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을 구하라

by 이상역

지난 미국의 대선에서 뉴욕타임스지와 워싱턴포스트지가 신문의 사설을 통해 민주당 바이든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달라며 공개적인 지지를 선언했다.


미국의 정치행태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두 언론사는 지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민주당 클린턴 후보를 선출해 달라고 사설을 통해 공개적인 지지를 선언했었다.


우리나라 언론사가 신문 사설을 통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달라고 지지를 선언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아마도 언론사가 지지했던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 언론사는 곧바로 폐간을 당할지도 모른다.


뉴욕타임스지는 '미국이여 바이든을 선출하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바이든 후보가 법치를 수용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며 지지를 선언했다.


바이든 정부에는 능력과 자격, 원칙을 갖춘 인물이 포진할 것이고, 미국의 민주주의를 해치는 적에 맞서 동맹과 같이할 것이며 이번 대선은 단순히 리더를 뽑는 투표가 아니라 법치를 복원하고 경제를 회복하고 인종차별을 없앨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지의 사설을 접하면서 미국의 정치와 우리나라의 정치는 현실적으로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이 느껴진다. 미국이 괜히 미국이 아니라는 생각과 건강한 정치행태가 작동된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두 언론사가 대통령으로 누군가를 지지하던 누군가는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비록 선거에서 자신들이 반대했던 사람이 대통령에 선출되더라도 두 언론사가 대통령 재임 기간에 버젓이 활동하는 것을 바라보면 우리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미국식 정치형태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라마다 정치형태는 역사와 민족의 특성에 따라 다른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미국은 그만큼 사상이 개방적이고 다양한 생각을 존중해 주는 풍토가 형성되어 있어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언론사가 자신이 좋아하는 대통령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있도록 개선하면 좋을 것 같다. 언론사가 누군가를 대통령에 선출되는 것을 선언한다고 민주주의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두 언론사가 민주당 바이든 후보를 대통령에 선출되는 것을 선언한 배경에는 미국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존중과 동맹국과의 관계, 정부의 건전한 조직과 인종 차별주의 배제를 내세웠다.


이러한 배경에는 현 대통령인 트럼프가 정치를 잘못하고 있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다르다는 것을 표면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면서 공개적으로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두 언론사가 미국의 정치에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미국은 두 언론사의 영향력과 관계없이 그들이 뽑고자 하는 대통령을 선출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나와는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다. 하지만 두 언론사가 제시한 민주주의의 가치 존중과 실현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흑색선전 등으로 누가 대통령에 적합한 인물인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혼탁해진다.


선거철 전까지는 대통령으로 누가 적합한지 생각할 여유가 있는데 선거전에 돌입하면 유언비어와 흑색선전으로 정보와 정책이 혼미해진다.


미국의 두 언론사처럼 우리나라의 언론사도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 존중과 실현, 정부의 구성 원칙과 북한과 일본 그리고 미국과 중국과의 국제적인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는 대통령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한다면 어떻게 될까.


언론사가 사설을 통해 대통령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단지 주권자인 국민이 누가 더 대통령에 적합한지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선거에서 대통령을 선택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인이여! 바이든을 선출하라’라는 구호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메시지와 비슷하다. 미국이 대통령 선거에 얼마나 변화가 필요했으면 언론사가 이 사람을 대통령에 선출해 달라고 사설까지 써가면서 공개적으로 지지를 선언했을까.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언론사가 누군가를 대통령에 선출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개선해야 한다. 언론이 사설을 통해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지지한다고 선언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의 영역이다.


그저 속으로만 끙끙 앓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도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언론사가 누군가를 지지하던 자신이 좋아하고 나라를 훌륭하게 이끌 수 있는 지도자를 뽑는 것은 언론사의 몫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유권자의 몫이다.


우리나라도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언론사가 미국의 언론사처럼 누군가를 대통령에 선출해 달라고 지지를 선언할 수 있도록 선거 시스템을 바꾸자. 현행법에서 언론사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위반이라면, 헌법이든 법률이든 개정해서 열어주는 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실현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묶는 것이 아니라 풀어주는 것이다. 언론사가 누군가를 대통령에 선출해 달라고 호소해본들 민주주의가 파괴되지는 않는다. 이제는 언론사도 선거에 개입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줄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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