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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Mar 07. 202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오늘은 절기상 春分이다. 춘분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고 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절기다. 그런데 날씨가 좀 쌀쌀해지면서 어젯밤부터 눈이 내리더니 아침까지 이어졌다.


아침 출근길에 차를 운전하고 오는데 가로수 위로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春雪이란 말은 어감이 좋고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고 밝아지는 느낌이다. 春分에 눈이 내리니 눈을 맞으며 출근하는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시야로 들어온다.


봄이 오는가 싶었는데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봄은 봄인데 겨울의 추위가 봄이 오는 것을 그냥 놔두지를 않는다. 봄에 눈이 소복소복 쌓여가는 도로를 운전하고 오는데 주변의 것들이 하얗게 반사되고 지나가는 모든 것이 하얗게만 바라보인다.


사무실에 도착해 사무실 밖을 내다보니 도로 옆 공원의 소나무 우둠지에도 염색을 한 것처럼 하얀 눈이 칠해져 있다. 그림을 그릴 때 덧칠한 것처럼 하얀 물감으로 대충대충 이리저리 휘갈겨 놓았다.


소나무 옆 도로에는 사무실에 출근하는 사람과 차들이 오고 가는 모습이 바라보이고 그 도로 건너편에는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인부들과 굴삭기의 부산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세종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공사에 여념이 없다. 언제까지 도시를 조성할 것인지 기간은 알 수 없지만 하얀 눈이 내리는 날에도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도 도시 조성은 내가 직장을 퇴직한 이후에나 완성될 것 같다. 세종이 어떤 모습으로 도시를 완성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종은 주민이 고집해서 조성되는 측면도 있지만, 정치적인 이해득실로 조성된 측면도 있다.


봄날이 절기를 따라 거리 곳곳에서 다가오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자 계절의 진행이 정지된 것 같다. 지난겨울의 냉랭한 추위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눈이 내리자 마음은 다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와 더불어 장롱 속에 깊숙하게 넣어두었던 두꺼운 옷을 다시 꺼내 입고 출근했다. 저 멀리서 그리고 주변 어디선가 밀려오던 봄소식이 아직은 멀었다는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지난겨울은 기억에서 잊고 싶은데 아직은 잊지 말라는 듯 겨울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요즈음 사무실 정문 앞에서 이른 아침부터 시위대가 확성기를 들고 외쳐대는 소리로 인해 시끄럽다.


건설기계연합회라는 단체에서 휘황찬란한 플래카드를 내걸고 비영리법인으로 인정해 달라며 시위 중이다. 그 단체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모임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주 동안 직원들이 출근하는 시간부터 퇴근할 때까지 정문 앞에 확성기를 크게 틀어놓고 시위하고 있다.


세종으로 내려오기 전 과천에서 보았던 주변의 풍경이 고스란히 세종에서 재현되는 모양새다. 과천이 살기 좋은 도시라고 했는데 정부청사가 세종으로 내려왔으니 세종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될지는 미지수다.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의 기준에 시위 횟수를 넣으면 어떻게 변할까. 아침 출근길부터 듣고 싶지 않은 노랫소리를 강제로 들으려니 마음이 그다지 편치만은 않다.


원룸에서 사무실까지 자가용으로 출근하면 십 분 정도 걸리지만 도보로 걸어오면 사십 분이 소요된다. 걸어서 사십 분이면 거리로 4㎞ 정도다. 


출근길에 도시 주변의 곳곳에서 건물이 높게 올라가는 모습이 시야로 들어온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남은 자투리땅에 주상복합건물이나 상가 건물을 세우는 것이다.


춘분에 눈이 내리는 날에도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에서 도시가 바쁘게 성장해 간다. 계절의 기운이 차가워지자 직원들이 입은 옷도 두터워졌다.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멍하니 바라보는 중이다. 봄날에 눈이 추위를 몰고 왔지만, 여기저기서 밀려드는 봄바람의 기운은 막지를 못할 것이다.


겨울과 봄이 서로 자리를 잡기 위해 다투면서 계절을 가리는 것 같다. 겨울은 사라지기 싫은데 따뜻한 봄날이 다가오자 괜한 심술을 부린다. 그러자 봄은 보란 듯이 산수유나 개나리꽃을 피워내 겨울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경고장을 보낸다.


겨울이란 계절도 어차피 물러나려면 조용하게 물러날 것이지 춘분에 흰 눈을 내리는 심보를 모르겠다. 그리고 기왕지사 봄이란 계절도 자신의 자리를 찾았으면 확실하게 잡을 것이지 왜 그리 더디게 자리를 잡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겨울이 지나고 따듯한 봄소식을 기다리는 춘분에 눈이 내리니 봄날을 마중 가는 기분도 오락가락한다. 춘분에 하늘에서 아무리 많은 눈이 내려도 봄기운은 저 멀리서 너울너울 춤을 추며 바다의 밀물처럼 밀려오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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