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록

by 이상역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고향에서 태어나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았다. 내가 글을 쓰는 진정한 이유는 아이들이 나의 글을 읽으면서 용기나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달래며 살아가기를 바라 서다.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아버지가 좌충우돌하며 살아온 삶에 대하여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혹여라도 글을 읽으면서 번민과 회의에 빠져 글을 읽는 도중에 그만 덮어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도 내 삶을 위한 글을 쓰면서 인생을 노래할지도 모른다. 글의 마무리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먼 훗날 꼭 읽어줄 것을 부탁드린다.


자기의 부모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에 대한 방식을 아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그 길은 자신의 존재 방식을 찾아가는 길이요 자신이 가고자 하는 미래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간 고향에 가서 명절이나 시제 때마다 조상에게 절을 올렸지만, 아버지와 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갔을까 하는 사연과 이야기에 목이 말랐다.


그렇다고 조상들이 어떠한 삶을 살다 갔는지 이야기를 전해주는 분도 글을 남긴 분도 없다. 비록 몸은 현재라는 공간을 살아가지만, 삶의 구심점을 잃고 허공을 떠돌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조상들처럼 후손에게 글 한 조각 남겨주지 않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 큰 업적은 남기지 않았지만, 삶의 소소한 사연이나마 살아온 흔적을 후손에게 남겨주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는 것이다.


우리가 자식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식에게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전해줘도 말은 입을 떠나는 순간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말은 기억에서 사라지는 순간 가치가 없어진다. 반대로 엉성한 글이나마 남기면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소통의 길이 열린다.


비록 글로는 제한된 생각과 사상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담아 전할 수가 있다. 사람이 잘살고 못살고 지위가 높고 낮은 것은 글에 나타나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인생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번뇌하며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갖고 인생을 살아갔을까 하는 것이 글에 나타난다. 그러한 생각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전달되어 삶을 돌아보게 되고 자신은 그런 길을 가지 않겠다는 안내서이자 사유의 세계로 이끈다.


물론 아이들이 내가 쓴 글을 읽는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다. 그저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아버지나 아니면 할아버지가 얼마나 인생을 고민하며 살아갔는지 하는 호기심만 자극할 뿐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은 많다. 그중에 최고는 자기의 삶을 자손에게 남기는 것이다. 지금 누리는 삶을 내 것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들어줄 사람은 없다.


삶은 자기의 몸 안에서 울리는 교향곡일 뿐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이 없고, 목이 터지도록 외쳐도 그 메아리는 언제나 자신 앞에 놓여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언젠가 지구라는 별을 떠나 외롭게 방황하는 때가 온다. 먼 미래의 어느 날 자신의 육신을 벗어나서 하늘로 떠나는 날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런 날이 다가왔을 때 누가 제일 먼저 자신의 영혼 곁으로 찾아올까. 아마도 자신이 뿌린 씨앗과 자신의 영혼을 그리워하는 사람만이 찾아올 것이다.


내 영혼이 그리워서 찾아오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 싶어도, 사랑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을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다.


결국에 그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그 사람이 남긴 글을 통해 영혼과 영혼이 만날 수밖에 없다.


나는 먼 훗날이란 말을 좋아한다. 사람은 먼 훗날을 기다리며 내일을 기약하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먼 훗날이란 말에는 새로운 희망과 만남이 들어있다.


글은 세월과 시대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그런 글에 행간을 두는 것은 행간 사이에 후손이 내 영혼에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여유를 두려는 것이다.


비록 내가 쓴 글이 잘 쓰지도 못하고 표현도 서투르지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썼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또한 글로 표현한 의미보다 행간에 숨어 있는 마음과 사상에 애정을 갖고 읽어줄 것을 부탁드린다.


그리고 아이들도 언젠가 스스로 살아온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는 날에 그간 내가 써 온 글에 담긴 생각과 마음을 후손에게 전해주면 더없이 고맙다.


책상에 앉아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글도 마찬가지다. 맑고 밝은 글을 만나면 글에서 전해지는 따듯한 기운과 마음을 만난다.


유장한 음악은 소리로 심금을 울리지만, 글은 맑음을 통해 머리와 가슴을 맑게 해 준다. 이 글이 아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할지는 알 수가 없다.


맑은 마음은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온 사람에게 나오는 소산물이다. 나처럼 이런저런 세상의 바람에 휘둘리며 살아온 사람은 맑음보다 방황하는 마음이 어울린다.


정말로 오랜만에 나라는 본연의 자리를 찾은 것 같다. 지금 이렇게 지나온 날에 대한 글을 쓰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을 보면, 삶의 중심을 제대로 잡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의 종착역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까. 내가 바라는 것은 잠을 자듯이 고요한 삶을 살다 가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삶을 두고 화려하거나 요란을 떨면서 지구를 떠나고 싶지는 않다.


그러한 것은 내 자존심과 삶의 존재 방식에 맞지 않는다. 부디 나의 이런 마음을 아이들이 깊이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 ‘나’라는 존재는 지구라는 별에 잠시 소풍을 나왔으므로 지구를 떠나가는 것도 똑같은 방식으로 사라지고 싶다.


아름다운 지구로 소풍을 나올 때 반겨주었던 사람은 아마도 내가 지구를 떠날 때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구를 떠나는 날은 자손들이 절대로 울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영혼에 축복이란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소망이다.


인생의 커다란 업적을 남기지 않은 삶을 두고 거창하게 비망록이란 말을 사용했다. 내가 쓴 글은 비망록이라기보다 지나온 날의 회상과 기억을 더듬으며 남기는 것뿐이다.


그것도 순서를 가리지 않고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두서없이 썼다. 나의 자손들도 자신이 살아온 삶을 자신의 자식을 위해 남겨줄 것을 부탁드린다.


사람은 지위가 높아도 돈이 많아도 자손에게 남겨주는 것은 제한적이다. 다산 정약용처럼 후손을 위해 많은 책을 남길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내 머릿속에 든 지식과 생각이 짧아서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 전부다. 먼 미래에 나보다 더 훌륭한 후손이 나타나서 좋은 글을 많이 써서 남겨 줄 것을 부탁드리며 이만 펜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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