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연세가 구순을 바라본다. 시골에는 어머니와 비슷한 또래의 아주머니가 몇 분 사신다. 이전에는 여든 살만 살아도 만수무강을 누린다고 부러워했다. 이제는 한 마을에 여든 살 이상을 사는 분이 흔해졌다.
주말에 서울로 올라가지 못할 때는 시골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보낸다. 언젠가 주말을 시골에서 보내던 일요일 아침에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시골에서 살다 안성으로 이사 가신 남산 아주머니다.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드리자 어머니와 통화를 원해서 바꾸어드렸다. 어머니는 아주머니와 한참을 통화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셨다.
어머니와 아침 식사를 하면서 “아주머니한테 전화가 자주 오느냐!”라고 묻자, 어머니는 “가끔 온다면서 지금 요양원에 계신다.”라고 하신다.
내가 “아주머니 아들은 없어요?”라고 묻자, 어머니는 “아들은 있는데 아주머니가 건망증이 좀 있어 요양원에 가 계신다.”라고 하신다.
어머니에게 아주머니가 요양원에 가시게 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주머니 건망증은 걱정할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아들이 요양원으로 모신 것 같다. 건강 백세 시대를 맞아 장수를 해서 좋다지만 가정마다 새로운 갈등과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시골에 살던 시절 환갑잔치는 마을의 큰 행사였다. 환갑도 결혼식처럼 마을 사람이 모두 모여 마당에 천막을 치고 돼지를 잡고 과방을 차리고 손님을 초청해서 잔치를 벌였다.
지금은 마을에서 환갑잔치를 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정도다. 건강 백세 시대는 우연히 다가온 것이 아니라 과학과 의료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의 결과다.
선진국이 백 년에 걸쳐 이룬 업적을 우리나라는 삼사십 년 만에 달성했다. 이제는 장수 시대와 함께 노령화를 걱정하는 것이 시대적 화두로 등장했다.
어머니가 살고 계신 시골도 어머니와 연령대가 비슷한 분이 예닐곱이다. 한 마을에 여든 살 이상인 분이 예닐곱이면 군 소재지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 읍내에는 결혼식장은 다섯 개에 장례식장은 하나였다. 지금은 결혼식장은 하나고 장례식장은 다섯 개다. 고령화로 장수 시대를 맞았지만, 농촌에는 젊은 사람은 줄어들고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결혼식장과 장례식장 숫자에 변화를 가져왔다.
건강 백세 시대를 맞아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노후를 대비해서 자신이 먹고 살아갈 것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다. 따라서 노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자식들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머니와 같은 세대는 우리 세대처럼 노후를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직장이라도 다니며 연금이나 보험에 가입해서 노후를 준비했지만 어머니 세대는 농사를 짓고 자식들 뒷바라지만 신경 쓰느냐 노후 준비를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국민연금도 오십 세부터 가입해서 연금수령액이 많지가 않다. 어머니 세대는 자식들 세대의 도움이 없으면 노후를 보내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남산 아주머니도 자금을 좀 갖고 있다가 아들이 아파트를 산다고 해서 넘겨주는 바람에 아들에 대한 삶의 의존도를 높이게 되었다. 결국 아주머니는 본인을 위한 노후 자금이 없다 보니 입장이 뒤바뀌었다.
아주머니의 요양원 생활에 필요한 돈은 아들이 대줄 것이다. 아주머니는 아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은데 수중에 돈이 없어 아들의 눈치를 보는 신세로 전락했다.
남산 아주머니의 요양원 생활 소식을 전해 들으며 어머니는 노후를 잘 살고 계신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어머니도 시골에서 홀로 살아가신다. 시골에서 외롭게 지내시지만, 자식들 눈치는 보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남산 아주머니처럼 요양원에 가야 할 만큼 몸도 불편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건강 백세 시대를 맞아 나이가 들어갈수록 수중에 노후 자금은 더욱 필요해졌다.
자신의 수중에 노후를 보낼 자금을 갖고 있어야 자식들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시대다. 돈으로 자식의 효도를 사는 것은 아니지만 수중에 자금이나마 갖고 있어야 자식에게 휘둘림을 당하지 않는다.
남산 아주머니도 수중에 갖고 있던 돈을 아들에게 넘기지 않았다면 요양원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들네 집에서 사는 것이 눈치가 보였다면 따로 전세나 월세를 구해서 아들 집을 나와 홀로 생활하는 방편이라도 찾았을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몸의 이곳저곳이 고장 나게 마련이다. 몸이 아픈 것보다 참기 어려운 것은 고독과 쓸쓸함이다. 요양원도 집처럼 따뜻하게 지낼 수는 있겠지만, 가족과 같이 지내는 집보다는 못할 것이다.
집에서 이웃과 함께 지내면 건강에도 좋고 관계성도 좋아진다. 사람은 서로 어울리는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사회적 관계를 떠나 고독하고 외로운 생활이 유지될수록 사람의 정신은 피폐해지고 몸도 건강도 나빠진다.
일요일 아침에 남산 아주머니의 전화로 인해 건강 백세 시대를 맞아 노후를 어떻게 준비하고 보낼 것인가를 되돌아본 소중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