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과 가을이면 직장이나 학교에서 신체 건강과 체력 향상을 위해 체육주간을 설정한다. 그에 따라 직장인은 체육주간에 하루 날을 잡아 동료들과 산이나 바다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이번 가을 체육주간에는 직장 동료들이 서울에서 되도록 멀리 가자는 의견을 개진했다. 동료들과 고민 끝에 나뭇잎이 전해주는 계절의 맛과 산이 품어내는 그윽한 정취를 느끼고자 강원도 오대산을 가기로 했다.
강원도는 태백산맥의 등줄기를 따라 웅장한 산들이 즐비해서 산맥을 바라보면 압도를 당한다. 과천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갈 때 높이 솟은 준령들을 바라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직장 동료들의 먹을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선발대로 먼저 출발했다. 과천청사를 나설 때는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더니 차가 강원도를 향해 갈수록 구름이 띄엄띄엄 나타났다.
그리고 대관령을 넘어가는데 검은 구름이 무리를 이루고 파도처럼 떠밀려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혹시라도 비가 내리면 체육행사는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걱정을 가슴에 안고 고속도로를 달려 동해안 포구에 자리 잡은 횟집에 도착했다. 횟집에서 회가 준비되는 동안 해안가에 앉아 기다리는데 푸른 바다가 시야로 들어온다.
바닷가에는 흰 파도가 출렁이고 바다와 하늘 사이에는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졌다. 해안가에 자리 잡은 아담한 집들이 오밀조밀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너른 바다를 바라보자 가슴이 시원해졌다.
가을날 산행은 삶을 돌아보는 넉넉함을 제공해 준다. 푸른 바다는 사람에게 살아가는 질주를 잠시 멈추고 돌아보라는 유한성을 품게 한다. 바닷가에 서면 더는 나아갈 길이 없다.
그렇게 발로 가야 할 길이 끊기면 마음은 무한한 바다 위를 질주한다. 횟집 아주머니가 회를 준비하는 동안 허름한 누각에 올라가 동료와 소주 한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 후에 아주머니가 준비한 회를 받아보니 양이 너무 적은 것 같다. 동료들은 주문진항에 가서 횟감을 더 챙겨가잔다. 비가 오고 난 뒤라 날씨가 을씨년스럽고 쌀쌀해졌다.
동료들과 주문진항에 도착하자 포구가 썰렁했다. 마치 바닷물이 빠져나간 해안처럼 포구가 휑하다. 주문진 포구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만, 횟감을 구할 수 없었다.
동료와 주문진항을 나와 속초 방향으로 올라가다 남애항에 들어섰다. 남애항은 포구가 작아 보인다. 포구에 들어서는데 옛 시절에 섬이었다는 팻말이 봉수대 앞에 서 있다.
회가 준비되는 동안 동료와 남애항 부두에 올라가자 가슴 가득 바닷물과 수평선이 들어찬다. 푸른 바다는 낭만적인 모습이지만, 바닷가에 몸이 닿으면 낭만보다는 삶의 본질인 삶과 죽음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푸른듯하면서 검게 다가오는 바다와 파도가 흰 거품을 토해내며 사람에게 거침없이 달려든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 검푸른 바다에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은 저절로 움츠러든다.
남애항에서 부족한 횟감을 보충하고 동료들과 묵기로 한 용평의 리조트로 향했다. 강원도는 우리나라에서 스키장이 제일 많다. 산이 높고 깊다는 특성과 눈이 많이 내리는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스키장이 들어선 곳에는 면 소재지 규모의 시설이 산골짜기에 들어찼다. 각종 콘도와 호텔과 편의시설 등 사람들이 찾아와서 먹고 놀고 잘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콘도 직원이 건네준 열쇠로 방을 열고 들어가 먼저 온 동료들과 회와 음식을 준비하며 다른 동료가 오기를 기다렸다. 사람은 일상을 떠나면 낯선 풍경과 미지의 세계에 푹 빠져든다.
콘도의 공기가 일상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창밖의 풍경은 여인의 화사한 얼굴처럼 아름답다. 먼저 온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회를 준비하는데 직장의 동료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강원도 용평 산골 자락에서 직장의 동료들이 모두 모이자 즐거운 저녁이 시작되었다. 직장인의 모임은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이 난다. 폭탄주가 돌고 그동안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던 동료들과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늦은 밤까지 술을 마셨다.
이튿날 아침 동료들은 술이 덜 깬 상태지만 일정대로 오대산을 오르기로 했다. 오대산의 매력은 단연 전나무다. 다른 나무도 많지만, 특히 오대산에는 전나무가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수십 년 된 전나무가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길가나 계곡마다 지천이다. 전나무와 잣나무와 소나무가 섞여 있으면 구별하기가 어렵다. 나무와 이파리의 색깔이 비슷해서 일행과 나무를 구별하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원사까지 비포장도로를 차를 타고 올라갔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산에는 대부분 유명한 산사가 자리하고 있다. 불교의 힘인지 아니면 마음의 수양은 깊은 산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는 몰라도 명산에는 대부분 오래된 산사가 자리하고 있다.
오대산 산세를 구경하며 포장되지 않은 길을 올라가자 상원사 주차장이 나왔다. 주차장에서 상원사로 올라가는 길에는 조선 시대 세조가 목욕하기 위해 옷을 걸었다는 관대걸이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어제저녁 술을 과하게 마신 탓에 오대산 비로봉까지는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다. 동료들과 산을 오를 수 있는 데까지 가기로 하고 전나무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상원사를 지나 약 1㎞ 정도 올라가자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힘들고 몸이 따라주지 않아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산을 함께 오르던 일부 동료와 올라오던 코스와는 다른 코스를 돌아 상원사로 내려와 찻집을 찾아갔다.
상원사 찻집에 들어서자 잔잔한 음악과 함께 통나무로 만들어진 찻집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찻집에 앉아 메뉴를 보고 오대산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벌나무 차를 시켰다.
차 이름도 처음 들어보던 것이라 무슨 맛이 날까 하는 호기심도 발동했다. 잠시 후 찻집 주인이 차를 갖고 나왔다. 동료와 차를 음미하며 마시는데 처음에는 별맛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차츰차츰 지날수록 그윽한 향기가 몸에서 배어 나왔다. "아하! 벌나무 차는 이런 맛이 나는구나."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차의 향기가 그윽하게 배어 나오는 맛을 처음 느껴본다.
차의 향기가 너무 좋아서 추가를 부탁했더니 주인이 남은 벌나무 차를 모두 가져와서 동료와 나누어 마셨다. 처음 마신 것보다 늦게 가지고 온 차의 향기가 더욱 진하게 배어 나왔다.
벌나무 차는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음미하면서 마시면 향기가 점점 진해지는 것 같다. 혹시 상원사에 갈 일이 생기면 상원사 찻집에 들러 벌나무 차 맛보기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오대산 전나무 숲도 멋있지만, 상원사 찻집에서 벌나무 차를 마시면 오대산을 구경하는 것보다 더 값지다. 차에 문외한인 나도 차 맛에 홀딱 반했다.
차 한 잔을 마시면 그윽한 향기가 올라오는 맛에 마음이 흠뻑 빠졌다. 찻집에서 차 맛에 흠뻑 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오대산에 올라갔던 동료들이 내려왔다.
동료들과 상원사 경내를 돌아보며 동종 앞에서 이곳에 다녀간다는 흔적을 남겼다. 동료들과 오대산 등산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전나무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내려왔다.
오대산 월정사를 빠져나와 횡계에서 유명한 부일식당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메밀꽃으로 만든 동동주에 강원도의 인심을 마시고, 구수한 숭늉으로 마음의 메밀꽃 향기를 달랬다.
그리고 비빔밥에 강원도 특유의 검은 된장국과 오대산에서 채우지 못한 산의 정기를 함께 비벼 넣어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종일토록 보고 걷고 마시고 먹고 한 것 모두 강원도의 것으로 채웠다.
부일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동료들은 강원도에 온 김에 안흥에 유명한 찐빵이나 사 먹고 가잔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오다가 다시 둔내 나들목에서 빠져나갔다.
가을 산행은 발걸음을 옮길수록 풍성하다.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많고, 들판에 곡식을 수확하는 농부의 마음처럼 가슴속에 많은 것을 채우고 나자 마음도 넉넉해졌다.
직장 동료들과 안흥에 가서 구수한 찐빵을 먹는데 찐빵에서 강원도의 인심이 모락모락 솟아 올라왔다. 이번 체육행사는 가을의 낭만과 단풍과 강원도의 힘과 맛을 제대로 즐긴 것 같다.
오늘이 가고 내일이면 다시 전쟁과도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강원도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손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