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촌 형을 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대전현충원은 대전 유성에서 공주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대전에 살던 시절 현충원 간판만 읽고 지나가던 곳이다.
사촌 형은 군 복무 시절 월남에 파병을 갔다 왔다. 초등 시절 형이 월남에서 전우들과 야자나무 밑에서 소총을 들고 찍은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월남에서 귀국한 형에게 고엽제 후유증은 몸에 천형처럼 나타났다. 고엽제 후유증은 한 번에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증세가 나타난다.
고엽제로 고생하다 트럭과 부딪치는 교통사고로 몸을 다쳐 이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며 치료를 받다 서울 백병원에서 생명의 끈을 놓고 말았다.
사촌 형이 돌아가시기 전 병원의 의사가 가족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단다. 그 말을 듣고 조카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나는 조카에게 마음을 단단히 하고 돌아가시면 진천이나 청주에서 장례를 치르도록 말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형이 돌아가시자 조카는 형의 운구를 모시고 충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내려갔다.
요즈음 코로나로 조문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시절이다. 사촌 형 부고를 듣고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를 모시고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갔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조문 온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촌 형수님도 몇 년간 병원에서 형 시중을 들어 몸이 좋지 않았다. 조문을 마치고 조카와 이야기를 나누다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발인하는 새벽 형을 운구하러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겨울이고 눈이 많이 내려 발인을 삼십 분 정도 앞당겼다. 형의 운구를 버스에 모시고 청주의 목련공원 화장장으로 이동했다.
장례식장에서 화장장까지는 버스로 이십 분이 채 소요되지 않았다. 전날 눈이 많이 내렸지만 도로가 얼지 않아 예정 보다 일찍 화장장에 도착했다.
화장장에 도착해서 사무실에 들어서기 전 연락처를 기재하고 체온을 재고 들어갔다. 화장장에서 상주와 집안 형들과 이십 분 정도 기다리자 상주를 호출하는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주와 장례 버스가 있는 곳에 가서 형의 시신을 화장장 안으로 운구해서 직원에게 인계했다. 화장장 직원은 참석한 친척들에게 묵념을 시키고는 곧바로 화장장 안으로 운구를 밀고 들어갔다.
상주와 대기실로 돌아와 기다리는데 7시 반이 되자 화장을 시작한다고 모니터에 떴다. 집안 형들과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자 화장도 거의 끝나갔다.
화장은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상주가 화장한 유골을 받아 들고 유골을 빻아 주는 곳에 접수하고 십 분 정도 지나자 유골 빻는 작업도 끝이 났다.
상주가 분쇄가 끝난 유골을 들고 장례 버스에 오르자 버스는 화장장에서 곧바로 대전현충원을 향해 출발했다. 청주 목련공원 화장장에서 대전현충원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장례 버스가 대전현충원 입구에 들어서자 좌측에는 입석에 새겨진 대전현충이 보이고, 우측에는 세 필의 천마가 힘찬 기세로 조국을 영원히 약진, 번영으로 이끈다는 ‘천마웅비상’의 힘찬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버스는 대전현충원에 들어서서 현충관까지 직진해 들어갔다. 겨울이라서 현충원은 썰렁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버스가 현충관에 도착하고 상주가 버스에서 내려 형님의 안장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자 현충원 측에서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가 장례 버스를 안장하는 곳까지 안내했다.
사촌 형이 안장될 곳은 제7 구역 710번 70749호다. 형을 안장시킬 곳은 이미 현충원 직원이 나와서 절차대로 준비하고 있었다.
장례 버스에서 내려 상주와 함께 70749호 표지판 앞에 도착하자 현충원 직원은 항아리에 담긴 형의 유골을 안장시키고 상주에게 흙을 한 삽 뿌리도록 했다.
현충원 직원이 안장하는 작업은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형의 안장을 마치고 장례 지도사가 상주와 친척들에게 묵념을 시켰다.
대전현충원에 형을 안장하고 나자 오전 11시가 되었다. 겨울이라 표지석도 돌이 아닌 나무로 세워 놓고 묘도 가묘로 우선 해놓고, 3개월 후에 봄이 되면 정식으로 돌 표지석과 잔디를 입혀 단장해 놓을 것이라고 직원이 안내했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현충원 안장도 코로나로 인해 영현을 모시는 절차 등을 생략하고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조국을 위해 돌아가신 분의 성대한 안장식을 기대했지만 모든 절차가 생략되었다.
대전현충원에 형님을 안장하고 돌아오다 현충원 입구에 자리한 식당에서 상주와 친척들과 점심을 먹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서울로 올라갈 친척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버스를 타고 청주 장례식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살던 시절 마을 어른이 돌아가면 산소를 조성하는 작업을 저녁까지 했다. 하지만 시신을 화장해서 현충원에 안장하는 작업은 반나절만에 끝이 났다.
현충원에 돌아가신 분을 안장하는 작업은 몸도 피곤하지 않고 마치 어디를 다녀온 기분이 들 정도다. 현충원에서 사전에 준비해서 절차대로 안장 작업을 진행해서 그런 것 같다.
사촌 형을 대전현충원에 안장하고 버스를 타고 청주로 돌아오는 내내 국가를 위해 월남에 참전한 용사를 그래도 대우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현충원은 국가유공자가 안장을 원한다고 안장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대전현충원에 안장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도 많다. 사촌 형이 대전현충원에 무사히 안장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사촌 형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사람은 죽으면 작은 항아리에 잿더미로 담긴다는 허무함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즐겁게 생을 누리다 한 줌의 재로 돌아가자는 생각도 들었다.
권력도 온갖 것을 부리는 재산도 죽으면 모두 한바탕 꿈이다. 권력과 재산보다 내가 품을 수 있는 가족과 사이좋게 지내다가 말없이 돌아가는 삶이면 족할 것 같다.
사촌 형은 공교롭게 연말(2020.12.31)에 돌아가셨다. 겨울이라 춥기도 하지만 그래도 연휴 기간에 장례를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생전에 고향에서 마주쳤던 형의 모습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병원에서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완치되어 웃으면서 고향에 돌아오기를 바랐는데 이제 영원히 고향에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
부디 대전현충원에서 이승의 고통과 아픔을 내려놓고 평안하게 영면하기를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