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업무망에는 나이가 되어 정년으로 직장을 떠나는 사람의 이별 인사가 올라온다. 요즈음 직업을 구하기도 어려운 시절인데 한 직장에서 정년을 마치고 떠나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존경스럽다.
나도 직장에서 정년까지 무사히 다니면서 마칠 수 있을까. 해가 거듭될수록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바라는 것은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사람은 만남과 이별을 통해 성장한다. 모태와의 이별은 분만의 고통과 부모의 환대면 족하지만 부모 곁을 떠나 결혼을 하거나 직장을 퇴직하거나 생을 마감하는 이별은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그나마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데 직장을 퇴직하고 떠나는 사람에 대한 퇴임식은 좀 소홀히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 다니다 나이가 들어 퇴직을 하는 것도 명예롭고 영광된 일이다.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시절이 직장이다. 모태에선 십 개월, 결혼 전 부모와는 이십여 년을 보내고 직장은 그보다 긴 삼십 년 이상을 보내는 곳이다.
젊은 나이에 직장에 들어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양육해서 출가시키는 삶의 바쁜 시절을 보낸다. 그런 소임을 마치고 물러나는 사람에게 퇴임식을 제대로 해주지 않고 헤어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직장을 떠나는 사람에게 가족들을 초청하고 직원을 모아놓고 그간 수고하고 고생했던 시간을 반추하며 퇴임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직장에 남은 자의 몫이다. 사람은 오고 가는 것을 분명히 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관장과 같은 수직적이고 계층적인 퇴임식에만 관심을 갖는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만 챙겨주고 그늘에 가려 직장의 그루터기를 묵묵히 지켜온 사람의 퇴임식은 좀 소홀히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는 사람의 아쉬운 마음은 달래주어야 한다. 이별이나 만남이 무슨 행사로 인연을 맺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만나고 이별할 때 마음에 정성을 담은 위로와 석별의 정을 나누는 것은 사람이면 당연히 해야 할 도리다.
직장인이 나이가 들어 직장을 물러나는 것은 직장이란 연대와 소속감에서 벗어나 본래의 개체로 돌아가는 것이다. 직장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삶의 등불을 밝히고 지켜 온 삶의 그루터기다.
평생 몸담아 온 직장을 떠나는 것은 삶에 희망이란 조각배를 부여잡기 위한 또 다른 여정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주인공 산티아고는 바다에서 84일 동안 아무것도 잡지를 못했다.
그렇게 빈 손으로 배를 타다가 85일째 되는 날에 자신의 배보다 큰 희망을 낚았다. 노인은 희망의 끈을 부여잡기 위해 배보다도 큰 고기를 상어와 싸워가며 끝까지 지켰다.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은 희망이다. 돈과 권력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이 사람에게 용기와 힘을 준다. 물론 직장을 떠난다고 인생 전부를 산 것은 아니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처럼 새로운 희망을 낚고 찾아야 할 때가 바로 직장을 물러날 때다. 퇴직은 새로운 ‘나’라는 개별적 존재를 다시 만나 제2의 희망을 찾아야 하는 시기다.
직장에서 물러나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사람에게 소망의 끈을 부여잡을 수 있도록 축복을 해주어야 한다. ‘노인과 바다’에서 헤밍웨이는 산티아고의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
소설을 읽어보면 행간에 85라는 숫자에 희망과 소망을 걸었다. 노인의 나이는 대략 85세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 85세에도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하듯이 직장을 떠나는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어여 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과정을 거치야 한다. 직장에 남은 사람은 퇴직이 아주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다가오는 것이 퇴직이다.
지구라는 별에서 인연을 맺은 만남과 이별은 아름답게 마무리할 줄 알아야 한다. 직장을 물러나는 사람에게 직장이란 무대를 쓸쓸하고 초라하게 나가는 대신 따뜻한 박수를 받으며 떳떳하게 나갈 수 있도록 축복해주어야 한다.
직장을 물러나는 사람에게 환송이 아닌 반은 쫓아내다시피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직장도 사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사회적 무대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주고 끊어주는 고리는 인연이다.
그런 소중한 인연의 마무리를 아름다운 박수갈채를 받으며 당당하게 사회라는 무대로 나갈 수 있도록 마무리 짓고 이어주는 것은 직장에 남은 자의 몫임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