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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Mar 27. 2023

봄비

봄꽃이 만발한 따뜻한 봄날이다. 어젯밤부터 봄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까지 소리 없이 떨어진다. 봄날에 내리는 봄비는 사람에게 살가움과 계절이 익어 가는 기운을 느끼게 하는 청량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봄비를 바라보면 마음은 한없이 춘정과 춘심에 빠져든다. 대지를 이리저리 휘날리며 떨어지는 봄비에는 계절을 노래하는 애잔함이 묻어난다. 


봄날에 봄비를 맞아가며 오솔길을 거닐어 본 지도 참으로 오래다. 날씨라도 따뜻하면 봄비를 맞아가며 오솔길을 걸어가 볼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봄에 내리는 빗방울에는 과거의 흔적을 들춰내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하염없이 바라보면 빗물 사이로 지나간 시간과 추억이 교차하며 떠오른다.


특히 오랜 사랑으로 이어지지 못한 옛 연인과 비를 맞으며 걸었던 기억의 저장고가 열리면서 과거의 흔적들이 하나둘 피어오른다.


어제가 일 년 중 가장 날이 맑다는 청명이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맑은 것이 아니라 정반대다. 봄에 맞이하는 것 중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 황사와 미세먼지다. 반대로 반가운 것은 봄꽃과 봄비다.


봄에 황사와 미세먼지를 해결하고 대기를 맑게 하는 것은 봄비밖에 없다. 가끔 봄비가 내리는 날에 차를 운전하고 오면 차에 흙먼지가 잔뜩 묻어 세차를 해야 할 정도다. 봄비에 대기에서 날아다니는 황사와 미세먼지가 묻어 빗방울이 아닌 흙이 섞인 빗방울을 내리기 때문이다. 


비에 황사나 미세먼지가 묻어 내리는 날은 바깥 외출도 자제할 수밖에 없다. 봄날에 벚꽃과 개나리꽃이 만개한 나무를 바라보면 마음은 한없이 즐겁다. 반대로 황사와 미세먼지로 자욱한 날은 마음도 좋지만은 않다.


날씨가 그날의 마음과 기분을 좌우하듯이 봄비가 내리는 날에는 마음과 기분도 가라앉는다. 봄비가 마음속에도 내리면 좋으련만. 마음속엔 봄비가 아닌 지나간 추억이 봄비와 함께 내리니 인생이 쓸쓸해진다.


삶이 별것이더냐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삶은 평범한 하루를 살아내고 살아오면서 순간순간 맞이하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견뎌내는 인고의 세월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봄비가 내리지만,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은 어제와는 다른 것이다. 빗물도 계절에 따라 성장하면서 성숙해 간다. 


이 세상에 성장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생도 봄비도 바람도 새싹도 모든 것이 시간을 타고 성장한다. 특히 다른 계절보다 봄에는 하루하루 성숙해 가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도 계절의 봄처럼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은 남들과 비슷비슷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알지를 못한다.


삶은 궁극의 목적을 알고 나면 삶 자체가 허무하고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살아갈 힘도 얻지 못한다.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노래하지만, 그에 대한 깊숙한 속내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비가 내린 날에 인생의 봄을 노래하며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다. 내 인생의 뜰에도 따뜻한 봄비가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아주 맑고 깨끗한 봄비를 인생의 고비마다 뿌려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삶은 없을 것 같다.


계절이 스스로 성장해서 봄이란 계절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그에 따라 봄비도 계절의 여울목을 따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하루를 살더라도 계절의 자람과 성숙을 노래하며 즐기는 것이 인생살이다. 부평초 같은 삶에서 봄비가 내렸다고 달라질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따뜻한 봄날에 맞이하는 기분과 느낌에 따라 봄비를 대면하는 마음만 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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