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인사로 층과 과가 바뀌었다. 비록 같은 건물이지만 근무지는 2층에서 3층으로 변경되고 과의 업무도 달라졌다. 직장에서 인사는 근무지와 업무를 좌우하는 명령서나 마찬가지다.
직장인은 인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현재의 자리를 고수하느냐 아니면 다른 자리로 이동하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직장에 인사라도 있는 날은 아침부터 조직이 술렁거린다.
아침부터 사람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지고 인사로 인해 자리를 오고 가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퇴근 후 환송연에 참석하다 보면 일주일이 정신없이 흘러간다.
직장의 업무망에는 직원이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는 자유게시판이 있다. 그 게시판에는 다양한 글이 올라온다. 직원 부모님이 수확한 사과나 귤을 판매하거나 사용하던 중고차나 등산 장비 등 중고품을 팔거나 책을 읽은 후 감명받은 내용 등 다양한 정보가 올라온다.
그중에 성경의 일화를 간단하게 정리해서 올리는 '오늘의 묵상'이란 글을 종종 읽는다. 글을 올린 직원의 얼굴은 잘 알지 못하지만, 그 글을 읽으면서 감명을 받곤 한다.
이번에 인사로 근무지가 3층으로 변경되면서 화장실에 갈 때마다 업무망에 올라온 ‘오늘의 묵상’을 다시 읽는다. 글을 올리는 직원이 3층에 근무하는지 ‘오늘의 묵상’을 종이로 출력해서 화장실 벽에 붙여 놓았다.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볼 때면 ‘오늘의 묵상’이 눈앞에 아른거려 읽고 싶지 않아도 시선은 저절로 향한다. 그런데 ‘오늘의 묵상’을 사무실에서 읽을 때와 화장실에서 읽을 때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사무실보다 화장실에서 읽는 맛이 더 깊고 여운이 오래가는 것 같다.
화장실에서 '오늘의 묵상'을 읽노라면 학창 시절 화장실에 앉아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을 외우던 때가 생각난다. 다른 곳은 몰라도 화장실에서 외웠던 단어나 공식은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 장소의 특이성과 볼일을 보려고 마음을 집중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오늘의 묵상’을 읽는 재미에 화장실 가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 애쓰는 직원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다. 남들은 무엇 때문에 그런 수고를 하나 하겠지만 그분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분 나름대로 직원에게 무언가 하나라도 보여주고 싶은 생각에 번거로움도 마다하고 눈치까지 보면서 수고하는 것 같다. 직장의 화장실에서 ‘오늘의 묵상’을 읽는 재미에 빠져 지내다 보니 학창 시절 화장실에서 낙서한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학창 시절 허름한 나무판자로 만든 화장실에서 벽에 낙서한 것이나, 누군가 지운 흔적을 읽기 위해 눈을 부라렸던 생각이 떠오른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려고 쪼그려 앉으면 눈앞을 턱 막은 벽에 백목으로 그린 낙서와 지워서 흐릿해진 낙서를 들여다보며 읽던 재미가 쏠쏠했다.
그 시절 화장실은 일종의 성교육 장소였다. 청춘남녀의 사랑이 알려지고 온갖 성에 대한 육두문자와 누군가와 관계를 어떻게 나눈 글에 그림까지 곁들여 낙서를 해 놓았다.
그것을 읽고 난 뒤 믿고 안 믿고는 자유지만, 화장실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마치 다른 사람은 모르고 나만이 비밀을 아는 듯이 속으로 끙끙대며 가슴앓이를 했다.
성교육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말하는 사람은 얼굴이 붉어지고,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과 눈의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갈피를 못 잡는 것이 성교육이다.
성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는 끝이 없지만, 남자나 여자나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표현에 한계가 따르는 것도 성교육이다. 이런 재미난 성교육을 화장실에서 무료로 읽었으니 낙서를 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고맙다.’라는 인사조차 하지를 못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낙서하는 도구도 시대에 따라 변천했다. 처음에는 연필이나 분필로 낙서를 하다가 볼펜이나 매직펜과 같은 유성 잉크가 등장했다. 이런 도구로 낙서하면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로 인해 화장실 출입자에게 오랫동안 남녀의 사랑법을 알려주었다.
또한 화장실 낙서 내용도 초창기에는 남녀의 사랑이나 육두문자에 의한 욕이 전부였다. 그러다 차츰 사람의 장기를 판다거나 데이트를 하려면 전화해 달라고 핸드폰 번호를 적어놓거나 헌혈하거나 장기를 매매한다는 전화번호를 적어놓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오늘날은 건축자재의 발달로 화장실에서 낙서조차 할 수 없다. 화장실 벽에 반들반들한 타일을 붙여 놓아서 유성펜으로 낙서를 해 보았자 휴지나 걸레로 쓱 훔치면 그만이다.
비록 학창 시절 화장실에서 즐겼던 낙서와는 다르지만, 사무실 화장실에서 ‘오늘의 묵상'을 읽어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런데 직장의 3층 화장실에서 잠시 누렸던 ‘오늘의 묵상’을 읽는 재미도 더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과에서 업무조정으로 근무지가 3층에서 1층으로 변경되었다. 그간 3층에서 작은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을 누가 시기라도 한 것일까? 이제는 3층 화장실에서 ‘오늘의 묵상’을 읽으며 즐거운 일상을 누리던 생활과도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