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by 이상역

추석 한가위를 맞아 고향에 가기 위해 연어처럼 회귀하는 여정에 나선다. 귀향에 대한 기대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퇴색되어 가지만, 의지는 깊어간다. 아마도 본래적 근원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삶의 현장을 뒤로하고 귀향에 나서는 것은 회귀하려는 본능적 행위다. 사전에서 귀향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이라 정의했다.


고향이란 사람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고향에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성과 아버지의 성근 냄새가 배태되어 있다. 귀향은 어머니의 품성과 아버지의 성근 냄새를 그리워하는 근원의 회귀다.


귀향은 자신이 성장한 자리로 돌아가는 무의식적 행위다. 동물이 귀소 하는 것도 본능적인 행위다. 동물은 귀소를 위해 죽음도 불사한다. 사람도 귀향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사람은 왜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귀향하려는 것일까? 본능은 행동으로 말할 뿐 본능 앞에 이성이 설 자리는 없다. 고속도로에서 차들과 오락가락 다투다 보니 어느새 고향이다.


고향을 찾아가면 많은 것이 기다린다. 여름옷을 벗은 감나무는 주황색 감을 매달고 가을의 사라짐을 노래하고, 자식을 잃고 빈 둥지를 껴안은 밤송이는 가을로 가는 성숙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들녘에서 고개를 숙이고 묵상의 기도를 올리는 벼 이삭은 바람에 이리저리 군무를 추며 가을의 풍성함을 노래한다. 고향에 도착해서 아이들 손을 잡고 가까운 산에 올라 영근 알밤을 주었다.


알밤을 주워 들고 고향 집에 내려와 방구들을 깔고 앉아 아이들과 송편을 빚었다. 송편을 서툴게 빚으면서 아이들에게 내가 태어난 시절의 노래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살다 간 옛 시절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귀향에는 조상의 사연이 자주 입가에 오른다. 고향에서 조상만 생각하면 입이 무거워진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조상에 대하여 전해주거나 들려줄 이야기도 별로 없다.


세대와 세대가 만나 전해주는 이야기는 덧없는 것뿐이다. 내가 자식에게 전하는 말에는 인생의 무상함과 쓸쓸함이 담겨 있고 이를 듣는 아이들의 눈에는 다른 세상을 그리워하는 엇갈린 시선이 들어있다.


아이들과 송편을 빚고 고향 집을 나서자 마을의 여기저기서 하얀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오랜만에 만나는 정겨운 모습이자 풍경이다.


집집마다 솟아오르는 연기는 나의 기억을 과거라는 블랙홀로 빠르게 되돌려놓는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귀향에 대한 실감과 연기를 따라 펼쳐지는 쪽빛 하늘이 시야로 가득 들어찬다.


이튿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를 만나러 산으로 올라갔다.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에 장단을 맞추어 터벅터벅 오르다 보니 아버지가 누워계신 산소가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자 할아버지 산소가 바라보인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등지고 간 고향에 누워만 계실 뿐 말씀이 없다. 고향의 산길은 높이 올라갈수록 윗대 산소가 차례차례로 등장한다.


고향의 산자락은 조상의 뿌리를 찾아가는 근원의 여행이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산자락을 따라 계곡으로 올라갈수록 아버지의 아버지 숫자는 높아만 간다.


귀향은 미지의 얼굴과 대면하러 가는 과거로의 여행이다. 아버지가 누워계신 산소 좌우에는 생전에 이웃으로 지낸 사람들이 함께 산자락을 지킨다.


마을에서 마주해야 할 정겨운 얼굴을 영혼이 떠도는 쓸쓸한 산에서나 만날 수 있다. 어머니가 살고 계신 마을은 쓸쓸하고 초라한데 산자락은 산소와 철새와 나무로 번성하다.


산자락에는 산소가 하나둘 늘어나고, 산에서 재잘거리는 새소리도 시절마다 들려온다. 산 사람이 깃들어 사는 마을에는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고독과 외로움이 둥지를 틀어간다.


귀향을 위해 바람과 시간을 본능으로 갈랐지만 내가 태어난 산천을 돌아보면 ‘나’라는 정체성에 의문만 더해간다. 그리고 과거의 근원으로 떠나는 여행에 덧없는 노래만 읊게 한다.


내가 만날 수 없는 조상을 생각하면서 조상들은 어떤 연유로 이곳에 와서 머무르게 되었을까? 조상들은 어떠한 삶을 살다 한평생을 마쳤을까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고향은 나의 모천이지만 그 모천의 깊이는 알면 알수록 물음표만 늘어나고, 알고자 하면 할수록 삶의 허망함만 깊어진다. 고향 산천을 이리저리 둘러보니 세월의 덧없는 바람만 불어온다.


깊은 산속에는 고라니와 노루가 뛰어놀고, 인적이 사라진 마을에는 바람과 새들만이 시절을 노래하며 터전을 지킨다. 나이가 하나둘 더해감에 귀향하는 마음의 부담은 커지고, 그토록 의지해왔던 고향이 스러지는 애잔함에 마음의 허전함은 높아만 간다.


언젠가는 영원히 돌아가야 할 고향. 고향은 가고 싶은 자리, 보고 싶은 자리, 머무르고 싶은 자리, 돌아가고 싶은 자리이자 그리운 곳이다.


그런 고향이 타관을 떠도는 내게 귀향에 대한 변죽만 울린다. 한가위를 맞아 고향 집에서 이런저런 행사를 치르고 다시 내 삶의 터전으로 귀소를 서두른다.


귀향은 과거로 회귀하는 시간의 여행이지만, 귀소는 현재와 미래를 찾아가는 또 다른 여정이다. 과거로 회귀하는 귀향과 현재와 미래로 돌아가는 귀소에는 늘 시간이 간섭한다.


그리고 그 간섭에는 과거의 조상과 미래의 후손 사이를 배회하는 현재의 나라는 낯선 손님이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하며 길을 찾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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