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여행

by 이상역

"저 산마루 깊은 밤 산새들도 잠들고 우뚝 선 고목이 달빛 아래 외롭네"라는 '고목나무' 노래가 생각난다.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숙연해지고 깊은 산속에 들어간 느낌이 든다.


올해는 여름휴가 겸 여행으로 장성의 축령산 편백나무를 보러 2박 3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장성은 축령산 편백나무가 유명하다. 장성에 편백나무를 심게 된 속사정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펜션 주인의 말에 의하면 개인이 편백나무를 심고 관리하다 운영이 어려워지자 국가가 사들여 장성군에 위탁해 관리하단다.


장성에 휴가차 편백나무를 보러 갔지만 그곳에서 만난 것은 높지 않은 산과 여름 녹색의 푸르름이 만든 경치 외에 다른 것은 볼 것이 없었다. 장성에 도착한 첫날은 펜션 옆에 난 길을 따라 편백나무를 구경했다.


여름에 휴가는 시원함을 찾아 물가로 가야 하는데 나는 반대로 물가가 아닌 산을 찾아갔다. 장성에 간 첫날은 펜션을 찾아가는 일정과 펜션 옆에 자라는 편백나무만 구경하고 이튿날은 구례로 아내 친구를 만나러 갔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장성에 가 본 것도 처음이고 아내의 친구가 사는 구례를 가보는 것도 처음이다. 구례는 지리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지리산은 전라도에서 어머니와 같은 산이자 사람들이 기대어 사는 보금자리다.


지리산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 친구를 찾아가는 길은 마치 하늘 아래 첫 동네를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시골에서 자라 왼만한 산비탈은 두려워하지 않는데 아내 친구를 찾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장성에서 고창담양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곡성 시내를 지나 17번 국도를 타고 내려갔다. 남도 육 백리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구례를 향해 가는 길에는 국도와 지방도가 촘촘하게 이어졌다.


곡성 시내를 지나 섬진강을 따라 이어진 구례에 들어서자 마치 21세기에서 19세기로 접어든 기분이었다. 옛 시절 섬진강 철도 길 주변의 오막살이집과 상점들이 개발을 거부하고 그 모습 그대로 버티고 있어서다.


그런 마을과 풍경을 뒤로하고 섬진강 다리를 건너가 지방도를 따라 내려가자 아내의 친구가 사는 다무락마을이 나왔다. 그 마을에서 지리산 자락으로 올라가는 길은 험하고 비좁아서 맞은편에서 차가 나오기라도 하면 피할 곳이 없는 길이었다.


차의 내비에 의존해서 힘들게 찾아갔는데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아내 친구가 기도를 마치고 오기를 기다렸다. 지리산 자락의 언덕에 서서 계곡을 바라보니 언덕 위로는 지리산의 준령이 눈에 들어오고 언덕 아래로는 섬진강과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의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


유럽에서 기독교인들이 종교박해를 피해 험한 산 정상에 수도원을 짓고 바깥세상과 단절하며 지내던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아내 친구도 유럽의 수도원만은 못하지만 그런 자리에 터를 잡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내의 친구가 종교박해를 피해 지리산 계곡으로 숨어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아내의 친구를 만났다. 나는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아내의 친구라서 반가웠다.


아내의 친구 집에 들러 함께 사시는 친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친구의 안내로 점심을 먹으로 차를 타고 나왔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서 바라본 섬진강은 바닥을 드러낸 채 남쪽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구례는 산수유꽃과 벚꽃이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에 와서 보니 산수유나 벚꽃보다 단감나무가 더 유명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가을 청송에 가서 만난 것은 청송은 사과가 유명해서 그런지 노는 땅만 있으면 사과나무를 심어 과수원을 조성해 놓았다. 구례도 청송과 같이 노는 땅만 보이면 단감나무를 심어 과수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구례가 단감으로 유명한 줄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구례가 단감으로 유명해진 것은 섬진강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로 인해 단감나무와 단감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셋이서 구례의 자연드림 파크를 찾아가 맛있는 점심을 먹고 천은사로 차를 마시러 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찻집이 공사 중이라 차는 마시지 못하고 노송이 안내하는 숲길과 산사만 구경했다.


천은사의 소나무 숲길을 산책하는데 무더운 여름이지만 노송이 만든 그늘과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의 선선한 기운이 땀을 말려주었다. 아내가 모처럼 친구를 만난 것을 기념해 주기 위해 몇 컷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사람은 고교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와는 시간차와 상관없이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아내와 친구는 학창 시절과 친구들 이야기 그리고 살아온 가족사에 대한 사연을 끝없이 주고받았다.


천은사 소나무 숲길과 산사 구경을 마치고 구례 오일장에 가서 재래시장도 한 바퀴 둘러보고 섬진강 변에 자리한 찻집으로 이동했다. 국도변 찻집은 휴게소를 개조해서 만들었는데 구례에서 유명하단다.


아내와 친구가 커피를 가져오는 동안 의자에 앉아 섬진강을 바라보는데 여름 햇살을 머금은 강물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찻집에는 명성 그대로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쉴 새 없이 들어오고 나갔다.


찻집에 앉아 아내와 친구는 다시 학창 시절과 친구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찻집에서 오랫동안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내의 친구 집을 향해 이동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아내 친구 집에 도착해서 친구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차를 운전해서 나왔다. 오전에 찾아왔던 길과 반대로 구례를 지나 곡성 시내를 거쳐 장성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아내와 장성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펜션으로 돌아왔다.


마지막날 장성에 휴가 겸 여행 삼아 편백나무를 보러 왔는데 편백나무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축령산에 올라갔다. 축령산은 입구부터 정상까지 온통 편백나무를 심어 놓았다. 산길을 따라 산 정상에 이르자 약 백여 년 된 편백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모습이 황홀하고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산에 편백나무만 빽빽이 들어찬 숲을 바라보는 것도 처음이다. 산 정상에는 편백나무가 우거진 곳을 따라 테크 길을 조성해 놓아 나무를 제대로 바라보며 구경할 수 있었다.


편백나무에서 피톤치드가 얼마가 나오는지 몰라도 데크 길을 걸어가자 기분이 맑고 상쾌해졌다. 장성에 편백나무를 보러 잘 왔고 이렇게 고목의 편백나무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축령산 정상에서 근 삼십 분 정도 데크 길을 걸었더니 가슴에 피톤치드가 가득 고인 듯했다. 경치도 좋고 편백나무 숲을 거니는 것이 꽤 운치 있게 느껴졌다. 데크 길을 걸어가면서 나무가 빽빽한 곳이 나올 때마다 아내와 나는 연신 사진을 찍었다.


축령산 정상에서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취하도록 마시고 펜션으로 내려왔다. 펜션에서 아침을 챙겨 먹고 짐을 싸서 숙소를 나섰다. 장성에 도착했을 때는 볼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접어야겠다.


장성은 편백나무 숲이면 다른 모든 것을 덮고도 남을 만큼 마음에 포만감이 가득 찼다. 이다음에 시간이 되면 다시 축령산 정상에 올라가 한나절을 편백나무 숲 그늘에 앉아 차와 공기를 마셔가며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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