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핸드폰에 어머니한테 부재중 전화가 떠 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고향의 이웃집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어머니와 육십 년 이상을 이웃으로 지내며 살아온 친척이고 나 또한 고향에서 함께한 추억이 많다.
어린 시절 양달 마을에 살던 때다. 마당에서 혼자 자치기 놀이를 하다 작은 자가 담장을 넘어갔다. 작은 자를 눈으로 찾기 위해 담장에 몸을 기대고 넘겨다보다 담장이 무너지면서 함께 떨어졌다.
그때 옆집에 살던 아주머니가 제일 먼저 달려와 일으켜 안고 “아가! 아프지 않니”, “어디 다친 데는 없니?” 하면서 코피를 닦아주며 안아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컴컴한 밤에 홀로 인가가 없는 상엿집이 있는 비석거리를 올라갈 때다. 컴컴한 밤길을 올라가는데 반대쪽에서 하얀 물체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 물체는 내가 몸의 방향을 이리저리 틀 때마다 같이 따라 움직였다. 너무 무섭고 겁이 나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올라가야 할지 주춤거리며 천천히 조심조심 올라갔다.
그러다 하얀 물체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이르러서야 아주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머니에게 왜 하필 하얀 옷을 입고 나오셔서 사람을 놀라게 했느냐며 내려오실 때 헛기침이라도 하면 무서워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길에서 아주머니와 웃으며 이야기하는데 아주머니도 자기도 무서워서 혼났다고 한다. 아주머니도 나처럼 올라오는 검은 물체를 피하려고 몸을 이리저리 틀 때마다 따라와서 귀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내려오기를 망설였단다.
아주머니는 아들만 다섯이다. 아주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신 것은 아니고 허리가 너무 굽어 전동차를 타고 다니다가 전동차에서 떨어져 가슴에 멍이 들어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여든다섯이면 좀 더 사셔도 될 나이인데 병원에 모시고 가서 치료를 받으셨으면 더 사셨을지도 모른다며 어머니는 안타까운 듯이 말씀하셨다.
주말에 고향에 내려가서 아주머니께 조문하고 나자 아주머니와 함께한 추억이 송골송골 떠올랐다.
아주머니는 양달 마을에서도 이웃해서 살다가 어머니가 음달 마을로 내려오자 덩달아 내려와서 우리 집 건넛방에서 잠시 살다가 옆집을 사서 이웃해서 사셨다.
나와는 육촌 형수님이지만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해서 아주머니를 어머니처럼 생각하며 지냈다. 가끔 마실 가서 아주머니에게 감자나 옥수수가 먹고 싶다면 손수 쪄주기도 하셨다.
아주머니는 어머니와 고향에서 담배 농사를 근 삼십여 년을 품앗이했다.
담배는 씨를 파종해서 모종 이식과 밭에 내다 심고 담뱃잎을 따서 건조실에서 말리고 말린 담뱃잎을 뺄 때마다 단계적으로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아주머니와 다른 집과 세 집이 어울려 담뱃잎을 따서 엮어 매고 빼는 작업을 여름이면 되풀이했다.
고향에서 담뱃잎을 따서 엮고 매는 과정에서 겪었던 많은 추억이 떠오른다.
한여름에 무더운 태양 볕에서 쪼그리고 앉아 비지땀을 흘리며 담뱃잎을 따서 지게에 얹어 비탈진 밭을 내려와 경운기에 실었다. 그리고 경운기를 운전해서 골짜기를 내려오던 고단한 몸짓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아주머니와 어머니는 담뱃잎을 따는 도중에 일꾼들 새참을 해주려고 집에 내려가서 비지땀을 흘려가며 준비한 새참을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산자락을 올라오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주머니는 어머니와 이웃이란 관계를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 산소도 아버지가 누워계신 산소 바로 위에 자리를 잡았다.
삶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독하고 외로워만 간다. 고향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척이나 어른들이 한 분 두 분 저승이란 광야로 떠나갈 때마다 허무함이 느껴진다. 그 허무함에 쓸쓸함이 더해지면 마음은 더욱 씁쓸하다.
아주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읍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면회 한 번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죄송스럽다. 우리가 이승에서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세상을 두루두루 살펴 가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아주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후회하는 번민만이 가득해진다.
이제 고향에는 어머니 외에는 반갑게 맞이해 줄 사람이 없다. 고향에 갈 때마다 “도련님!, 도련님!” 하시면서 반겨주던 그리운 목소리도 이제 먼 곳으로 사라졌다.
오늘도 타향에서 외롭게 등을 기대고 살아가지만, 마음은 언제나 고향의 골목길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골목길에서 이웃집 아주머니와 만났던 추억과 그리움은 꿈속에서나 만날 수밖에 없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생전에 허리가 좋지 않아 고생하셨는데 저승에서는 부디 허리를 활짝 펴시고 건강하게 웃으며 평안하게 지내시기 바란다.
그리고 아버지 산소에 가끔 놀러 오셔서 고향에서 함께한 지난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하게 영면에 드시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