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by 이상역

내가 관악산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봄이다. 아버지가 무릎을 다쳐 고향에서 농사일을 돕다가 총무처에서 시행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과천에 면접을 보러 가서 우연히 만났다.


그때는 관악산이란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여인숙에서 면접시험 준비하느냐 산에 관심조차 없었다. 그렇게 과천에서 스치듯 만나고 결혼 후 서울 사당동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 관악산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때까지 관악산은 머릿속에 각인될 만큼 의미 있는 산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러다 관악산이 가슴속에 들어선 것은, 그 산 남쪽에 자리한 청사에 근무하면 서다.


청사에 근무하다 보니 관악산은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고, 눈을 돌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었다. 어떤 산이 그 사람의 가슴에 들어서면 그 산에 대한 정도 들고 삶의 철학도 생겨난다.


그때부터 산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삶을 공유하는 생의 한 과정으로 들어선다. 그런 관계 속에서 산이 전하는 묵언의 말도 듣고 고독과 슬픔과 외로움도 나눈다.


고향에도 시루봉을 거느린 길상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휘감고 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까지 그 산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주하며 성장했다. 고향의 산자락은 계절마다 꽃을 피우고 초록이 자라는 경이로움과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었다.


가끔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는 날은 한걸음에 그 산으로 올라가 마음을 다독이고 진정시켰다. 고향의 산자락이 육체적 성장과 마음의 풍요를 안겨주었다면 중년이 되어 만난 관악산은 사색과 고독을 통한 정신적 성장을 길러준다.


청사로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 관악산 정상이 희미하게 바라보인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은 맑게 보이고 구름이 낀 날은 흐릿흐릿하게 보인다. 관악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높지 않은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산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출근길에 직장에 도착해서 운동장에 차를 주차하고 그 산을 올려다보면 마치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처럼 웅장한 모습으로 바라보인다. 직장을 오고 갈 때마다 그 산을 올려다보면 무수한 울림이 쏟아지고 때로는 커다란 바위처럼 묵직한 무언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관악산을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산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알아 가고 있다. 그렇다고 등산에 일가견이 있다거나 풍류로써 산을 즐긴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직장을 오고 가며 바라보거나 마주하기 싫어도 바라봐야 하는 것이 관악산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절이 바뀌거나 날씨가 변해도 만나야 한다. 그때마다 산의 모습은 매번 달라지고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변한다.


사람의 가슴에 산이 들어서면 그 산을 사랑하게 되고 꿈을 꾸게 된다. 산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대변한다. 내게도 관악산은 고향의 이름 없는 산에 이어 두 번째로 가슴에 자리를 잡았다.


가끔 산 정상이 안개나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는 관악산이 신비스럽다. 그럴 때 산은 고고한 자태를 감춘 여인의 모습과도 같다. 사람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 얼굴색이 달라지지만, 산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얼굴색이 변하지 않는다.


산이 사람의 가슴에 들어차면 관심이 증폭되고 애정도 쑥쑥 자란다. 그만큼 산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산을 노래하고 품어주고 아껴주는 것이다. 그런 산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가냘픈 삶.


어쩌면 나보다 관악산이 나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관악산과 인연을 맺고 삶의 보따리를 이어가고 풀어간 지도 그럭저럭 꽤 되었다. 사람은 가슴에 무언가 하나의 대상을 품고 의지하며 사는 것은 좋은 것 같다.


그것이 믿음이든 노래든 아니면 시나 소설이든 자신의 마음에 의지할 것이 있다는 것은 삶을 풍성하고 은혜롭게 한다. 오늘도 관악산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인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감추기에 바쁜데 산은 숨길 것이 없다는 듯 태연하다.


내가 산에게 배워야 할 것도 남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것이 아닌 점잖게 드러내는 것이다. 삶은 잔잔한 모습으로 드러날 때 아름답고 숭고하다.


산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요란하지 않은 순수함이다. 산의 겉모습은 계절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지만, 그 달라짐은 자연이란 또 다른 질서의 표현이다. 사람도 자신을 가꾸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따르며 닮아가고 싶어서다.


내가 언제까지 관악산에 기대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관악산과 언제 이별할지 모르지만 이별하는 날까지 그저 애증과 연민을 부여안고 하루하루 기대고 살아가는 삶이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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