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에 좀 과식을 한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자 뱃속에서 꾸르륵거리며 요동을 친다. 남반구의 퀸스타운에서 맞이하는 아침이지만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몸이 오들오들 떨린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아침을 밥 대신 바나나와 우유로 가볍게 먹었다. 남반구의 아침 기온이 북반구보다 춥게 느껴진다. 구름의 나라처럼 하늘에는 얇고 긴 구름이 두둥실 떠 있다.
유장한 와카티푸 호수를 바라보며 달리는 버스에서 아침의 단잠을 깨우는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산이 간직한 고유의 아름다움과 호수의 물결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지난 수요일에 이곳에 왔으니 벌써 4일이 지나갔다. 여행의 절반이 사라지자 가슴에는 무언지 모르는 허전함이 차오른다.
버스에 몸을 싣고 호수의 물결을 바라보며 오늘의 여행지를 찾아가는 중이다. 아침에 떠오른 햇살이 가와라우강에서 영롱하게 반짝인다. 강물이 산의 계곡 사이로 물결을 치며 몸을 이리저리 뒤척인다.
너른 초원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들의 모습이 시야로 들어온다. 초원지대에서는 마오리족의 슬픈 전설이 바람을 타고 감미로운 노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우리뿐만 아니라 버스를 바짝 뒤쫓아 오는 서너 대의 버스가 우리와 같은 방향을 향해 질주해 간다. 호수의 잔잔한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자연의 위대함은 사람의 필력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의 힘이다.
외국 가수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마음을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게 한다. 가수의 목소리가 산과 들과 호수에서 불어오는 정령의 신비로운 소리처럼 들려온다.
드넓은 와카티푸 호수를 두고 안과 밖의 차이가 뚜렷하다. 호수 건너편에는 산 정상에 흰 만년설을 쓰고 사람과 양들의 접근을 꺼리고,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는 산이 사람과 양들을 껴안고 초록의 풀을 키워낸다. 척박과 비옥, 풍요와 빈곤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호수의 풍경이다.
남섬의 퀸스타운에서 맞이하는 선선한 아침. 내 몸에 붙어 있던 익숙한 문명의 문화를 버리고 근원을 찾아 떠나는 방랑의 길.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속도를 올리며 내달린다.
오늘도 몸에 묻어 있는 문명의 때를 하나하나 벗겨내는 여정의 길이다. 내가 자라면서 잊었던 원시의 순수를 다시 돌아보고, 끝이 없는 도로를 달려가자 몸에 잠자고 있던 원시의 몸짓이 하나둘씩 깨어난다.
아침햇살에 반사된 산자락의 갈색이 기지개를 켠다. 버스가 한 시간을 달려왔는데도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 지를 않는다. 여행의 체류 시간이 길어질수록 미지를 떠도는 집시의 마음만 깊어간다.
광활한 호수를 바라보고 만년설로 머리에 쓴 산을 올려다보고 끝없이 이어진 초원의 지평선을 바라볼수록 신비로움만 쌓여간다. 넓은 벌판에서 회오리바람에 휘감긴 흙먼지가 호수 위에 희미한 자국을 남기며 물 위로 불어 가고, 호수에서는 유랑하던 마오리의 전설이 바람과 함께 몰려와 옛 소식을 전해준다.
버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흙먼지가 바람에 휘감겨 공중에서 부양을 하고, 들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산자락을 어슬렁거리며 애달픈 소식을 전해준다.
깊은 심연의 호수에 잠든 마오리족의 전설과 신화. 남섬은 눈으로 마주하는 것마다 미명의 존재의식을 깨워준다. 푸른 초원의 대지를 가로질러 가는 버스만이 마오리족의 전설을 아는 듯 남쪽으로 남쪽으로 길을 잡아 달려간다.
전설 바다의 푸른 물결처럼 초원은 수많은 양을 가슴에 껴안고 초록의 잔물결을 일렁인다. 지금쯤 북반구의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침 08:20분이면 한국은 4시간 이른 04:20분이다.
아마도 단꿈에 젖어 이리저리 뒤척이며 깊은 잠을 자고 있겠지. 이곳에 오기 전에는 시차로 몸 고생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우려와 걱정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밤을 지새우며 타고 온 비행시간이 좀 고달팠고, 이곳에서는 여행의 일정에 따라 몸을 의지하고 맡겨버리자 어느덧 몸이 시차에 적응되어 간다. 푸른 녹지대를 한참을 달려와서야 작은 마을이 창밖으로 내다보인다.
버스를 운전하는 캡틴만이 잠에 깨어있을 뿐 일행 대부분은 잠에 빠져 들었다. 버스 안에는 목소리에 힘을 잃어가는 가수의 노랫소리가 수면제로 작용해서 일행을 잠재운다.
몸의 잔잔한 흔들림을 통해서나 버스가 달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가 있다. 가이드의 안내도 끝이 나고 버스 안이 조용해지자 눈이 깜빡이면서 눈꺼풀이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창밖에 끝없이 펼쳐진 초록의 바다. 뉴질랜드의 국력은 양들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양들이 나라를 지키고 양들의 나라를 만들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땅에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 사람이 사는 집보다 초지를 만들어 양이나 소를 기르는 것이 이들의 삶의 방식이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되돌려주고 자연의 조건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히 도태시키는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
드넓은 초지에는 비를 피할 곳도 눈보라를 막아 주는 곳도 없다. 자연에서 강인한 자만이 살아남는 생존경쟁 방식이 푸른 초원을 지탱하고 버티는 힘처럼 느껴진다.
지금 시간이 09:09분이다. 버스에 앉아 머리를 꾸벅거리며 이곳저곳 부딪쳤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 졸린 눈으로 간간이 창밖을 바라보는데 초원은 여전하고, 양들은 한가로이 무리를 지어 풀을 뜯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 초원에서 만나는 농가가 정겹게만 바라보인다. 넓은 들녘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농가들.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네들의 삶의 방식. 도시의 네온사인 문화를 버리고 오직 초지를 통해 부를 이루고 소득을 올리며 복지를 누리는 이들의 힘. 과연 이러한 힘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버스가 초지를 달려갈수록 머릿속은 이들의 삶에 의문만 더해간다. 지금 달려가는 버스 앞 창밖으로는 저 멀리로 정수리에 흰 눈을 짊어진 산이 시야로 들어온다.
하늘에는 구름 몇 조각만이 바람을 따라 창공에서 유랑을 즐긴다. 머리에 흰 눈을 덮어쓴 산 아래로는 솔잎보다 짙은 원시림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오늘은 속이 좋지 않아 여행 일정이 힘들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