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하늘이 청명하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다. 끝없이 펼쳐진 쪽빛과 사무실 창밖의 초록빛이 바람에 물결치는 것을 바라보면 지난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초록의 나뭇잎이 바람에 등을 내보이는 계절에는 태양이 뜨겁지 않지만, 유월의 창가를 바라보면 왠지 모를 그리운 시절이 생각난다.
유월은 봄보다 덥고 여름보다 시원하다. 봄처럼 화사하지도 여름처럼 무덥지도 않다. 초록의 바다를 출렁이는 바람의 흐름을 따라 유리창 밖에서 펼쳐지는 세월의 시간대를 가늠해 본다.
유월이면 무엇보다 찌그러진 주전자를 손에 들고 산자락을 누비며 버찌를 따 먹던 추억이 생각난다. 산자락의 벚나무를 찾아다니며 유년의 허기짐을 달래던 목마른 시절. 그 시절이 새삼 유리창 밖에서 물결치는 나뭇잎의 뒷면을 따라 아지랑이처럼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고향을 병풍처럼 빙 둘러싼 초록의 산. 그 산은 유년 시절 동심을 품게 하였고 마음의 풍요를 길러주었다. 그 시절 즐겨 따 먹던 버찌는 이제 돌보는 사람이 없어 외로운 신세가 되었다.
고향에는 젊은이가 없어 산자락을 헤매고 다닐 어린아이도 없다. 바람에 초록이 이리저리 뒤척이며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지난 시절로 되돌아가는 아련한 상념에 젖어든다.
요즈음 때아닌 촛불 바람이 세상을 휘젓고 있다. 촛불은 기도나 축복을 위한 도구다. 그 촛불이 대중의 의사 표출수단으로 작동하여 마녀사냥을 일삼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대나 찬성은 개인의 의사다. 그런데 인터넷이나 방송에 나와서 쇠고기 수입에 대한 어쭙잖은 반응을 보였다가는 몰매를 맞아 나락으로 떨어지는 형국이다.
촛불이 묻혀버린 지난 시절 빨간 견장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도 한순간에 뒤집어 버리고, 자신의 의사에 반한 사람은 누구든 지옥의 형장으로 몰아간다.
이런 기이한 세상살이를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분석하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정의조차 바로 세울 수 없는 세월이다.
세상의 인심이 자꾸만 거꾸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정녕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 욕망의 전차일까. 그저 쇠고기 수입에 대하여 무조건 반대만 하면 옳은 것인지 아니면 무조건 찬성을 하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그에 따라 유월이면 생각나는 추억이나 그리움도 세상의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쓸려 자연스럽게 사그라들고 만다. 일 년 중 유월처럼 세상사의 중간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다.
유월의 창가에 앉아 지나간 시절을 그려보는 초록의 꿈. 유월이 지나고 칠월이 되면 사람들은 더욱 바빠질 것이다.
태양 볕이 뜨거워지기 전에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어넣어야겠다. 그래야 뜨거운 여름을 잘 이겨내고 풍성한 결실을 거두는 가을을 준비할 수 있어서다.
사무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다. 유월이 지나가면 계절의 바람에 뜨거운 기운도 따라 들어갈 것이다.
올해 여름에는 사람들의 불만과 불평을 잠재울 수 있도록 폭풍과도 같은 거센 바람이 불어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세상사 번잡한 일들이 유월의 초록처럼 새록새록 익어가는 그리움으로 가득 찬 사회가 되기를 간구해 본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뭇잎이 한 모금의 물을 그리워하듯이 오늘이 가면 내일을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신명 나는 삶이 그저 그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