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뜰

by 이상역

고향에서 성장기에 보낸 유년 시절은 기억할 수 없는 시간과 어렴풋이 떠오르는 풋풋한 시간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누군가 너는 어려서 이러했다 저러했다고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다.


나의 성장기의 대부분은 고향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농사를 짓는 농가에서 5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내 생명의 씨앗을 제공해 주신 분은 이서해(李瑞海)이고, 그 씨앗에 품성과 호흡을 불어넣어 주신 분은 이귀선(李貴瑄)이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말씀하셨던 淸州 李 씨 가문의 31대 孫으로 위로는 큰형과 작은형과 누님이 아래로는 여동생과 남동생이 둘씩 있다.


나는 1960년 12월 12일에 양달 마을 초가에서 태어났다. 형들과 누나는 음달마을에서 태어나고, 나를 비롯한 여동생과 남동생은 양달 마을에서, 막내 남동생은 음달마을(현재 어머니가 사는 집)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1960년대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정치적 변혁기다. 이승만이 장기집권을 위해 3.15에 부정선거를 자행하자 학생들을 비롯한 민중은 4.19 민주혁명을 일으켜 이승만을 정권에서 몰아냈다.


이어서 윤보선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과도정부가 들어서고 과도정부에서는 민주주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1960.12.12 시도의회 의원선거, 12.19 시읍면의회 의원선거, 12.26 시읍면장 선거, 12.29 시도지사 선거를 실시했다.


그러나 나라의 경제 마비와 식량난에 따른 사회불안의 가중으로 이듬해 박정희가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정부가 탄생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내가 태어난 곳은 우리나라의 정치나 사회적 바람과는 단절된 두메산골이다. 아버지는 4형제(갑해, 을해, 원해, 서해) 중 막내셨다. 아버지를 포함한 4형제는 양달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서로 이웃해서 살았다.


그러다 양달마을 초가집 지붕이 무너지면서 4형제 중 아버지만 음달마을로 내려와서 살게 되었다. 지금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과 논밭은 두 분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호미와 괭이로 초근목피를 캐내어 일군 것이다.


내가 유년기를 보낸 곳은 양달 마을이다. 양달 마을에 살던 시절 봄이면 앞산에서 소쩍새가 구슬프게 울어대고, 여름에는 개울 건너 논에서 개구리의 낭랑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어머니가 살고 계신 음달마을 집은 원래 시제를 모시던 산지기가 살던 집이다. 양달 마을에 살던 집은 우리가 음달마을로 이사 오면서 마을에서 집을 새로 지어 산지기를 들였다. 그러다 산지기가 마을을 떠나면서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유년 시절 양달 마을 집은 초가였다. 그 집은 안방과 윗방 앞에 작은 봉당이 놓여 있었고, 작은 봉당을 지나면 쇠죽을 끓이는 가마솥이 사랑방 문 앞에 걸려있었다.


사랑방의 바깥문은 마을 길 방향으로 나 있어 겨우내 동네 어른들이 그곳으로 출입했다. 겨울이면 마을 어른들이 마실 와서 밤을 새워 화투를 치거나 다음 해 농사에 필요한 멍석이나 거적이나 가마니 등을 짰다.


그리고 봉당 옆 부엌에서 사랑방을 휘돌아 마을 길로 이어지는 커다란 마당이 펼쳐졌고, 마당과 마을 길 경계에는 담배를 말리는 높은 건조실이 솟아 있었다. 안채와 건조실 맞은편에는 소를 기르는 외양간과 화장실과 재를 버리는 헛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유년 시절 옆집과는 엉성하게 쌓은 돌담이 경계를 이루었다. 부엌 앞에는 돌배나무와 대추나무가 한 그루씩 자랐는데 봄이면 배꽃이 피어나고 계절마다 텃새가 날아와 아침부터 재잘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부엌에서 뒤란의 장독대로 가기 전에는 집안의 잡동사니와 먹을 것을 넣어두던 광이 있었고, 뒤란에는 장독대와 이웃과 경계한 비탈진 언덕에는 초가집을 덮을만한 커다란 밤나무가 자랐다.


밤나무에서 밤꽃이 피는 계절이면 고향 집은 이상야릇한 냄새로 가득했다. 밤나무에서 하얀 밤꽃이 지고 밤알이 영그는 가을이면 아버지가 커다란 장대를 들고 밤나무에 올라가 밤을 털면 가족 모두가 달려 나와 알밤을 주웠다.


유년 시절은 기억할 수 있는 시간보다 기억 너머 저편으로 사라진 어렴풋한 시간이 대부분이다. 누군가는 대여섯 살 때의 추억을 또렷이 기억한다지만 나는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요즘처럼 대여섯 살에 유치원을 다니거나 교회를 다닌 적이 없어 이성 간 추억이나 기억나는 사건 사고도 별로 없다. 지금도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은 앞산과 뒤뜰에서 들려오던 새소리와 집 앞에서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와 마당과 텃밭을 오가며 뛰어놀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유년 시절 그나마 기억에 남는 것은 여름이면 가족과 이웃과 함께 담배를 엮던 일이다. 아버지가 담배밭에 가서 지게로 져온 담뱃잎을 건조실 앞마당에서 형제들과 이웃과 함께 새끼줄에 담배를 엮곤 했다.


긴 새끼줄에 담뱃잎을 엮고 있으면 부모님이나 이웃 아주머니가 다가와 “우리 얘기 담배를 아주 잘 엮네”라거나 “이제 어른이 다 됐네”라는 향기로운 말을 들으면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 외에 특별하게 유년 시절을 추억할 만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나중에 언덕 너머로 사라진 기억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거나 전설을 찾아가듯 하나하나 복원해서 아이들에게 전해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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