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인연

by 이상역

때가 되면 만나고 시절이 다하면 끝나는 것이 시절 인연이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고,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사람과의 만남이다.


지금까지 고향과 학교와 직장에서 다양한 사람과 만남을 통해 인연을 맺어왔다. 학창 시절에는 공동체로 살아가는 삶의 틀을 배웠고, 직장에 들어와서는 지역을 넘어 국가라는 공동체로 살아가는 넓은 틀을 배웠다.


시절 인연이 와야 이루어진다고

선가에서 말한다.

그 이전에 만날 수 있는

씨앗이나 요인은 다 갖추어져 있었지만


시절이 맞지 않으면 만나지 못한다.

만날 수 있는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가

시절 인연이 와서 비로소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만남이란 일종의

자기 분신을 만나는 것이다.

종교적인 생각이나 빛깔을 넘어서


마음과 마음이 접촉될 때

하나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마음이다.


마음이 열리면

사람과 세상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법정 스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다』중에서)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학교나 직장에서 만난 인연은 나의 분신으로 때가 되어 이루어진 만남이다. 지금까지 만난 친구나 동료 중에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들과는 때가 되어 만난 나의 분신이자 시절 인연이다. 시절 인연에는 불교적인 의미도 인간관계의 따뜻한 정서와 별리가 포함되어 있다. 시절 인연이란 때가 되면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어떤 만남이나 때가 되면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것은 삶의 순리이자 이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가 되어 만난 인연은 모두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대상은 다양하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사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중에 적절한 때가 되어 만나는 것이 사람과의 인연이다.


세월의 나이테에 주름살이 하나둘씩 늘다 보니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는 것이 점점 힘들고 어려워만 간다.


시절 인연도 나이 듦이 아닌 청춘 시절의 간절함으로 맺어진 만남이 오래간다. 삶의 의욕이 넘치고 미래에 대한 부푼 꿈을 갖는 시기에 맺어진 인연은 건강한 힘과 빛을 발휘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의욕은 점점 줄어들고 꿈은 사그라든다. 마음만은 청춘을 꿈꾸며 살아간다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국가에서 조성한 세종시는 젊은이를 위한 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청사가 이전해 오면서 세종시는 공무원이 근무하는 도시가 되었다.


세종청사도 다르게 보면 시절 인연을 만나 조성된 것이다. 서로 때가 되고 적절한 시기가 되어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로 새로운 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세종청사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나이가 젊어졌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도 지천명을 넘은 직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천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옆 사무실 직원과도 서로 알고 지냈다.


그런데 세종에 와서는 옆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원도 얼굴을 아는 직원도 별로 없다. 직장의 업무망에 접속해서 그간 알고 지내던 동료의 근무지를 찾아보니 대부분 지방에 내려가 근무하거나 직장을 떠났다.


직장도 과를 옮길 때마다 업무와 관련된 사람과 시절 인연을 맺는다. 교수, 연구원, 변호사, 의사, 사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난다. 그들과 만남을 통해 사회를 보는 안목이 넓어지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세상사의 깊은 속사정도 배우게 된다.


직장에서 업무로 맺은 인연은 업무를 손에 붙들고 있는 기간에만 유지된다. 손에서 업무를 놓는 순간 그들과 인연은 끝나고 다른 업무와 관련된 인연이 분신처럼 다가온다.


직장은 업무에 따라 사람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때가 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직장에 근무하는 동안 인사로 몇 번 자리를 이동했다. 그때마다 인연을 맺은 대상도 달라졌다. 그 과정에서 업무와 관련한 사람과 시절 인연을 맺었다.


그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얻었다. 그렇게 얻은 지식으로 새로운 정책이나 제도개선을 통해 국민의 편익을 추구하는 것이 공직이란 자리다.


직장에 근무하면서 다양한 사람과 시절 인연을 맺고 자리를 이동해서도 좋은 만남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어떤 자리에 근무하든 업무와 관련된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어 있다.


그들과 어떤 마음과 자세로 만남을 이어가느냐에 따라 인연의 깊이는 달라진다. 직장을 퇴직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직장을 떠나기 전에 그동안 맺어온 인연도 하나둘씩 정리해야만 한다.


그간 맺어온 인연은 정리할 사람도 있고, 오래도록 이어갈 사람도 있다. 직장에서 맺은 인연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리되겠지만, 몇 사람과는 직장을 떠나서도 유지하며 어우렁더우렁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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