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요소는 의식주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다. 삶을 영유하려면 먹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요즈음 삶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웰빙 바람이 불고 있다. 삶의 기본적 욕구인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몸에 이로운 음식을 찾아 제대로 한 끼를 먹어보자는 바람이다.
먹는 문제에서 어느 정도 배가 부르면 다음 단계는 어떻게 먹어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로 관심이 옮겨간다. 우리 가족도 주말이면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은 소망에 보리밥집을 찾아다닌다.
웰빙 바람에는 지난 시절 즐겨 먹던 복고풍의 음식이 들어있다. 과거에는 어쩔 수 없이 먹던 음식이 지금은 몸에 좋다는 인식에 따라 옛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파는 수제 자장과 짬뽕집이 생겨나고, 순두부를 가공해서 파는 식당이 들어서고, 보리밥이나 손칼국수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소득 수준 향상으로 육류보다 채소로 된 음식을 더 찾고 건강을 생각해서 과거에 먹었던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과거를 그리는 사람들의 향수와 돈을 벌어보겠다는 상술이 만나면서 복고풍 음식이 인기다.
우리 가족도 복고풍 음식을 먹어보고자 주말이면 모락산 자락에 자리한 허름한 보리밥집을 찾아간다. 지붕에 기와를 얹은 집은 옛날에 살았던 초가의 겉모습 형태로 내부만 식당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식당에 가면 옛 시절을 떠올리며 빈대떡에 동동주 한잔 곁들이며 보리밥을 즐겨 먹는다. 자주 가는 그 식당은 집과 대문도 허름하고 문과 방도 허름하다. 심지어 아저씨도 시골 촌로처럼 추레한 모습이다.
보리밥은 허름해야 제맛이 난다. 반듯한 집에서 먹는 보리밥은 맛이 나지 않고 왠지 쌀밥을 먹는 기분이 든다. 보리밥은 그 식당처럼 허름한 곳을 찾아가서 먹어야 맛있다.
주변에 딱히 맛있는 음식을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없어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식당을 단골처럼 찾아간다. 최근에 나와 같이 보리밥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지난 시절 보리밭에서 뛰어놀던 향수가 그리운 것인지 아니면 보리가 건강에 좋아서 찾아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보리밥집도 많아지고 보리밥을 찾아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복고풍 음식에는 과거의 가난에서 벗어나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다는 의미와 지난날의 가난에 대한 애정과 아련함이 담겨 있다. 보리밥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보리밥의 진정한 맛을 모른다.
과거에 보리밥을 먹어본 사람만이 옛 시절 향수가 그리워 찾아간다. 이제는 가난에서 벗어나 생활의 여유가 생기다 보니 옛 시절이 그립고 또 그 시절을 되돌아보고 싶은 향수 때문에 보리밥집을 찾아가는 것 같다.
중학교 때 점심시간에 선생님이 도시락 혼식을 검사했던 것이 생각난다. 쌀밥에 보리나 팥, 콩, 조 등의 잡곡을 섞어 싸 왔는가를 검사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혼식 검사하는 날을 정해 담임 선생님이 도시락을 검사했다. 선생님이 검사할 수 없는 날은 반장이 선생님을 대신해서 검사했다.
친구들은 혼식 검사하는 날을 깜빡 잊고 있다가 도시락을 열어보고 쌀밥만 싸 온 날은 쉬는 시간에 친구의 보리밥이나 잡곡밥을 덜어 섞곤 했다. 혼식 검사에서 적발되면 선생님에게 주의를 받았다.
고향에 살던 시절 어머니는 쌀에 보리밥을 섞어 밥을 짓기 위해 일주일 먹을 분량의 보리밥을 해놓으셨다. 아궁이에 걸린 무쇠솥에 보리를 넣어 펄펄 끓인 뒤 커다란 대소쿠리에 건져내어 망사로 덮어두셨다.
그리고 쌀밥을 짓다가 보리밥을 솥에 넣어 함께 끓이셨다. 당시 호기심에 꽁보리밥은 어떤 맛이 날까 해서 보리밥을 한 주먹 움켜쥐고 먹어보았다. 꽁보리밥은 꼬들꼬들하고 밋밋해서 아무 맛도 나지를 않았다.
보리는 구수한 맛과 싸다는 인상을 풍긴다. 또 보리는 쌀처럼 야무지지 않고 어딘가 허름하니 제멋대로 생긴 듯하다. 보리의 밋밋하고 은은한 맛처럼 중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로 시작하는 ‘보리밭’ 노래가 생각난다.
그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아련한 환상과 보리밭에서 전해오는 연초록의 보리 내음이 코에 아른거렸다.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음악실 창문 너머로 봄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들녘을 바라보며 부르던 ‘보리밭’ 노래가 멋지고 운치 있게 보였다. 선생님과 노래를 부르며 ‘음악은 참 좋은 것이구나.’ 하는 것도 배웠다. 음악 시간에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질투와 부러움도 느꼈다.
보리밥의 구수한 냄새처럼 구수한 마음과 인정을 풍기는 인심의 바람이라도 세상에 불었으면 좋겠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복고풍 바람에 보리밥을 통해 지난 시절의 향수를 떠올려보았다.
우리 사회에도 과거의 향수를 살리면서 애지중지하는 건강한 바람이라도 생겨나기를 소망한다. 따듯한 봄날이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들녘의 보리밭이 사라져 가듯 푸근한 인정을 느끼는 마음의 보리밭도 사라져 간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사람의 마음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보리밥을 찾아가는 사람의 마음처럼 구수한 인심의 바람이라도 사회 곳곳에 피어나기를 소망하는 것은 나만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