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북섬의 오클랜드 시내 언덕에 자리한 하얏트 호텔에서 하루를 유숙했다. 이튿날 아침 호텔의 창문을 열어젖히자 해변가 항구와 도시의 시내 그리고 공원이 어우러진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단체여행에서 한 번 정해진 룸메이트는 변함이 없다. 매일 밤 다른 짝꿍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삶의 다양한 형태를 만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끼리끼리 호불호를 가린다.
어제저녁에는 일행과 오클랜드 시내를 구경하고 돌아와 호텔에서 맥주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느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자 입맛이 떨어져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제는 저녁을 먹고 일행과 오클랜드 시내의 밤거리를 구경하기 위해 호텔을 벗어나 거리로 나갔다. 지금까지 다른 나라의 밤거리를 구경해 본 적이 없다.
몇 명이서 한 사람당 수십 불씩 갹출해서 조명등이 번쩍이는 술집에 들어가 뉴질랜드의 이색적인 밤 문화를 체험했다.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알려면 도시의 밤거리를 나가 보라는 말이 있다.
오클랜드의 밤 문화를 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작용했고, 오늘 밤이 어쩌면 내 생애 이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작용했다.
일행과 붉은 조명등이 반짝이는 홀에 들어서자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남극의 여인이 이방인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은지 옷을 벗고 똑바로 응시하는 뜨거운 눈과 마주했다.
단돈 1달러로 자신을 보아 달라는 은밀한 눈동자. 유리로 만든 미로 속에 갇혀 물고기처럼 몸부림치는 여인. 희뿌연 담배 연기가 가득한 공간에서 이국의 낯선 맥주를 마시며 떠돌이 부랑아가 되었다.
남극의 옷을 벗은 여인이 조각 같은 자신의 몸매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유혹하는 여인의 은밀한 몸짓. 자신의 아름다운 몸을 보아달라며 낯선 이방인 앞에서 거리낌 없이 옷을 벗었다가 가린다.
희뿌연 담배 연기와 번쩍이는 조명등 아래서 여인은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건넨다. 그러자 테이블 손님들이 술집에서 사용하는 지폐를 팁으로 여인에게 건네준다.
일행은 이곳에서 사용하는 지폐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지갑에서 우리 돈 천 원짜리를 꺼내 주었다. 그러자 지폐를 받아 든 여인이 자기들끼리 모여 수근덕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일행은 웃었다.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 접해 본 낯선 문화지만 술도 마실 수 없고, 노래도 할 수 없어 그곳을 빠져나왔다. 일행과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술이라도 한잔 마실 수 있는 곳을 찾아 도시를 배회했지만, 밤거리를 휘황찬란하게 비치는 네온사인도, 술에 취해 거리를 비틀거리는 사람도 만날 수가 없었다.
그저 눈에 띄는 것이라곤 낯선 이방인 몇 명이 슈퍼나 골목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전부였다. 한국이라면 선술집에 앉아 일행과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텐데.
오클랜드 시내의 초라한 야경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와 한국산 ‘소주’를 마시며 일행과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국에서 처음 접한 오클랜드 밤 문화는 그리 낭만적이지도 요란하지도 않았다.
가이드가 말했듯이 뉴질랜드는 일차 산업을 부흥시킨 개척정신만 엿볼 수 있고, 우리나라처럼 소비와 향락이 뒤섞인 밤 문화는 그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오클랜드 시내를 돌아보는 일정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비가 올 것 같다. ‘아우테어로아’라는 말처럼 길고 긴 흰 구름이 뉴질랜드의 하늘에 기다랗게 걸쳐 있다.
어젯밤에 늦게 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일정에 동석하니 몸이 쫓기는 신세다. 아침에 일행들이 내가 오는 것을 기다려주었다.
아침에 서두른다고 서둘렀으나 몸이 둔해지자 호텔 측에서 호출하는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오클랜드에서 허둥지둥 맞이한 아침이 하루를 바쁘게만 몰아간다.
일행과 오클랜드에서 부유층이 산다는 해안가 건축물을 돌아보는 중이다. 가이드가 건축과 관련한 사람들이 여행 온 것을 고려해서 오클랜드에서 나름 빼어난 건축물이 있다는 해안가로 안내했다.
버스에 앉아 해안가를 끼고 아담하게 형성된 마을을 돌아보는데 우리나라 남해안의 풍경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같은 나무라도 북반구에서 마주한 나무의 겉껍질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미루나무도 우리나라에서 보던 껍질과 다르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나무껍질만 봐도 대충 무슨 나무인지 알겠는데 이곳은 나무껍질만 보고 무슨 나무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는 펄럭이는 이파리를 바라봐야 알 수 있다. 이곳도 바다나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집이 비싸다고 한다. 좋은 집에 대한 선호는 세계 어디를 가나 비슷한 모양이다.
일행과 버스를 타고 해안가를 돌다가 버스에서 내려 분화구처럼 생긴 에덴동산에 올라갔다. 사람이 살아가는 기반은 비슷한 것 같다. 단지 내 눈에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만났을 때 생경한 모습으로 다가올 뿐이다.
뉴질랜드에 온 지 수일이 지났지만, 머릿속에 기억될만한 건물이나 유물이나 유적은 만나지를 못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드넓은 초원과 초원 위를 유유자적하는 양과 사슴과 젖소의 모습뿐이다.
초원의 모습이 머릿속에 너무 강렬하게 박혀서 그런지 해안가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아도, 아름다운 해안가를 거닐어도, 그리고 저 멀리 뱃고동을 울리며 지나가는 연락선을 바라봐도 머릿속에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환영처럼 다가온다.
지금은 북섬의 오클랜드 시내 관광을 마치고 뉴질랜드 북섬에서 남섬의 퀸스타운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는 중이다. 남섬으로 가는 비행기 탑승 시간에 여유가 있어 가이드가 일행을 데리고 오클랜드 해안가와 에덴동산을 구경시켜 주었다고 한다.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자 가이드는 이별을 아쉬워하며 일행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다음에 다시 오클랜드에 오면 저를 꼭 불러달라는 말을 남기면서 헤어졌다.
가이드와 헤어진 뒤 일행은 비행기 탑승을 위해 게이트로 이동했다. 이번에 남섬으로 타고 가는 비행기 좌석은 16A다. 북섬에서 남섬의 퀸스타운까지 비행기로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비행기 탑승을 위해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는데 승무원이 승객 중에 누군가를 불러 탑승시킨다. 누군가 하고 바라보니 노약자와 임산부와 장애인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먼저 비행기에 태우고 다음은 아이와 함께 있는 여성을 탑승시킨다.
그리고 나머지 일반 승객은 마지막에 탑승시켰다. 외국에 나와 비행기를 타면서 바라본 선진국의 모습이다. 사회적 약자인 노약자와 장애인과 어린이와 여성을 철저하게 배려하는 모습이 신선하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날아오는 비행기에서 하룻밤을 자고, 북섬의 로토루아에서 하루 그리고 오클랜드에서 하룻밤을 잤다.
인생은 낯선 곳에서 보내는 하룻밤의 신세라더니 내 삶도 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인생을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북반구에서 구름을 타고 남반구로 내려와 정처 없이 초원을 떠돌고 있다.
오늘로써 해외여행 기간의 3분의 1이 지나갔다. 한국을 떠나올 때는 걱정을 했는데 이곳에 와서 수일을 보내고 나자 한국이나 뉴질랜드나 삶의 구조가 비슷하게 다가온다.
이곳은 여행을 다니면서 현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 현지 사람을 만나야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가는지 삶의 구조를 알 수가 있는데 도통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 지를 않는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건물에 걸린 간판과 간간이 눈에 띄는 비행기뿐이다. 지난밤에 술을 마셨는데도 공기가 맑아 그런지 숙취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북섬에서 남섬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무언가 이색적인 것이 눈에 보일까 해서 비행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여행의 목적이 떠남에 있다는데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여행은 어딘가에 정착해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유목민과 같은 여정이다.
비행기를 타고 남섬을 향해 날아가자 마음은 벌써 북섬의 기억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나기 위해 갈 길을 재촉한다. 이제 뉴질랜드 북섬에서 보낸 추억은 가슴에 묻어두고 남섬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