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 이웃과 슬픔을 나누면 덜어지고 즐거움을 나누면 배가 된다. 설령 이웃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때로는 웃어주고 때로는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가며 살아가야 한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직장 동료를 잘 만나야 생활이 편안하다. 직장도 일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더 크게 작용한다. 직장에서 동료와 불편한 관계가 유지되면 그 자리를 버티는 것이 힘들다.
물론 동료가 좋은 사람이면 문제가 없지만, 인생살이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과의 일을 가로막는 장벽은 일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 장벽 앞에는 관계라는 틀이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직장에서 좋아하지 않는 동료를 만나면 참고 인내하며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 끝에 자신이 다른 부서로 가든 동료가 자신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든 해결책이 나온다.
요즈음 한반도 주변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란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 지방의 문화와 역사를 송두리째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고 있다.
우리 주변국의 행태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한국은 너무도 외로운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도 이웃해 있는 국가와 사이가 좋아야 나라가 융성해진다. 그런데 한반도 주변은 다정하고 진실한 이웃이라고 지칭할만한 국가가 하나도 없다.
조상들은 한반도에서 어떻게 반만년이란 역사를 버티며 살아왔을까. 우리와 동족인 북한은 기회만 있으면 총칼을 들고 국경을 넘나들거나 미사일을 쏘아가며 위협한다.
그리고 바다 건너 일본은 독도는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며 과거 한반도 침략에 대한 반성보다는 군국주의로 재무장하고, 태평양 건너 미국은 미군 주둔에 따른 방위비 분담과 그들의 이익을 앞세우며 우리를 압박한다.
국가도 이웃과의 관계 개선은 얼굴을 맞대고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경청하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이웃 국가들은 일방적인 주장만 내세운다. 우리의 진정한 우방은 누구이고 반대로 진정한 적은 누구인가?
우리를 둘러싼 주변국 모두가 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들은 무엇이 아쉬워서 기회만 있으면 한반도를 위협하고 빼앗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일까?
구한말에 한반도를 둘러싸고 러시아의 남하를 방지하기 위해 親中國 聯美邦 結日本을 주장하며 목소리를 드높였던 조선의 역사가 현재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과연 과거보다 얼마나 더 잘살고 있는 것일까. 정말로 한반도가 살기 좋은 곳인가. 정녕 국가라는 조직은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냉혈한 조직체인가.
우리 주변에는 진정으로 우리를 걱정하고 미래를 위해 함께 하는 공동운명체와 같은 이웃이 없다는 서글픔에 앞날이 걱정스럽다.
사람은 너무 외로우면 갈 길을 잃는다. 자신을 옥죄는 마음에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어서다. 그리고 외로움은 혼자 가슴에 쌓아 두면 병이 되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려 나누면 약이 된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의 상황은 점점 미로 속으로 빠져드는데 심각성이 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누가 우리를 향해 언제 돌을 던지게 될지 모르는 시간의 블랙홀에 직면했다.
이는 환상이 아니라 우리가 맞이한 냉엄한 현실이다. 지구의를 빙빙 돌려가며 들여다보면 한반도처럼 외로운 곳이 없다. 세계 어느 곳을 바라봐도 우리처럼 사방이 꽉 막힌 곳은 없다.
지금 우리는 도보나 차로 이웃 나라 국경을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나라가 하나도 없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우리만이 차나 도보로 이웃 나라를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유럽인은 보통 몇 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3개 언어를 말하는 사람을 천재라고 부른다. 그리고 영어를 배우기 위해 갖은 방법과 행태를 동원한다.
마치 온 나라가 영어를 배우기 위해 목숨을 거는 형국이다. 그런데 영어를 잘해도 갈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가족과 생이별하고 혈혈단신으로 나라 밖을 향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마치 구한말 나라를 잃고 간도와 연해주로 떠난 독립투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유럽인은 자신을 둘러싼 나라를 자유롭게 오고 간다. 이웃을 잘 만난 복이다. 스위스에 사는 초등학생은 방학 중에 이탈리아나 독일에 놀러 다니며 언어를 배운다.
그것도 돈을 들이며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에 무료로 배우는 것이다. 우리처럼 큰돈을 들여가며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방학이나 여행을 하면서 즐겁게 배운다.
우리와 외국어를 배우는 방식과 형태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유럽의 국가들이 살기 좋은 것은 이웃과의 관계가 좋은 것도 한몫한다.
우리처럼 주변 국가와 서로 얼굴을 붉히며 언제 대들지도 모르는 불안한 마음 없이 태평하게 삶을 영위한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바꿀 수도 없다.
우리는 자유를 갈구하나 그 자유가 온전하지 않다. 유럽도 자유를 갈구하기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다. 우리도 자유를 갈구하기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다. 하지만 우리가 얻은 자유는 제한된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광풍으로 몰아치는 몰가치적인 가치관은 사라져야 한다. 소아(小我)적 문화를 대승적인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더불어 국민의 총체적 의식 수준을 선진국 이상으로 높여야만 한다.
우리가 이웃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것을 조상 탓으로 돌리기보다 우리 자신의 문제로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돌을 들고 있는 이웃이 과연 누구인가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대비해야 한다.
우리와 이웃한 국가가 우리를 향해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는 현실을 냉엄하게 직시하고 우리의 자존을 되찾아 한반도를 제대로 된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이 급선무다.