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지고 궁벽한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런 고향을 등지고 공직이란 길을 가기 위해 몇 번이나 사표를 내고 다시 시험을 보고 들어와 살다 보니 퇴직할 때가 되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공직의 길도 순탄치만은 않았고 고독하고 외로운 길이었다. 공직에 근무하는 동안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승진을 위해 누군가를 찾아가서 기대거나 의지해 본 적이 없다.
공직에 근무하는 동안 껌딱지처럼 붙어 다닌 것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물음표다. 고교 졸업 후 지방직에 들어가서 퇴직하지 않고 그대로 근무했을 경우와 지금처럼 다시 시험을 치르면서 국가직에 들어와 부처를 옮겨 다닌 결과다.
과연 어떤 선택이 인생에 득이 되었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어떤 선택이 올바른지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아닌 ‘가야 할 길’을 선택한 결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다.
공직에 근무하면서 가장 큰 시련은 교육부로 자리를 옮기고 조직이 폐쇄되었을 때다. 그때는 삶이 카오스의 세계처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방황의 시기였다.
국방부에서 이직하던 해에 교육부 평가원이 폐쇄 결정이 나면서 인생의 나침반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가슴에 안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국립교육평가원에 발령받고 출근하자 사무실은 수능 비리로 어수선했다. 누구는 구속되고 누구는 구속을 피해 도망을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그런 와중에 언론에서는 연일 수능 비리 문제가 불거졌고, 공청회를 통해 수능 관리의 해결책을 찾는 방안이 공론화되었다. 결국에 교육부 장관이 국가에서 관리하는 수능시험을 민간기관으로 이관하고, 국립교육평가원을 민간기관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그때는 평가원에 근무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교육부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몰랐다. 그런 상태에서 조직을 폐지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
그 소식은 사무실이 아닌 수능시험 인쇄본부인 성남의 공장에서 뉴스로 전해 들었다. 교육부는 전문직(장학과, 장학사)과 일반직(행정직)이 근무하는 조직이다.
두 직군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의사소통은 물론 정책을 다루는 업무영역도 서로 달라 정책 결정에 서로 간섭할 수 없는 구조다.
평가원에서 관리하던 수능시험을 민간기관으로 이관한다는 소식에 직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조직이 폐지된다고 하자 다른 기관으로의 전출도 통제되었다.
평가원의 민관기간 이양 발표 후 직원들은 근 일 년을 패닉 상태로 보냈다. 동료들은 조직이 없어질 때까지 막연함과 불안감을 안고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지금에 와서 국립교육평가원이 왜 폐지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제도가 환경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결과란 생각이 든다.
조직의 위기는 조직에 몸담은 구성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찾아온다. 기관장을 포함한 구성원 각자가 전문성과 열정을 갖지 않고 닫힌 사고와 닫힌 마음으로 일하게 될 때 조직은 서서히 부패하기 시작한다.
위기에는 기회가 찾아오듯이 평가원이 민관기관으로 전환되면서 나는 교육부 학술지원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근무하다 건교부로 자리를 옮겼다.
건교부는 평소 선호하고 한번 근무해보고 싶어 하던 부서다. 건교부로 자리를 옮긴 후 이것저것 많은 것을 겪고 경험했다. 그중 가장 보람된 것은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글을 쓴 것이다.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다.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대전국토청에 근무하다 과천의 건교부로 발령이 나면서 충남대학교 대학원 졸업논문을 쓰면서 지도교수가 내게 글을 한번 써보라는 권유를 받고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건교부나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산업자원부, 노동부, 환경부 등의 자료실을 찾아다니며 일주일에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틈틈이 건교부 업무망에 글을 써서 올렸다.
글을 업으로 쓰는 작가는 아니지만, 글은 쓰면 쓸수록 재미가 있고 희열과 기쁨도 맛보았다. 업무망에 올린 글을 동료들이 읽고 댓글로 격려도 해주고 공감해 준 덕분에 글 짓는 일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건교부에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건축과에 근무할 당시 한국건축문화대상 시상식 후에 수상자와 후원 기관과 함께 약 30명이 9박 10일간 뉴질랜드와 호주로 건축문화 여행을 갔다 온 것이다.
그때 해외여행은 처음이고 여행기를 써보기로 마음을 먹고 9박 10일간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생각과 감정을 비망록에 적어 나중에 이를 토대로 여행기를 썼다.
건교부 업무망에 글도 게재하고 여행기도 쓰면서 글 짓는 일에 더욱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뒤늦은 나
이에 취미 삼아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처럼 영혼이 담긴 글을 써보고 싶다. 그분의 반의반이라도 따라가고 싶지만, 그저 마음만 앞설 뿐이다.
비록 글을 쓰는 것이 어렵지만 앞으로 가야 할 인생의 마침표란 생각이 든다. 공직을 퇴직한 이후에도 삶이 다하는 날까지 부지런히 글 짓는 연습이나 하면서 좋은 작품 한편이라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고향을 등질 때는 공직이란 꿈을 위해 물음표를 가슴에 안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 꿈에 대한 마침표를 하나하나 찍어가며 고향에도 가고 주변도 돌아보며 삶의 여정을 하나하나 마무리하고 싶다.
인생의 종착역인 삶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 언제 올 진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성장이란 물음표 대신 여유로운 마침표를 찍어 가면서 소박하고 소소하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