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에서 돌아와 광명시 철산동에서 총무처 시험을 준비했다. 법무부 출입국에 사표를 내고 나자 몸이 자유로워졌다. 다른 것은 접어두고 오롯이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생활을 단순화했다.
그렇게 철산동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경기도 지방직 7급 행정직 시험 공고문이 신문에 게재되었다. 응시 자격을 살펴보니 주민등록 전입 기간이 약간 모자랐다. 총무처 시험을 테스트할 겸 응시원서를 접수했다.
경기도 지방직 시험을 보고 합격자 발표 날에 명단을 살펴보니 내 이름이 들어있었다. 응시 자격 미달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쉬움과 미련이 생겼다. 아버지와 장인어른이 도와주려고 했지만, 주민등록 전입 기간을 수정한 주민등록초본을 제출해야 하는데 다른 길이 없었다.
경기도 7급 지방직 행정직 필기시험은 합격했지만, 응시 자격 미달로 최종 면접시험을 포기했다. 경기도 지방직을 포기하고 다시 공부하고 있는데 충북도청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연말에 충북도청에서 경제연구소를 설립하는데 사무직원을 선발할 계획이란다. 충북경제연구소라면 한번 근무해 볼 만한 곳 같아 원서를 접수하고 시험을 보았다.
그 필기시험에서 나를 포함한 두 명이 합격했다. 그리고 최종 면접시험에서 내가 합격되어 충북경제연구소에서 근무하라는 인사발령을 받았다.
광명시에서 청주까지 출퇴근할 수 없어 청주에 내려가 누님 집에서 연구소를 출퇴근했다. 충북경제연구소는 아직 설립단계라 업무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연구소는 초기 단계라서 연구원도 뽑지 않았고 충북도청의 간섭만 심했다.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충북도청 업무도 도와주면서 그해 겨울을 청주에서 보냈다.
이듬해 봄이 되어 곰곰이 돌아보니 아무래도 내가 몸담을 조직은 이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공부하던 것도 있고 가을에 총무처 시험을 보기 위해 충북경제연구소에 사표를 제출했다.
연구소에 사표를 내고 누님 집에서 짐을 싸서 서울로 막 올라오려고 하는데 연구소 직원에게 연락이 왔다. 경제연구소에 함께 근무한 것도 인연인데 저녁이나 먹고 헤어지자 해서 사무국장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튿날 청주에서 광명시로 올라왔다. 광명시 집에서 공부하는 중에 사당동 처가 반지하에 사는 사람이 나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아내의 출퇴근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당동 처가로 들어가자고 했다.
광명시 빌라를 팔아 처가 근처에 연립을 사서 전세를 놓고 우리는 처가에 월세로 들어가 살았다. 그리고 나는 총무처 시험에 집중하기 위해 모든 생활을 최대한 단순화했다.
하루에 걷는 것 외에는 공부에만 올인했다. 총무처 시험을 준비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정해서 실천했다.
첫 번째는 비슷한 과목은 몰아서 공부했다. 헌법, 행정법, 행정학 3과목과 국어, 윤리, 한국사 3과목은 서로 내용이 유사해서 과목을 몰아서 공부하면 시너지 효과가 난다. 나머지 전산학과 영어나 경제학은 틈새 시간을 정해 공부했다.
두 번째는 공부하는 중에 발생하는 짬짬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화장실에 가거나 부득이 시내에 나갔다 올 일이 있으면 시간이 나는 대로 영어 단어나 한문을 외우거나 공부했다.
세 번 째는 매월 모의고사 시험을 보는 날을 정해 시험 보는 시간에 맞추어 냉정하게 평가하고 부족한 과목은 보충을 했다. 세 가지 원칙을 정해 놓고 식사하고 운동하는 시간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공부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처갓집 옆에 사는 아주머니가 치는 피아노 소리가 공부를 방해했다. 피아노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힘이 실려 있는 것 같다. 사람의 심장을 콕콕 찌르는 선율 때문에 집중이 되지를 않았다.
아주머니는 약간 히스테리적 성격의 소유자 같았다. 아주머니가 피아노 치는 시간대는 일정했다. 나는 피아노 치는 시간대에 잠을 자기로 하고 아침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다 그 시간 대에 맞추어 미리 잠을 잤다.
옆집 아주머니의 피아노 소리와 싸워가며 공부한 결과 그해 총무처에서 실시하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총무처에서 실시한 7급 행정직 시험에 합격하고 나자 자신감과 함께 자부심도 생겼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무원 시험만 네 번째 합격한 것이다. 충청북도 9급 지방행정직, 총무처 9급 출입국관리직, 경기도 7급 행정직, 총무처 7급 행정직 시험에 합격했다.
내 인생이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공무원 시험에 네 번이나 합격하는 영광을 누렸다. 나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만큼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우등상 한번 타본 기억이 없는데 어떤 운명이나 기운이 내게 작용한 것은 아닐까. 남들은 한 번 붙기도 어렵다는데 네 번이나 합격했으니 공무원이 천직의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시험이란 제도가 사람의 신분을 결정짓는 사회다. 전문직 자격증으로 전문가의 길을 가는 것도, 공직의 길을 가는 것도 시험에 통과하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사회의 첫출발을 시험이란 잣대 위에 올려놓고 저울질해서 능력을 평가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시험 자체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기준은 될 수 있지만, 개인의 특성과 적성을 살릴 수 있는 다양성과 전문성은 살릴 수 없는 단점도 내포되어 있다.
총무처 7급 행정직에 최종 합격하고 국방부로 배정받고 이듬해 봄에 국방부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오랜 방황 끝에 정착이란 단어가 생각났고 그리웠다.
처음부터 고시를 준비했으면 삶의 방황이란 곁가지를 잠재울 수 있었을 텐데. 인생은 많은 시련과 고생을 겪고 나서야 달성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밀려왔다.
지금도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방향은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인지 잘 모른다. 내 삶은 마치 시험을 보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결과 머리가 더욱 빨리 희어졌다.
인생을 평평한 길이 아닌 굴곡진 언덕을 하나하나 넘어갈 때마다 기다린 것은 시험이란 단두대다. 그 운명 앞에 시험이란 단두대를 바라보며 굴곡진 언덕을 넘어가면서 어렵고 힘들게 버텨낸 것 같다.
그렇게 평생토록 의지해왔던 시험이란 단두대에서 이제는 내려갈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내 마음에서 해결하지 못한 숙제는 시험에 의지해서 걸어온 길에 대한 물음표다.
내가 가고 싶고 원했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또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그렇게 시험에 매달려 투쟁 아닌 투쟁을 벌여가며 살아내고 버텨온 것일까.
지금도 종종 시험과 관련한 꿈을 꾸고 있다. 일 년에 몇 번은 꼭 시험을 보러 가거나 시험을 본 결과 떨어지거나 합격하는 꿈이 자주 등장한다. 내 머릿속엔 시험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삶에서 넘지 못할 커다란 언덕이 생길 때마다 시험을 통해 하나하나 극복하고 넘어야 했던 것이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작용한 것 아닐까.
내 삶에서 시험은 그렇게 막다른 길을 돌파하는 목적과 수단으로 작용했고, 때로는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하고 지금도 꿈속에서 풀어야 할 애증의 한이 되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