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가 경칩이었다. 경칩은 겨우내 잠자던 개구리가 깨어나는 시기다. 그리고 동면하는 나무도 새싹을 틔우기 위해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다.
아침 출근길에 광교중앙역을 빠져나와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는데 아파트 단지와 여우 길 주변에 매화나무, 벚나무, 싸리나무와 산수유나무에서 연두색 새싹이 어슷비슷 얼굴을 내미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계절은 삼월 중순을 향해 간다. 며칠간 미세먼지 속에서 불투명하게 지내다가 봄의 전령인 나무의 푸른 새싹을 마주하자 목에 걸렸던 가시가 빠진 것처럼 몸이 시원하고 상큼해진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여우 길에 들어서자 길가에서 새싹이 봄의 향연을 노래하는 소리가 귓전에 들려온다. 나는 봄이 참 좋다. 봄은 생명의 움틈을 만나는 계절이다.
내일은 화려한 꽃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하루하루를 희망과 설렘을 안고 살아간다. 나무가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모진 비바람과 추위를 이겨냈듯이 봄이 새롭게 단장을 하면서 서서히 깨어날 때면 마음은 한없이 충만해진다.
봄이 되면 몸에도 많은 변화가 온다. 겨울에는 추위와 냉기로 몸이 움츠러들지만 봄에는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면서 몸도 한껏 바깥을 향해 욕구가 팽창되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
그리고 겨울은 추위 때문인지는 몰라도 몸이 움츠러들면서 글쓰기도 제대로 되지 않다가 봄이 되면 저수지의 물꼬가 터지듯이 글쓰기도 탄력을 받는다. 아마도 봄날의 싱그러움과 경이로운 생명이 태동하는 신비로움에 기분이 상승하기 때문일 것이다.
봄은 주변의 것들과 함께 나날이 성장하는 느낌과 생명을 향유하는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봄날 나무에서 화려한 꽃이 피기 시작하면 글쓰기도 왕성해진다.
지난해도 꽃이 피는 계절에 글을 좀 쓴 것 같다. 올해는 어떻게 보내게 될지 궁금하다. 겨울은 추워서 외출을 꺼리게 되지만 봄에는 외출하고 싶은 욕구와 들녘에 나가 푸른 생명을 만나고 싶은 열망에 가슴이 들뜬다.
사람들은 그런 열망을 잠재우기 위해 산이나 들에 나가 봄나물을 채취하며 봄볕을 즐기는 것 같다. 광교산 여우 길 주변에는 리기다소나무, 참나무, 벚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잣나무 등이 자란다.
그들은 제 자리를 지키면서 오고 가는 사람과 자신을 비껴가는 바람과 구름을 맞이한다. 산은 나무로 인해 풍성해지고 계절이 영글어갈수록 서서히 두텁게 성장해 간다.
여우 길을 따라 걸어가면 좌측에는 침엽수인 리기다소나무가 우거졌고, 우측에는 활엽수인 참나무와 아카시아 나무가 울창하다. 침엽수는 그늘진 응달에서 잘 자라고, 활엽수는 햇빛을 받는 양달에서 잘 자란다.
산도 햇빛을 받는 양에 따라 양달이 생기고 응달이 생긴다. 산에서 양달과 응달을 구분 짓는 것은 관념의 차이일 뿐이다. 오전과 오후에 햇빛이 드는 양에 따라 양지와 음지의 개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전에 양지였다면 오후에는 음지가 되고, 오전에 음지였다면 오후에 양지가 되듯이 산에서 양지와 음지는 수시로 변하는 인생사와 같다.
여우 길 주변 숲에는 침엽수보다 활엽수가 태풍과 비바람에 약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활엽수가 자라는 우측에는 나무가 태풍과 비바람에 많이 쓰러졌다. 나무가 쓰러지면서 한창 자라는 나무에 기대거나 숲을 이리저리 흩트려 놓았다.
시골에서 자라던 시절 산에 죽은 나무가 하나라도 있으면 남아나지 않았다. 땔감이 귀하던 시절이라 죽은 나무가 보이면 톱으로 잘라다 집에 가져가 땔감으로 사용했다. 지금은 나무가 아닌 다른 연료를 사용해서 그런지 산에 나무가 쓰러져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다.
여우 길을 따라 숲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사무실 근처의 언덕이다. 그 언덕에 다다르자 수원 시내에서 묵직한 중저음의 차 소리가 들려오고 사무실에서는 목소리가 트인 고음의 굴삭기 소리가 들려온다.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한 터파기 공사로 아침부터 산골짜기에 굴삭기 소리가 고음으로 울려 퍼진다. 여우 길을 따라 산책 겸 걸어왔더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움틈의 계절에 오솔길을 걸었더니 보약을 먹은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봄은 이곳저곳에서 몰려오고 움틈에 대한 찬양을 노래하는 소리가 공사 소음에 섞여 아련하게 들려오는 아침이다.
여우 길 곳곳에는 황톳길이 있다. 콘크리트 길보다 황톳길을 걸어가면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지는 느낌을 전달받는다. 회색은 건조하고 단조롭지만, 황토색은 따스함과 푸근함이 깃들어 있다.
회색과 황토색의 차이는 생명력이다. 회색에서는 생명력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황토색에서는 싱싱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여우 길에서 비가 오는 날이면 황톳길이 진흙탕 길로 변한다. 까치발로 마른 곳을 찾아 몸을 뒤뚱대며 걸어가면 옛 시절의 그리운 추억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추억이 되듯이 황톳길을 걸어가면 그리움이란 추억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오늘도 봄의 전령인 새싹을 만나고 황톳길을 걸어오며 옛 시절을 떠올려보았다.
하늘에는 희뿌연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우중충한 미세먼지가 사라지자 봄이 더욱 선명하게 곁으로 다가왔다. 내일도 오늘처럼 여우 길을 걸어오며 움틈의 희망가나 불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