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완상

by 이상역

봄을 맞이한 햇수도 꽤 여러 해다. 봄은 나이에 비례해 완숙하게 익어 가는 동반자 같다. 나이가 더해갈수록 봄은 봄으로 느껴지지 않고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로 다가온다.


자연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계절이다. 점점이 자라던 새싹이 서서히 자라면서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자연에 대한 신비와 경이로움이 높아만 간다.


내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계절의 순환을 나이가 들어서도 되풀이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연의 위대함에 넋을 잃는다. 더해서 계절의 순환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견고해져만 간다.


아침 출근길에 길가에 선 플라타너스, 느티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느릅나무에서 초록의 싹이 자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차창 밖 산자락에 초록이 짙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연초록을 통해 전해오는 생명의 신비스러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초록이 성장해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상쾌함과 건강함을 전달받는다. 봄은 만물이 태동하는 계절이다. 매일같이 출근하며 만나는 봄날의 아침 풍경이 사뭇 다르다.


안양에서 인덕원을 지나 과천으로 가는 넓은 대로에 들어서면 관악산이 시야로 들어온다. 겨울에는 우중충하고 칙칙한 소나무의 진한 녹색과 바위의 회색빛이다가 봄이 무르익어가면서 연초록의 새싹이 고개를 내밀면 관악산은 초록이 어우러진 초록빛 바다로 변신을 서두른다.


봄이란 계절의 멋보다 눈으로 바라보는 자연의 변화에 마음은 저절로 봄날의 정취에 빠져든다. 옛사람이 봄날의 흥겨움에 취해 가는 봄날을 노래한 것처럼 그에 덩달아 나도 봄날의 흥겨움을 노래해 본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졔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ㅣ야 아랴마난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야 잠 못드러 하노라.


조선 시대 이조년은 따뜻한 봄날에 배꽃과 달빛에 취해 넋을 잃고 소쩍새 소리를 들어가며 잠자는 것도 잊은 채 자신 앞에 흘러가는 봄날을 애상적으로 읊조렸다.


이조년이 느낀 조선 시대의 봄날은 지금도 시대를 넘어 현재 진행형이다. 단지 자연을 바라보고 계절을 노래하는 사람만이 달라졌을 뿐이다.


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술의 계절이다. 청춘에게는 열정과 뜨거움을, 중년에게는 성숙과 완상의 즐거움을 선사해 주는 것이 봄이다.


생명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모든 생명은 채움과 비움의 반복을 통해 묵시적인 아름다움을 생산한다. 이 봄도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기 위해 자신의 촉수를 사방으로 뻗어가며 민감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가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봄날이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자연의 소리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들려온다. 그 소리는 자연을 맞이하는 희열과 생명의 순환을 알리는 성장의 소리다.


사람도 봄의 초록과 같이 새싹을 내보이며 마음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는 없을까. 그저 가는 봄날을 노래하며 완상을 즐기는 마음을 자연에게 들려주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오늘도 성장하는 연초록의 새싹을 바라보며 가는 봄날과 생명의 환희를 노래해 본다. 계절의 순환을 따라가는 봄날을 노래할 줄 아는 것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몸은 살아있되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초록이 생명으로 다가오지 않고 죽어가는 색깔로 다가온다.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자신이듯이 가는 봄을 아름답게 보아주고 노래하는 것 또한 자신의 마음자리다.


오늘은 모처럼 가는 봄날을 눈으로 바라만 보지 않고 가슴에 저장된 옛시조 가락이나 꺼내어 이조년처럼 소리 내어 읊조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