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의 삶

by 이상역

사람은 일을 하면 대가를 받는다. 하루는 일급으로, 일주일은 주급으로, 한 달은 월급으로 받는다. 나는 한 달간 일한 대가를 받고 사는 월급쟁이다.


요즈음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해외로 나간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들보다 먼저 태어나서 직업 하나 얻어 사는 것에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공직에 첫 발령을 받고 들어와 근 20년간 월급명세서를 모아 왔다. 고향의 읍사무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월급봉투 겉면에 총급여액에서 공제금액을 뺀 실수령액을 적은 봉투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월급날에 봉투에 담아주던 아날로그 시절 월급은 사라지고 디지털 시대에 맞게 은행 통장으로 월급이 입금된다. 그리고 월급명세서가 적힌 종이를 받다가 지금은 월급명세서도 사라지고 이메일로 받는다.


한 달간 일한 대가는 은행으로 바로 입금되다 보니 아내에게 고생했다는 말도 듣지 못한다. 그저 죽도록 일만 하고 월급에 대한 실권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간 월급명세서를 메일로 받기 전까지는 부지런히 모아 두었다.


매월 월급날이면 책상 서랍에 넣어둔 월급명세서를 꺼내어 편철한다. 한 달간 일한 결과는 손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명세서에 적힌 월급액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보면 대견한 마음이 든다.


두툼한 월급명세서에는 지난 삶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본봉만 해도 처음 받던 때보다 상당히 올라갔고, 각종 수당이 생겨나 월급의 액수도 과거보다 양적으로 많이 불어났다.


그러나 한 달에 고생한 대가를 받는 월급은 인플레와 소비자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월급을 받는 날이 되면 통장의 숫자는 제로 아니면 마이너스다.


수도권에서 4인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평균 소득이 얼마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월급날이면 통장은 마이너스라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신세다.


문화생활이라곤 주말에 가족과 같이 밖에 나가 외식 한번 하는 것이 전부다. 그밖에 다른 것은 여유가 없어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혹여라도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없기를 간절하게 기도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직장에서 받는 월급이 만족한 수준이 아니다 보니 동료들은 부인에게 돈을 벌어 오라고 밖으로 내보낸다. 공교육은 믿을 수 없고 자식에게 최소한 사교육이라도 시켜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것이다.


나는 맞벌이도 아니고 아내 또한 특별한 기술이 없어 미용이나 장사 같은 것은 할 수 없다. 나라도 재능이 있어 자격증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부업거리라도 찾아 나설 텐데. 그럴만한 재능도 재주도 갖지 못한 몸이다.


돈과는 인연이 별로 없고 몸도 약해서 노동의 강도가 조금이라도 높으면 금세 눕고 만다. 사람은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야 소신 있게 업무를 처리한다.


먹고사는 문제에 생사가 걸리면 돈에 약하고 대접에 약하고 권력에 약하고 술에 약하다. 돈이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자존심을 쓰러트리는 것이다.


부정부패의 추방도 결국은 돈과 관련한다. 사람이 충분하게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보수체계를 갖추어 놓고 부정부패를 뽑아내는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는 제쳐두고 무조건 돈을 받는 사람은 처벌하겠다는 발상은 고양이 앞에 쥐를 갖다 놓고 먹으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매월 월급날이면 저축보다 마이너스에 신경 쓰다 보니 삶이 마치 급여 통장에 담보 잡혀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다른 사람이 받는 월급과 비교하면 허탈감마저 생긴다.


집에서는 가장이라고 아이들한테 소리치고 아내에게는 절약해서 살아가라고 강요한다. 사람은 때때로 자신의 단점을 가리기 위해서 소리를 친다.


장기에서 차와 포를 떼어내면 남는 것은 힘없는 졸과 상만 남듯이 쥐꼬리 같은 월급을 아껴가며 살아가는 아내가 고맙고 감사하다. 아내가 가정주부 사표를 내면서 밖에 나가 돈을 벌어 올 테니 당신이 가족 살림을 맡아 처리하라며 가계부를 던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요즈음 너도나도 일확천금을 꿈꾸기 위해 로또복권을 산다. 나도 로또 맞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몇 번 사보았지만 그때마다 꽝만 맞았다.


우리 가족이 여유롭게 먹고살 수 있는 돈은 과연 얼마일까. 비록 돈을 버는 재주가 없어 다른 것은 모두 접고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돈이란 속박과 굴레를 벗어나서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찾아올까. 먹고사는 문제는 평생 짊어질 짐이자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삶의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나서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 돈과 관련한 것에서 훨훨 벗어나 홀가분하게 그동안 마음속으로 그려본 세게나 꿈꾸며 살아보고 싶다.


사람은 수중에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를 못한다. 돈과 먹는 문제에서 벗어난 삶이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 가망 없는 희망에 헛된 꿈을 꾸는 신세가 오늘따라 처량하고 가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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