을 지나자 기장은 서서히 기수를 대한민국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한다. 기내의 TV에서는 아나운서가 국내의 소식을 전해준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나라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에 현실감이 더해진다. 비행기에 탄 사람도 서비스하는 사람도 모두가 한국인이다. 이제는 낯선 것이 아닌 낯익은 모습이 여행지에서 겪은 시차를 줄여준다.


어느덧 지난 십여 일의 여정이 서서히 추억으로 멀어져 간다. 비행기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여행지에서 겪은 추억이 기억의 저편으로 차곡차곡 쌓여간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힘찬 몸짓처럼 비행기는 하늘이란 우주의 바다를 유유히 날아가면서 부드럽게 유영한다.


17:35분. 비행기가 일본 오사카를 지나 부산 방향을 향해 기수를 틀고 있다. 이어서 기장이 나가사키를 지나 대한해협으로 들어선다고 안내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앞으로 한 시간 후면 열흘간의 여행 일정을 모두 마감해야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첫 해외여행을 따뜻한 사람과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단체여행을 통해 이국에서 낯선 여행지를 떠돌며 삶의 또 다른 것을 공유하고 나누었다. 삶은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기다리듯이 일행과는 다시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서로 나그네가 되어 낯선 거리 낯선 여행지를 떠돌고 낯선 음식을 먹으며 보낸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기를 바란다. 일행과 만남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맛보았다.


적다면 적고 크다면 크겠지만 인생의 한 부분을 함께 공유하고 즐긴 이국에서 추억을 쌓았다. 이번 여행에서 아쉬운 점은 여행지를 진득하게 구석구석 돌아보지 못한 것이다.


아름다운 장면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야 하는 아쉬움과 일정에 쫓겨 멋진 경치를 오래도록 바라보지 못한 것이 제일 아쉽고 서운하다.


지금 비행기가 대한해협 위를 날아가는 중이다. 이번 여행에서 비행기를 타고 보낸 시간만 대략 30시간이다. 비행기 안에서 꼬박 하루하고도 6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은 버스를 타고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가 부산에 가까워질수록 지난 열흘간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서 물레방아처럼 돌아간다.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일까. 어쩌면 나는 목적이 이끄는 삶의 시계추에 매달려 방랑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세상이란 거친 들녘에 나와 이것저것 겪으면서 살아왔지만, 아직도 인생이란 들녘에 서면 방향과 목적과 개념이 서지를 않는다. 삶이란 시간이 깊어질수록 더 배워야 하고 더 겪어야 할 것이 나타나는 그런 길이 아닐까.

인생은 준비되지 않은 시간의 연속이다. 평범한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어도 현실이란 울타리에 갇혀 망설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모쪼록 이번 해외여행이 남은 삶에 새로운 행로를 여는 작은 등불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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