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점심을 먹고 나면 몸이 나른해진다. 특히 봄에만 그 증세가 두드러지고 반복적이다.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들어와 의자에 앉아 있으면 몸이 나른해지면서 눈꺼풀은 저절로 무거워진다.
춘곤증은 계절의 변화에 몸이 적응하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으로 나른함, 졸음, 식욕 부진, 집중력 저하 등으로 나타난다. 사무실에서 졸리면 양팔을 베개 삼아 잠을 잔다. 그렇게 십여 분간 잠을 자고 나면 나른한 기운은 남지만, 졸음은 사라진다.
봄날 오후에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고역이다. 나른한 기운을 강제로 쫓아내기 위해서는 밖에 나가 산책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럴 힘도 여력도 없다. 몸이 나른해지면 몸을 움직이는 것도 귀찮다.
봄철에 나타나는 ‘춘곤증’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몸의 활동량이 많아지면서 그에 따른 영양 공급을 해야 하는데 불균형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이다.
춘곤증은 산이나 들녘에 나가 돌아다니기 전에는 이겨낼 수가 없다. 몸 상태가 춘곤증으로 몽롱한 상태에서 사람이 찾아오거나 전화라도 걸려오면 나른함과 졸음이 사라진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몸의 나른한 기운이 사라지면서 졸음도 없어진다. 대화로 인해 몸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면서 춘곤증이 사라지는 것이다.
오늘도 밖에 나가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와 잠깐 눈을 붙이고 창밖을 멍하니 응시하는 중이다. 두 눈을 크게 떠도 들어오는 것도 없고, 무언가를 집중해서 바라보려 해도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지금 해야 할 것도 없고, 무슨 일을 찾아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 춘곤증은 적당한 운동으로 신진대사를 촉진하거나 달래, 냉이, 씀바귀, 취나물 등을 먹어 신체에 활력을 넣어 주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한다.
춘곤증이 몰려올 때는 무기력한 상태에서 해야 할 일을 잊고 시간을 보내는 것도 춘곤증을 극복하는 방법이 아닐까. 사무실 밖에 나가 산책하기도 봄나물을 채취하러 들녘에 나갈 수도 없다.
봄날에 춘곤증을 극복하는 방법을 잘 알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도 싫다. 그저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십여 분간 단잠을 자는 것이 제일이다.
적당한 잠을 통해 춘곤증을 이겨내려니 봄철에 졸음은 쏟아질 수밖에 없다. 봄날에 춘곤증이 몰려온다고 요란스럽게 극복하고 싶지도 않다.
몸에 발생한 질병만 아니라면 춘곤증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 또한 극복하는 방편은 될 것이다. 춘곤증을 이겨내기 위해 의사의 조언을 들어가면서 극복할 필요가 있을까.
계절의 순환에 따라 몸에 춘곤증이 찾아와 몸에서 잠시 머물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물러날 것이다. 눈가에 가물가물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두 눈의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오면서 졸음에 겨워한다.
오늘도 사무실은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창밖에서 시위대의 확성기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온다. 마치 시위대의 확성기 소리가 잠결에 가뭇가뭇 귓전으로 스며들며 사라져 간다.
시위대가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원에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확성기를 틀어놓은 것 같다. 시위대가 확성기를 틀어놓은 시끄러운 날에도 몸은 춘곤증에 시달리며 제 갈길을 찾아간다.
오늘이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눈의 잣대로 가늠은 할 수 없지만, 봄날의 춘곤증과 함께 무심하고 무료하게 흘러가는 지루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