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 앞 시위

by 이상역

오늘은 아침부터 택시노조가 청사 정문 앞 도로를 무단점거하고 확성기를 청사 방향으로 돌려놓고 시위를 벌인다. 평소 조용하던 정문 앞이 아침부터 어수선하다.


교통경찰이 차량을 통제하는 호각 소리와 시위대의 거친 외침 소리, 청사에서 전경이 뛰어오는 군화 소리와 지나가는 차량의 경음기 소리가 뒤섞여 부산하기만 하다.


택시노조가 정당한 방법으로 시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정도를 넘은 시위는 동정해 줄 수가 없다. 아침부터 확성기를 틀어놓고 큰소리로 외쳐대자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아침부터 마음이 편치 않고 민원 전화도 받을 수 없어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데도 없다. 오늘도 아침부터 듣기 싫은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려니 짜증만 나고 시위하는 노조가 밉기만 하다.


오늘은 운동장이 아닌 정문 앞에서 시위를 하는 바람에 청사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짜증을 낸다. 그중에 제일 신경질을 부리는 사람은 청소하는 아주머니다.


시위대가 청사를 진입하는 불상사를 막고자 투입하는 전경의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이들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에 따라 아주머니도 해야 할 일이 늘어나자 노골적으로 전경에게 짜증을 낸다.


아주머니는 전경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도 노크를 해가며 청소해야 하니 빨리 나오라고 재촉한다. 그러자 전경은 화장실 안에서 투덜거리며 “아~씨”라는 욕을 거침없이 토해낸다.


사람의 본능을 청소가 급하다고 아주머니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청사에서 일하는 사람, 청사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 청사를 지키려고 막는 사람 이들 모두는 따지고 보면 각자의 생계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나 택시노조나 모두 가족의 생계 문제가 달려 있다. 그리고 청사를 지키는 전경도 국방의 의무를 대신하여 청사를 지켜야만 한다.


누구의 편도 선뜻 들어줄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청소하는 아주머니 편을 들자니 전경이 대들 것 같고, 시위대에게 시위 그만하라고 하면 “당신이 우리의 생계를 책임질 거냐!”라면서 눈을 부라리며 대들 것만 같다.


청사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청사 앞에 와서 시위를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드높인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선뜻 앞으로 나서지를 못한다.


모든 시위에는 자신들의 생계 문제가 걸려 있어 조금이라도 방해받거나 목소리를 높이면 죽기 살기로 대들 것 같아서다. 그리고 시위할 때 틀어주는 음악도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청사 앞 대운동장에서 시위를 많이 하다 보니 이제는 그들이 틀어놓은 노래를 따라 부를 정도다. 머리가 좋지 않은 나도 콧노래로 흥얼거린다.


누구 말마따나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은 수당을 받고 전문적으로 시위를 해주는 것은 아닐까. 매번 똑같은 노래를 틀어놓고 청사에 근무하는 사람을 세뇌시켜 자신들이 성취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던 초창기에는 선동적이고 장중한 노래를 불렀다.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노조가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으니 이전보다 덜 선동적인 노래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청사를 향해 들려주는 노래도 듣기 좋고 분위기 좋은 노래를 틀어주면 안 되는 것일까. 어차피 시위하는 것은 아는데 노래라도 분위기 좋은 노래를 틀어주면 시위하는 기분이 나지 않는 것일까.


시위는 장승곡과 같은 노래나 목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올바른 뜻을 전달하는 데 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가 되자 정문 앞 시위는 사라지고 대운동장에서 다른 시위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국토부는 각성하라.”라며 울부짖는 여성의 앙칼진 목소리. 여성이 소리치자 시위대가 “국토부는 각성하라.”라며 단체로 외쳐댄다. 점심을 먹고 마음을 정리하여 일을 하려던 기분이 싹 사라진다.


시위대에게 "국토부는 각성하라."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사는 신세다. 그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각성하는 수준을 넘어 득도의 수준까지 이르렀다. 과천이 살기 좋다는데 무엇을 보고 살기 좋다고 하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다.


날마다 늘어나는 시위에, 거리마다 박살 내자, 짓밟자, 깨부수자, 목숨 걸고 결사반대 등 과격한 문구가 적힌 울긋불긋한 플래카드가 빼곡히 붙어 있는데 과천이 과연 살기 좋은 곳인지 의문이다.


오늘도 아침부터 어제 들었던 시위대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다. 오후에 일을 마치고 퇴근해서 집에 가면 낮에 들었던 시위대의 노랫소리가 환영처럼 들려온다.


어떤 날은 낮에 들었던 시위대의 노랫소리가 꿈속에도 등장한다. 시위하는 현장에서 확성기를 빼고 할 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아! 언제까지 시위대의 노래를 들어가며 직장에서 근무해야 하나. 내 귓전에서 시위대의 노랫소리가 아닌 평화롭고 따뜻한 목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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