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비행기가 뉴질랜드 북섬에서 남섬으로 날아 가는 중이다. 비행기 아래로는 흰 구름이 끝없이 파도처럼 무리 지어 흘러가고, 머리 위로는 파란 하늘이 가득하게 시야로 들어온다.
남섬으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소형이라 그런지 기류에 수시로 흔들려 비행기 안에서 무언가 끄적거리는 것조차 힘들다. 현재 날아가는 위치가 북섬과 남섬의 가운데쯤 바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의 날개가 잠자리처럼 바람의 세기에 따라 접었다 폈다 한다. 비행기를 발명해서 하늘을 날게 해 준 라이트 형제에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겠다.
배를 타고 가면 몇 주씩 가는 거리를 비행기로 가면 몇 시간만에 갈 수 있어서다. 이렇게 비행기에 앉아 육지와 바다와 구름을 내려다보는 시간이 여유롭고 느긋하다.
이번 여행에 가족을 데리고 왔다면 더욱 소중하고 뜻깊은 추억이 되었을 텐데 못내 아쉽기만 하다. 학교 중간고사만 아니었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 있었을 텐데. 여행에 필요한 여권도 준비하고 시험과 여행 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아이들과 함께 오지를 못했다.
비행기 창밖에서는 여전히 하얀 구름이 흩어졌다 뭉쳐지는 모습이 아름답게 들어온다. 여행은 체류하는 시간에 느끼는 감정을 전달하는 여정이 아닐까.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는 여정의 길에는 떠남과 아쉬움이 자리한다. 대기의 기류가 안정되었는지 비행기 기체의 떨림 현상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국내 실을 가거나 승무원이 기내를 돌며 서비스를 시작하자 기내가 부산해졌다.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비행기를 타면 음료수가 무료인데 이곳은 물과 커피와 작은 빵조각만 무료고, 나머지 음료수 등은 돈을 지불하고 사서 마셔야 한다. 비행기 승무원이 다가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이곳 승무원이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란 인사를 할 정도면 한국 사람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인 것 같다. 무엇보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와 브랜드가 높아진 것이 피부에 와닿는다.
비행기에서 사람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가라앉자 기체의 떨림과 묵직한 엔진소리만이 적막하게 귓전으로 들려온다. 비행기가 남섬을 향해 날아갈수록 하얀 구름이 뭉쳐졌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하얀 설원을 썰매에 앉아 미끄럼을 타고 가는 기분이다.
남섬을 향해 날아갈수록 기분이 묘해지고 생경하게 다가온다. 비행기 승무원이 수시로 복도를 오가면서 손님이 원하는 것을 서비스해 준다. 그들이 손님에게 건네는 말의 몇 마디는 알아듣고 대부분은 이해할 수 없다.
해외여행에 일행과 함께 가면 용기를 갖게 된다. 홀로 여행할 때는 기가 죽어 승무원에게 말을 건네지 못할 텐데. 단체로 여행하다 보니 승무원에게 콩글리시로 말을 해도 의사소통이 될 때가 있고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생애 처음 국내를 떠나 머나먼 이국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여행하면서 몸고생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일행과 이런저런 추억을 쌓다 보니 여행도 익숙해졌다.
여행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낯선 것이 익숙해지고 정이 들면서 현지인이 되어가는 것 아닐까. 낯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삶의 물살을 체험하면서 마음의 눈이 차츰차츰 떠가게 된다.
이제는 낯선 것이 점점 익숙해지고 마음 밭이 서서히 열려 가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벌써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남섬의 공항이 가까워져 간다는 생각이 든다.
기내 의자를 뒤로 젖히고 앉아 있는데 승무원이 다가와 의자를 바로 세워달라고 한다. 아직도 비행기 창밖에는 하얀 구름만 보이고 남섬의 푸른 대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남섬은 북섬보다 아름답다고 하는데 남섬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얀 구름에 가려 아래가 내려다보이지 않는데 며칠 후 호주로 갈 때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어쩌면 지금 타고 가는 비행기 항로는 다시 밟을 수 없을지 모른다. 여행은 많은 것을 만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많은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비행기 엔진소리가 높아지면서 고도를 더욱 낮춘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글이나 쓰면서 마음의 속 뜰을 그리는 여행이나 하면서 살아갔으면 하는 소망을 꿈꾸어본다.
비행기 창가에 앉아 하늘을 떠도는 삶. 얼마나 멋진 삶인가. 비행기가 설원의 빙판을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날아간다. 땅에서 차를 운전하는 것과 하늘에서 비행기를 운전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늘에선 길이 없는 넓은 창공을 헤집고 가는 시원함이 있겠지만, 땅에선 정해진 길을 따라 앞뒤 차량과 속력을 다투는 사소함에 있지 않을까. 아마도 더 넓고 깊은 철학이 비행기를 운전하는 마음에 담겨있을 것이다.
마침내 뉴질랜드 남섬의 산 정상에 쌓인 만년설 눈이 눈에 들어온다. 북반구는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따뜻한데 이곳은 반대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날씨가 추워진다.
북반구와 남반구라는 위치 차이가 생활의 많은 것에 차이를 불러온다. 이곳은 호텔의 방문을 열 때도 손잡이를 반대로 돌리고, 호텔의 욕실에서 물이 배수구로 빠져나갈 때도 물이 반대로 회오리친다.
아직 여행이 3일밖에 지나지 않아 이곳 생활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부지런히 몸에 배도록 익혀야 할 것 같다. 삶은 언제나 한 방향만 바라보고 살아갈 수는 없다.
삶에서 어쩌다 한 번은 한 방향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은 도움이 되겠지만, 매번 한 방향만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다른 사람과 세상을 무리 지어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행기가 내가 앉은 좌석의 날개를 하늘로 치켜들고 선회를 한다. 공항의 착륙 지점을 찾기 위해 방향을 잡으려는 것 같다. 남섬의 모습이 조금씩 시야로 들어온다.
그동안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는데 퀸스타운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비행기 창문으로 남섬의 모습이 간간이 바라보인다. 남섬은 북섬보다 울창한 산림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대부분 민둥산이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방향과 반대로 구름이 바람을 타고 지나가고 비행기는 기류를 타고 엔진의 추진력을 높이며 날아간다. 비행기가 다시 난기류를 만났는지 기체가 몹시 흔들거린다.
북섬과 남섬은 첫인상이 다르다. 북섬이 남섬처럼 들어오고 남섬은 북섬처럼 이름을 서로 바꾸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섬의 푸른 초원지대가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초지 가운데로 뚫린 도로를 달리는 차량과 푸른 바다가 얼굴을 내밀고 비행기는 다시 내가 앉은 좌석의 날개를 하늘로 치켜세운다.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났는지 다시 심하게 흔들거린다. 몸의 중심이 잠시 흐트러지자 머리가 어지럽고 마음이 불안해진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큰 산을 넘어가는데 기류 차이가 심해서 요동을 친다.
얼마 후 비행기가 안정을 취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나자 퀸스타운 공항에 착륙했다. 일행과 여행 가방을 찾아 공항을 빠져나왔다.
남섬에는 새로운 가이드가 나와서 일행을 맞아준다. 가이드가 인솔하는 버스를 타고 남섬의 첫 여행지를 찾아가는 중이다. 여행은 유목민의 삶과 대동소이하다.
유목민은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유목민에게 정착이란 곧 삶을 마감하는 운명이다. 나도 유목민처럼 가방을 들고 낯선 바람과 여행지를 찾아 떠나는 방랑의 길에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