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가족과 강원도로 휴가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양평 용문사에 들른 적이 있다. 용문사는 막내가 태어나기 전 큰딸을 데리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다녀왔던 곳이다.
지난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용문사를 찾아갔다. 국도 6번 도로에서 이십 분 정도 차를 몰아가자 용문사 관광단지가 나왔다.
예전에 왔을 때는 놀이시설이 없었는데 놀이시설에서 ‘쿵쾅쿵쾅’하는 요란한 노랫소리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놀이시설에 눈이 가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용문사 매표소에 가서 표를 사서 입장했다.
아이들과 용문사로 올라가면서 큰아이에게 “예전에 이곳에 온 것 기억나니?” 하자 “아니요! 기억나지 않아요.”라며 대답한다. 큰아이가 세 살 무렵이었으니 기억이 날 리 없을 것이다.
그날 큰아이는 팔이 빠져 서울 보훈병원까지 가서 치료까지 받았다. 친구들과 용문사 입구에서 들어서기 위해 아이를 잘 안아주려고 추슬렀는데 갑자기 아이가 팔을 끌어안고 몸을 사렸다.
그러잖아도 큰아이는 팔이 몇 번 빠진 적이 있어 걱정했는데 다시 빠진 것 같아 불안했다. 그때는 차도 없던 시절이라 나 혼자 되돌아올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나로 인해 일행을 되돌릴 수 없어 아이가 팔을 움직이지 않도록 가슴에 꼭 끌어안고 조심조심하며 용문사를 구경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훈병원에 다니는 친구 부인의 도움을 받아 팔을 맞추었다.
그날 차가 밀려 근 밤 10시 넘어서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가 아이의 팔을 비틀면서 채자 아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의사와 악수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과 용문사로 터벅터벅 올라가는데 아이들과 살아온 지난날이 떠올랐다. 작은 아이는 태어나기 전이었으니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큰아이는 중학생으로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으로 성장했다.
아이들과 용문사를 올라가는 감회도 남달랐다. 작은 아이는 아내의 손을 잡고 나는 큰아이 손을 잡고 오르며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었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올라가는데 드디어 용문사가 나타났다.
용문사에 도착하자 입장표에서 본 우람한 은행나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은행나무 옆에는 피뢰침으로 높은 철탑까지 세워 놓았다. 아이들과 은행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은행나무에 옆에 세워 놓은 표지판을 읽었다.
은행나무는 나라를 잃은 마의태자가 금강산에 가던 중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랐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랐다는 내용이 표지판에 적혀 있다.
두 가지 전설 중 어느 것을 선택하던 은행나무를 심은 것은 신라 시대의 일이다. 고려 오백 년과 조선 오백 년을 합치면 천년의 세월이다.
용문사 절이 신라 경순왕 때 세운 것이라지만 절에서는 천년을 뛰어넘는 증거를 찾을 수 없고, 유일하게 은행나무만이 천년의 세월을 증명하는 것 같다. 은행나무는 굵기나 크기나 천년을 증명하고도 남을 만큼의 나이가 들어 보인다.
절에서 은행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옆에는 벼락에 맞지 않도록 피뢰침을 세워 놓았다. 내가 걷는 길은 신라 시대 때 나라를 잃거나 불교를 전파하러 다녔던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가 궁극적으로 찾아가야 할 것은 선조들이 남긴 발자취다. 그 길은 후손이면 당연히 가야 할 사명이자 의무다.
용문사에서 은행나무와 산사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계곡에서 자라는 고목의 소나무와 느티나무를 바라보자 마음이 포근해졌다. 산사는 누구나 찾아와도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반겨준다.
하지만 세속에서 함께 하는 교회는 왜 같은 형제가 아니면 반겨주지 않는 것일까.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산사에 들어가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촬영하거나 구경해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교회당 건물이 있는 곳에 들어가 사진을 촬영하거나 구경을 하려면 “왜 오셨느냐?” 아니면 “어떻게 오셨느냐?”라는 물음에 답이 궁해서 그냥 되돌아 나온다.
차마 “그냥 구경하러 왔노라.”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 말을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산사를 바라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또 그런 풍경을 마주하면 삶의 피로감이 줄어들고 마음도 청정해진다.
오래된 고목에서 묵은 향기가 피어나듯이 산사에서는 세월의 인정이 묻어난다. 오랜만에 가족과 용문사를 구경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용문사 입구로 내려와 놀이시설 타기를 소원하는 아이들에게 ‘급류 타기’와 ‘바이킹’을 태워주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즐겁게 놀이시설을 타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먼 훗날 아이들도 가족과 함께 한 소중한 추억을 되돌아보며 마음이 풍성해지기를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